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시위(2016)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시위(2016)
ⓒ 한국여성민우회

관련사진보기


2018년 4월 법무부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낙태죄에 대한 의견서의 일부가 지난 5월 23일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되어 큰 지탄을 받았다. 법무부는 곧 해명 자료를 발표했지만, 다소 부적절한 표현과 부분 발췌로 인한 오해일 뿐이라며 선을 긋는 정도였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이후 해당 의견서의 전문을 확인했고, 법무부의 입장이 언론에 전해진 것 이상으로 문제적임에 경악했다.

법무부는 28쪽에 이르는 글로써 임신‧출산은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며 성스러운 기적이자 축복이고,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임신 가능한 존재인 이상 '여성에게 충분한 자유가 보장된' 성관계의 결과인 임신‧출산을 감수해야 하고, 본인의 삶을 위해 그 임신을 중단하는 것은 '자유를 위해 생명을 제거하는' 일이기에 허용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회에서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뿌리 깊은 성차별에 대한 법무부의 몰이해는 절망적일 정도다. 오랜 역사에 걸쳐 여성들은 위험한 방식으로든 상대적으로 안전하게든 임신중단을 실행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는 단지 '임신으로 목숨을 위협받아서'거나 '강간으로 임신해서'만이 아니다. 물론 '생명을 경시해서'도 아니다. 완전한 피임은 불가능하고, 여성에게도 아이 낳고 기르는 것 이외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국을 포함하여 세계 각국의 사례가 증명하듯 임신중단을 처벌하면 임신중단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수술이 늘어날 뿐이다.

더욱이 피임부터 성관계, 양육에 이르기까지 재생산의 전 과정에서 평등과 인권보장은 실현된 적 없고 앞으로도 긴 시간 많은 변화가 요구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된 경우 아이를 낳아야 마땅하며 안 낳으려거든 여성 개인이 그 결과를 다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여성의 안전과 삶의 질에 대한 국가의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이는 사실상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는 여성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법무부 의견서는 임신‧출산의 가치를 종교적이라 할 정도로 신비화하며 추앙한다. 그러나 낙태죄에 대한 논의는 '자연 상태의 인간'이나 생명존엄성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그 현실을 창출하는 사회구조의 정당성과 적절성에 대한 검토로써 이뤄져야 한다. 특히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오히려 그동안의 낙태죄 논의가 생명이라는 절대적인 가치 옹호를 중심으로 수렴되면서 공회전해 온 역사를 인지하고 개선시킬 책임이 있다.

심지어 의견서의 상당 부분은 페미니즘에 대한 악의적 곡해를 담은, 좋게 봐야 '진지한 논의를 위한 합리적 사고력의 결여'로밖에 볼 수 없어 논박할 가치도 없는 구절들을 포함하고 있다(*기사 하단 캡쳐 이미지 참고). 이처럼 졸렬한 글이 정부부처 그것도 법무부의 공식 입장으로 제출되었다는 사실이 여성 인권에 대한 법무부의 중요시 정도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우리는 국가가 여성이 겪는 현실에 무지하고 무관심하고 무책임했던 과거 시대를 딛고 서 있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아이를 낳는 존재이고 성관계는 기본적으로 아이를 낳기 위한 것이며 임신의 인위적 중단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는 법무부의 관점은 구시대적이다. 낙태죄 역시 정확히 이러한 관점에서 비롯되고 유지되어 온 구시대의 유물이다. 둘 다 그저 구시대적인 것을 넘어, 현 시대 시민들의 삶에 폭력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열악한 현실은 과거 그대로이나, 여성들을 비롯한 국민 대다수의 법 감정은 변화하고 있다. 정부는 낙후된 관점을 스스로 점검하고, 여성들의 분노에 책임을 통감하며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법무부 의견서 캡쳐 이미지]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법무부 의견서(2018) 8-9쪽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법무부 의견서(2018) 8-9쪽
ⓒ 출처:법무부

관련사진보기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법무부 의견서(2018) 10쪽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법무부 의견서(2018) 10쪽
ⓒ 출처: 법무부

관련사진보기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법무부 의견서(2018) 13쪽 주석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법무부 의견서(2018) 13쪽 주석
ⓒ 출처: 법무부

관련사진보기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법무부 의견서(2018) 14쪽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법무부 의견서(2018) 14쪽
ⓒ 출처: 법무부

관련사진보기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법무부 의견서(2018) 15쪽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법무부 의견서(2018) 15쪽
ⓒ 출처: 법무부

관련사진보기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법무부 의견서(2018) 17쪽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법무부 의견서(2018) 17쪽
ⓒ 한국여성민우회

관련사진보기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법무부 의견서(2018) 17쪽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법무부 의견서(2018) 17쪽
ⓒ 출처: 법무부

관련사진보기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법무부 의견서(2018) 23쪽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법무부 의견서(2018) 23쪽
ⓒ 출처: 법무부

관련사진보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