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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 어른들끼리는 경험하기 힘든 낯선 일들을 겪습니다. 오직 육아하는 이때만, 부딪칠 수 있습니다. 애 키우는 동안 나를 흘려보내는 것 같아 좌절감에 글을 씁니다. '너희만 크냐? 엄마도 같이 크자'는 마음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 육아일상 속 메시지를 담아 글을 씁니다. - 기자말

둘째를 낳고 바로 복직하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 인구 8만, 강원도 작은 도시에 사는 덕분이다. 사는 곳은 보증금 5800만 원에 월세 6만 원이라 거주비가 저렴했다. 또 법대로 육아휴직을 누려도, 돌아갈 자리가 있는 직장인 데다 남편도 일을 해서 벌이가 있다. 다행히 휴직을 '선택' 할 수 있었다.

대신 당분간 소득을 잃었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직장으로 돌아가면 매달 200만 원 씩 더 벌 수 있다. 무시할 수 없는 액수다. 맞벌이가 되면 차를 한 대 더 살 수 있고, 넓은 집으로 이사할 수 있고, 외식도 더 자주 할 수 있다.

아이들 장난감 살 때 덜 망설이게 되고,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접대할 때 홀가분히 지갑을 열 수 있다. 저축도 더 많이 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휴직을 하는 대신 돈으로 교환할 수 있는 각종 서비스, 물건을 포기했다.

하지만 편리한 서비스, 더 고급스러운 물건보다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차를 1대만 끈다면, 30평 대 말고 20평 대에 산다면, 외식보다 집밥을 먹는다면, 장난감 아닌 부모와 논다면, 가족과 친구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직접 끓여 준다면, 가능했다. 적게 소비하면 저축도 조금씩 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기 좋은 장소, 도서관
 아이들과 함께 하기 좋은 장소, 도서관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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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에 접어든 둘째 딸과 또래를 키우는 조리원 동기들이 하나, 둘 복직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잘 적응했고, 선생님들께서도 능숙하게 아가들을 돌봐주셨다. 33개월 큰 딸이 다니는 가정 어린이집에도 돌 전 아가들이 여럿 있었다. '영영 엄마와 헤어지는 게 아닌, 잠깐 각자의 시간을 갖는 것 뿐'이라는 조언까지 들으니 얼른 복직해서 살림에 보태야하나, 마음은 수 천 번 흔들렸다.

그러다 며칠 전, 시골 할머니 댁에 다녀온 뒤, 육아휴직을 더 하기로 결심했다. 여기에선 많이 소유하고 있는 게 별 의미 없었다. 주어진 시간에 걷고, 산딸기 따 먹고, 들꽃을 바라보고, 산새 소리와 개울 소리에 귀 기울이면 행복했다. 차도 많이 다니지 않으니, 큰 딸도 마음 놓고 뛰어 다녔다. 내게 계속 재잘대며, 노래하고, 웃고, 비누방울 날리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이 경험을 돈으로 교환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저 아이들과 함께 존재하면 될 뿐이었다.

둘러보니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삶을 누리는 방법은 더 많이 소유하는 것 외에도 많았다. 결정적으로 4살, 2살 딸들은 장난감을 더 많이 갖기보다 부모에게 사랑 받고 함께 하는 순간들을 더 좋아했다. 부모가 장난감을 거실에 잔뜩 늘어놓고 "재밌게 놀아~" 하고 뒤돌아 집안일 하던 순간보다, 같이 옆에서 걷기만 했는데 더욱 행복해했다.

강원도 숲 속.
 강원도 숲 속.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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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시골이 아니라도, 집 앞 놀이터, 산책로 그리고 그냥 엄마, 아빠가 함께 있는 작고 아늑한 우리 집을 사랑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시간이라면, 더 많은 돈을 나중으로 미루려 한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이들 행복하기 위해 내가 일터로 가지 않아도 된다니! 오히려 지금은 내가 집에 있는 것을 더 원했다.

<금지되었다>는 것은 그러니까 영원한 것이 아니야, 바뀔 수 있는 거야.
...
그러니까 우리들 누구나 자기 스스로 찾아내야 해,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지되어 있는지. - 자기에게 금지되어 있는지.
...
지나치게 편안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의 판결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금지된 것 속으로 그냥 순응해 들어가지.
- <데미안> 중. 헤르만 헤세 지음.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을 썼던 20세기 초반에는 기독교 이외의 윤리가 '금지된 것'이었다. 21세기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금지된 것은 '더 적게 벌고, 더 적게 소유하기'인 듯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더 좋은 옷을 입혀야, 더 좋은 차를 태워야, 더 넓은 집에서 살게 해 주어야, 훌륭한 부모라는 일방적인 가치관을 강요받고 있다. 소비 문화 속에서는 좋은 브랜드 아파트가, 부모가 타는 자동차가, 입고 있는 옷 상표만이 아이를 대변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많이 벌어 많이 베푸는 것 또한 좋은 부모가 되고자 하는 한 맥락이겠지만, 적게 벌어 적게 쓰는 선택을 해도 존중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소비가 미덕인 사회에서, 우리 부부의 선택은 '악(惡)'일 수 있다. 하지만 더 적게 소유하고, 더 적게 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저녁 없는 삶 대신, 가족과 함께하는 꿈꾸던 삶을 살아볼 수 있다. 적게 소유해도 가치로운 삶을 살 수 있음을 경험하는 것. 이 경험이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필요로 하는 어른들을 위한 처방전이 아닐까.

공원 언덕에서 딸과 춤추는 남편.
 공원 언덕에서 딸과 춤추는 남편.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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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육아휴직, #워라밸, #미니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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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글 쓰고, 사랑합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 꿉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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