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강압적 사진 촬영, 성추행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스튜디오 실장 A씨. A씨는 스브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양예원씨가 폭로한 내용을 강하게 부인했다.
 강압적 사진 촬영, 성추행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스튜디오 실장 A씨. A씨는 스브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양예원씨가 폭로한 내용을 강하게 부인했다.
ⓒ 스브스뉴스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얼마 전 유튜버 양예원 씨가 스튜디오 촬영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했으며, 노출 사진이 유포됐다고 폭로했다. 이후 모델 유예림 씨를 비롯해 비슷한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추가적인 폭로를 하는 등 큰 반향이 일었고, 언론 보도 또한 줄을 이었다. 아울러 사진계 내에서 암암리에 일어나고 있는 성폭력이나 여성혐오 문제에 대해 자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들 또한 많아졌다.

하지만 남초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양예원 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가 지금 이 시간에도 이어지고 있다. 성인 사이트 등지에서 피해자의 노출 사진을 공유하거나 공유를 요청하는 것은 예사고 외모 평가를 하거나 피해자에 대한 ('꽃뱀' 따위의)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등의 행위가 줄을 잇고 있다.

또 피해 사실 그 자체나 그에 대한 연대를 희화화하고 조롱하거나 문제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분위기, 이 틈에 여성 전반과 반성폭력 운동을 공격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게다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사진'을 검색하려 하면 연관검색어로 벌써 양예원 씨나 합성사진으로 많은 피해를 본 연예인 설현 씨의 이름 등이 가장 먼저 등장하기도 한다.

포털 사이트에 '사진'을 검색하려다 나온 연관 검색어들. 성폭력 폭로자 양예원씨와 합성사진으로 피해를 입은 연예인 설현 씨의 사진 유출이 연관검색어로 뜬다.
▲ 포털 사이트에 사진을 검색하려다 발견한 연관검색어 포털 사이트에 '사진'을 검색하려다 나온 연관 검색어들. 성폭력 폭로자 양예원씨와 합성사진으로 피해를 입은 연예인 설현 씨의 사진 유출이 연관검색어로 뜬다.
ⓒ 장성열

관련사진보기


사진계 내의 성폭력적인 문화

사실 사진계 내에서 성폭력적 문화와 여성혐오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것은 익히 알려져있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카메라/사진 커뮤니티인 한 사이트는 남성중심적인 공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타 남초 사이트와 비슷하게 이 사이트의 자유게시판에서도 '메갈'을 혐오하고 페미니즘을 조롱하는 분위기가 보인다. 이곳에서 여성을 일컫는 말은 'ㅊㅈ', 즉 '처자'다(처자라는 말 대신 초성만 가져다 쓰는 것이다).

게시판에서 많은 조회를 기록하고 추천을 받기 위해서는 이 '처자'의 사진을 이른바 '조공'으로 첨부해야 하는 게 공공연한 문화라고 느껴질 정도로, 여성을 객체화하고 대상화하는 분위기다. 이 외에도 카메라 바디나 렌즈 등 장비 리뷰에서 피사체의 대부분은 여성 모델이 차지하고 있고, 사진을 업로드하는 갤러리에서도 여성을 찍은 사진이 쉽게 베스트에 오르곤 한다.

또 해당 사이트를 비롯한 한국 사진계 전반에는 장비에 여성을 객체화/대상화하는 별명을 붙이는 등 가부장제를 공고화하는 언어를 사용하곤 한다. 그 예로 이른바 '여친렌즈'라고 부르는 85mm 단렌즈가 대표적인데, 이 렌즈는 '여자친구를 찍으면 잘 나온다'는 이유로 '여친' 렌즈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캐논의 70-200mm 망원렌즈는 성능에 따라 애기, 형아, 엄마, 아빠 백통(캐논의 망원렌즈군은 흰색이기 때문에 백통이란 별명이 붙었다)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아빠 백통의 신형 모델에는 새아빠, 비슷한 성능의 서드파티 망원렌즈에는 옆집아빠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이제는 이러한 성차별적인 별명이 공공연하게 사용되고 있고, 심지어는 공식 채널에 등장하거나 마케팅에 이용되는 실정에 이르렀다. 사진계 내부의 성차별에 자본 또한 힘을 보태고 있는 격이다.

