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독전 <독전> 메인포스터

▲ 독전 <독전> 메인포스터 ⓒ NEW


01.

작가 출신인 이해영 감독은 많은 작품을 연출한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장르적 표현을 두려워하지 않는 감독이다. 데뷔작인 <천하장사 마돈나>(2006)는 당시만 해도 민감한 소재 중 하나였던 성 정체성을 드라마적으로 풀어낸 작품이었고, 다음 작품인 <페스티발>(2010)에서는 코미디적 감각을 새로운 해석을 통해 드러냈다. 표현 방법에 있어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기는 헀으나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5)에서는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이 어떻게 드러나는가에 대해 미스터리 장르로 풀어냈다. 그리고 이번 작품 <독전>은 마약을 소재로 한 범죄물. 각각의 작품이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보여주는가에 대한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표현 방식에 있어 두드러지는 넓은 스펙트럼에 대한 감독의 유연함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02.

이번 작품 <독전>은 아시아 최대 마약 조직의 실체를 파헤치려는 형사 원호(조진웅 역)과 누구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밝히지 않고 조직을 이끌어가는 인물 사이의 치열한 다툼을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주인공인 원호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때에 필요한 인물들이 차례대로 등장한다는 것과 작품이 인물의 내러티브를 쌓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영화 <독전> 스틸컷 영화 <독전> 스틸컷

▲ 영화 <독전> 스틸컷 영화 <독전> 스틸컷 ⓒ NEW


먼저, 원호를 중심으로 극의 진행에 필요한 인물들이 순서대로 등장하는 것은 이 작품이 근원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내러티브에서부터 끌어올린 짜임새의 힘이 아니라 빠른 호흡과 영화 속 장치들의 상성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다음에서 언급할 내용인 내러티브를 쌓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과 상응하는 부분인데, 다양한 캐릭터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할 바에는 과감하게 포기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된다. – 이해영 감독이 다른 작품들을 통해 보여준 재능을 본다면 이는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선택한 것으로 생각된다. – 대신, 그는 이 부분의 느슨함을 하나의 인물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성,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태도의 입체감으로 메우고자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자신이 대면하는 상대에 따라 또, 처한 상황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데, 원호는 물론, 상대적으로 가벼운 역할로 여겨지는 선창(박해준 역)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렇다. 심지어 보령(진서연 역)은 동일한 인물에게도 자신이 어떤 감정이냐에 따라 완전히 상반된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데 이 또한 동일한 맥락이다.

03.

일반적으로 범죄/액션물이라 하더라도 이야기의 흐름을 설명하고 당위성을 제공하기 위해 인물의 과거가 어떠한지,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촘촘히 쌓아 올린 재호(설경구 역)와 현수(임시완 역)의 이야기는 극의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두 인물의 감정에 이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런 부분들이 이 작품에서는 극단적으로 제외되어 있다. 현재의 시점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을 뿐, 그들의 과거에도 미래에도 전혀 관심이 없는 것. 현재에 주어진 서로의 역학 관계로만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그 점을 활용해 속도감을 얻는다. 이 점은 앞서 설명한 인물의 순차적 등장과 맞물려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내러티브를 쌓는다면 영화는 분명히 늘어지고 말았을 테니까.

물론, 이 작품에서 그런 부분들이 생략된 것이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감독이 추구하는 장르에 따라 현상만을 놓고 스토리를 진행해가는 작품들도 과거에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주인공인 원호가 왜 마약 조직을 목숨을 걸며 쫓아야 하는지는 설명되었으면 더 좋았던 게 아닐까. 단순히 그가 직업 정신이 투철한 형사였기에, 혹은 영화의 초반부에서 부당한 부탁을 들어주다 죽임을 당한 수정(금새록 역)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었다고 이해하기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영화 <독전> 스틸컷 영화 <독전> 스틸컷

▲ 영화 <독전> 스틸컷 영화 <독전> 스틸컷 ⓒ NEW


04.

영화의 취약한 부분을 최대한 가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역시 배우들의 호연이다. 작품의 흐름상 전혀 예상하지 못할 법한 후반부의 반전은 아니었지만, 그 점을 끝까지 잘 숨겨내는 류준열 배우의 연기는 물론, 후반부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는 배우 차승원의 카리스마도 인상적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故 김주혁 배우의 모습은 스크린 앞을 떠나서도 한참이나 기억에 남을 정도로 강렬하다. 진하림이라는 강한 설정의 캐릭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다른 인물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흡인력이 있었으니, 어쩌면 그는 아직도 보여줄 것이 더 많았던 배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남기고 간 마지막 작품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들이 많지만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이 남는다.

05.

작품들 가운데 진폭이 크거나 파장의 길이가 촘촘하지는 않지만, 호흡이 괜찮은 영화들이 있다. 영화 <독전> 역시 그런 영화 가운데 하나다. 극의 표현 방식이 좋고 나쁨에 대해서는 관객들마다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이 영화는 괜찮은 결과물을 내놓았다. 의외로 섬세한 구석도 있다. 이 영화의 원제는 믿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Believer다. 그리고 영화는 누가 살아남을 것인지에 대해 알려주지 않고 모호한 결말을 내놓는다. 어쩌면 이는 관객들의 믿음이 투영될 수 있도록 구조화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의 마지막 순간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을 농아 남매와는 달리, 관객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으니까.

영화 무비 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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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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