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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인 15일 오전 강원 춘천시 강원도교육청에서 한 화훼업자가 카네이션 꽃다발을 배달하고 있다.
 스승의 날인 15일 오전 강원 춘천시 강원도교육청에서 한 화훼업자가 카네이션 꽃다발을 배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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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곳곳에서 선생님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들려온다. 이름보다는 별명으로 기억되는 선생님, 학생들에게 손편지를 잘 써 주셨던 선생님, 무섭게 매를 드셨지만 인정이 많았던 선생님, 잘한다며 늘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선생님... 돌이켜보면 내 학창시절 안에도 기억나는 선생님도 참 많았다. 지금쯤은 퇴임한 선생님도 계실 테고 여전히 교단에서 교사생활을 하시는 선생님도 계실 테다.

선생님에 대한 여러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가운데, 반대로 특별했던 한 제자가 생각난다. 물론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다. 대학 시절에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만났던 몇 안 되는 학생들이 내 인생의 제자로 늘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특히, 스승의 날에는 더더욱.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다. 당시 52살이셨던 한 어머님이다.

아들에게 답장을 쓰고 싶은 어머니의 도전

"저기... 과외 구한다고 해서요. 글쓰기 수업도 가능하다고요?"

"네. 자녀분이 몇 학년인가요?"

"그게 아니라... 제가 배우려고요."

그렇게 해서 50대 주부와 20대 대학생은 각각 제자와 선생님이 됐다.

"그런데 무얼 배우고 싶으신 거예요?"

"내가... 아직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해요."

우리 부모님 얘길 들어보더라도 그 시절엔, 특히 여자들의 경우는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하는 것만으로 감사했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당시 그 배움의 현실을 50대 제자를 통해서 맞닥뜨린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제 막 50대 초반일 뿐인데'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면서, 여태 어떻게 생활하고 살아왔을지, 그 기나긴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 아무 문제 없이 생활해오셨다는 어머님. 그런데 무슨 변화가 있었기에, 도대체 어떤 이유로 글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신 걸까.

"아들이 군대에 가서 편지를 보내오는데... 글을 읽을 수가 없어. 답장도 보내고 싶고. 이게 영 답답해서..."

사랑하는 아들을 멀리 군대 보내고 아들의 연락만을 간절히 기다릴 텐데, 글을 못 읽어 아들과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니. 이런 답답하고 답답한 노릇이 또 어디 있을까.

거기다 자녀들 앞에서만큼은 자존심이 있었던지라, 군대 간 아들도, 그리고 딸도 엄마가 글을 읽고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겐 절대 비밀이라며. 다만 남편만이 알 뿐. 그동안 글을 읽는 일은 늘 남편에게 의지해 살아왔더라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글을 배우겠다고 선언을 했고, 남편 역시 이를 지지하고 응원해줬다고 한다. 나는 무조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 인생의 스승이었던 제자

그렇게 참 열심히 배우고 배워 어느덧 글을 읽고 쓰고 글짓기 수업까지... 언제나 의지 만 점에 열심히 배웠던, 나이 많았던 나의 제자.
 그렇게 참 열심히 배우고 배워 어느덧 글을 읽고 쓰고 글짓기 수업까지... 언제나 의지 만 점에 열심히 배웠던, 나이 많았던 나의 제자.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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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은 참 열심히 배우고 배워 금세 글을 읽고 썼다. 글짓기 수업도 했다. 언제나 의지 만 점인, 나이 많았던 나의 제자.

"선생님, 식사하셨어요?"

꼬박꼬박 선생님이라 호칭하고, 시내에서 자취하는 내가 밥을 굶고 다니는 건 아닌지 걱정해가며 과외 시작 전에 따뜻한 집밥으로 한상 거하게 차려 주던 어머님.

그렇게 늘 과외수업은 식사부터 하고 시작됐다. 지금 생각해도 내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제자다.

"선생님. 저 드디어 아들 녀석에게 답장을 썼어요."

"선생님. 제가 글을 읽고 쓰니까 웬일로 우리 집 양반이 제게 편지를 써서 보내왔네요. 고생한다면서... 연애편지 받는 기분이 이런 건가요?"

감동과 뿌듯함이 밀려왔다. 제자가 더 잘할 수 있게 더 열심히 도와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들었다. 아, 이런 게 바로 선생님의 마음일까. 참 보람차게 선생님 노릇(?)을 해왔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나 또한 인생 공부를 할 수 있던 시절이기도 했다.

"결혼할 때는 이런 남자는 무조건 피해야 한다고요!"

수업 후 이어졌던 어머님의 인생수업에 깔깔깔 웃기도 하고, 우리가 사는 인생이란 게 그런 거구나 하며 깨닫기도 하고. 그렇게 부록처럼 따라왔던 50대 제자의 인생 이야기. 그러고 보면 한글을 배워나갔던 50대 제자는 어쩜 내 인생의 잊지 못할 스승일지도 모르겠다.

이 인연이 오래 이어졌으면 참 좋았을 텐데, 내 개인 사정으로 수업은 길게 진행되지 못했다. 이제 좀 뭔가 배우는 재미를 알아가는데 그만두게 됐다며 못내 아쉬워했던 제자. 나 또한 그런 아주머니의 마음을 알기에 어찌나 미안한 마음이 크던지...

당시 50대셨으니, 지금은 연세가 70세를 넘기셨을 테다. 잘 지내고 계실까? 요즘은 어떤 모습의 삶을 살아가고 계실지 몹시 궁금한 날이다.


태그:#스승의날, #제자, #선생님, #인생수업, #한글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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