스튜디오 비공개 촬영회 성폭력 논란이 불거진 이후 국내 대형 사진 커뮤니티 자유게시판 등에 올라온 글들. 피해자를 의심하고 조롱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심지어 '유출 사진을 총대 메고 공개하겠다'는 낚시성 게시물도 있다. 성폭력 피해 증언을 가벼이 여기는 듯한 모습이다.
 스튜디오 비공개 촬영회 성폭력 논란이 불거진 이후 국내 대형 사진 커뮤니티 자유게시판 등에 올라온 글들. 피해자를 의심하고 조롱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심지어 '유출 사진을 총대 메고 공개하겠다'는 낚시성 게시물도 있다. 성폭력 피해 증언을 가벼이 여기는 듯한 모습이다.
ⓒ 커뮤니티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여성 사진가들의 이야기를 듣다

지난 5월 25일 서울 모처에서 현직 여성 사진가인 A, B 씨와 함께 이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A씨는 여성이 사진기자를 지망한다고 하자 주변에서 '사진기자를 하기 어려울 것' 이라는 편견어린 시선을 받거나 차별적인 말들을 자주 들어야 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취재 현장에서 커다란 DSLR 카메라가 없으면 무시를 받는 기분이고, 그 때문에 취재용 플래그십 카메라와 렌즈를 사용하게 되었을 때, 그런 부분 때문에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B씨는 자신은 미러리스 카메라를 사용하는데 같은 이유로 큰 렌즈를 사려고 한다고 말을 이었다.

대화를 이어나가며 여성은 '찍히는 존재'로서만 존재한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A씨는 또 이전에 SNS에서 유명한 모 인물사진 커뮤니티에 가입해 있었는데 그 커뮤니티에서는 남성 사진가가 여성을 찍은 사진이 당연하게 여겨졌고 대다수인 반면, 그 반대로 남성을 찍은 사진, 특히 여성 사진가가 남성을 찍은 사진은 찾기 거의 불가능했다고 이야기하며 더 나아가 사진을 '찍는' 주체로서의 여성을 기이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찍는 주체로서의 남성, 찍히는 대상으로서의 여성은 쉽게 상상 가능하고 주변에서 찾아보기 쉽다. 양예원 씨의 폭로 등으로 밝혀진 이른바 '출사'뿐만 아니라 모터쇼에서의 레이싱 모델이나 사진영상기자재전(P&I)의 모델들 등 여성들은 남성 사진가들에 의해 쉽게 (성적으로) 소비되곤 한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이질적으로 여겨지고 실제로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찾기 힘든데, 그만큼 주체로서의 여성 사진가들이 발을 붙이거나 성공하기 어렵다는 뜻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사진 광고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두 명의 사진가 모두 카메라 광고에 성차별이 작용한다고 입을 모았다. 예컨대 남성이 등장하거나 남성을 타깃으로 한 카메라 광고에서는 좋은 기능이 있는 카메라를 멋지게 들고 사진을 촬영하거나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반대로 여성이 등장하는 경우에는 카메라에 셀카 기능이 있음을 강조하거나 아이, 반려동물 등을 촬영하는 모습이 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는 SNS 등지에 등장하는 게시글 형태의 광고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DSLR이나 고급 기종의 경우에는 대부분 남성이 등장했고, 여성은 거의 찾기 힘들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진계 내의 성차별적이거나 성폭력적인 문화에 자본이 개입하는 것을 넘어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
 카메라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실존하는 사진계 내 성폭력과 성차별

2016년 사진잡지 <보스토크(VOSTOK)>의 사진계 내 성폭력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진계 내 성폭력 피해자라고 응답한 385명 중 과반수가 20대 여성이었고 응답한 피해자의 신분 중에는 학생과 사진가 다음으로 모델이 많았다. 가해자 중에는 85.7%가 남성이었고, 신분은 교수나 강사, 상사나 선배 등이 과반이었다.

성폭력 피해 유형으로는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가 가장 많았고 음담패설이 그 뒤를 이었는데, 심지어 노골적으로 성적 관계를 요구하는 경우도 27%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응답자의 대부분이 대응을 하기보다는 참고 넘어갔다고 응답했는데, 불이익에 대한 걱정이나 평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응답이 도합 57%,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라는 응답이 38.3%를 차지했다.

하지만 성폭력과 피해자들의 존재는 사진계의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사진계 내부에서 여성을 주체로 생각하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 1차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사진 커뮤니티에서는 여성의 존재를 지우고, 사진 찍는 사람들은 당연히 모두 남성일 거라는 구시대적인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고 있다.

거대 커뮤니티의 운영진들이 여성혐오적 분위기를 오히려 부추기고 리뷰어들이나 이용자들은 여성을 모델로만 생각하고 리뷰나 게시글에 여성의 사진을 넣고 높은 조회 수나 추천을 바라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사진인들과 사진계 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카메라 회사 등 자본이 그런 문화를 이용해 성차별/성폭력적 언어와 문화를 재생산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더더욱 밖으로 나오기 힘든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이번 사진계 내 성폭력 폭로는 소수의 사례가 아니라 한국 사진계와 사회의 여성혐오적 문화에 가려져 있던 문제점들이 수면 위로 터져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그:#성폭력, #사진, #성차별, #여성혐오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현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글로 기억하는 정치학도, 사진가. 아나키즘과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장자리(Frontier) 라는 다큐멘터리/르포르타주 사진가 팀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