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11명이 함께 만들어가는 스포츠다. 제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경기장 안에서 혼자서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축구는 결국 모든 선수가 각자의 역할을 함께 해내야 하는 팀 스포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을 이끄는 '에이스'의 가치는 높다. 흔히 프로축구 선수들 간 실력 차이를 '종이 한 장'으로 표현하지만, 그 '차이'를 지배하는 선수들이 있다. 그런 선수들을 우리는 '에이스'라 부른다.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실수 없이 실력을 발휘하는 선수에게 팬들은 전율을 느낀다.

어떤 경기에서든 에이스의 활약 여부는 중요하다. 그 무대가 월드컵이라면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다. 월드컵은 4년에 한 번씩만 개최되고 축구판에 있어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만큼 경기의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때문에 스타 플레이어도 월드컵에서는 실수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리기 위해서는 극한의 압박감을 뚫어낼 선수가 팀에 필요하다. 뛰어난 실력과 고도의 집중력으로 조국에 월드컵 챔피언의 자리를 선사하고자 하는 우승후보국의 에이스들을 알아보자.

2008년부터 시작된 스페인 축구의 황금기는 유래없는 성공을 거뒀다. 루이스 아라고네스의 지휘 아래 스페인은 유로 2008에서 44년 만에 '앙리 들로네(유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아라고네스에 이어 '무적함대'의 선장이 된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은 2010 남아공 월드컵과 유로 2012에서 모두 우승하며 스페인에게 '메이저 대회 3회 연속 우승'이란 역사를 선물했다.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초로 메이저 대회 3회 연속 우승이란 금자탑을 쌓았던 스페인은 생각보다 빠르게 침몰했다.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네덜란드에게 1-5 참패를 당했고, 칠레에게도 0-2로 패했다. 부활을 다짐했던 유로 2016에서는 16강에서 안토니오 콘테의 이탈리아에게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거친 풍랑 속에 놓인 무적함대다.

다비드 실바에게 찾아온 세 번째 기회

스페인은 유로 2016의 실패로 퇴장한 델 보스케 대신 훌렌 로페테기를 선임했다. 로테테기 감독은 점유율 축구라는 기본적인 스페인의 철학을 유지한 채 '속도'라는 색채를 더했다. 사비 에르난데스가 국가대표팀에서 은퇴를 했고,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예전만 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적함대는 다비드 실바를 중심으로 뭉쳤다.

2003년 발렌시아 CF에서 데뷔한 실바는 빠르게 스페인을 대표하는 젊은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2006년부터 스페인 대표팀 경력을 시작한 실바는 팀의 한 축을 곧장 담당했다. 유로 2008 본선 6경기 중 5경기에 출장해 1골을 터뜨리는 등 측면 미드필더로서 역할을 다했다. 유로 2008로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 팬들에게 각인시킨 실바는 유로 2012에서도 빛났다. 모든 경기에 출장했고 이탈리아와 결승전에서는 선제 득점을 올리며 4-0 대승에 시작점을 찍었다.

반면 실바에게 월드컵은 좌절의 무대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실바는 조별리그 1차전 스위스와 경기에서 선발 출전과 준결승 독일전에서 교체 출장하는 데 그쳤다. 델 보스케 감독의 구상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스페인이 7경기를 소화하는 동안 실바는 70분 밖에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나섰지만 팀의 몰락을 막지 못했다.

이번에는 다르다. 실바는 현존하는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하나다. 2010년처럼 주전 경쟁에서 밀리거나 팀의 패배를 무기력하게 지켜보지 않는다. 왼발로 빚어내는 간결한 기술과 정확한 킥을 토대로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의 대성공을 만들어냈다. 올해 32세로 경험의 옷도 두툼하게 입은 실바다.

 지난 2017년 5월 13일, 레스터 시티를 상대로 2-1 승리한 맨시티. 데 브라이너, 다비드 실바 등의 선수가 동료의 득점을 축하하고 있다.

지난 2017년 5월 13일, 레스터 시티를 상대로 2-1 승리한 맨시티. 데 브라이너, 다비드 실바 등의 선수가 동료의 득점을 축하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세계에서 가장 격하고 경기 속도가 빠른 리그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선수답게 상대의 강력한 압박과 몸싸움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실바다. 화려한 기술에 실바는 펩 과르디올라 감독과 만나면서 속도라는 무기도 장착했다. 과거에는 지공 상황에서 빛났던 실바는 이제 역습 상황에서도 위력적인 선수가 됐다.

기술과 속도감, 경험을 두루 갖춘 실바는 로페테기호의 에이스가 됐다. 기본적으로 측면에 배치됐지만 공격 지역 전반에 걸쳐 세밀한 패스로 공격 작업을 조립했다. 도우미에 그치지 않고 준수한 득점력도 선보였다. 유럽 지역 예선에서 9경기에 출장한  실바는 5골을 잡아내며 스페인의 압도적인 월드컵 본선 진출을 만들었다. 실바는 부정할 수 없는 스페인 대표팀의 에이스다.

실바의 특별함이 필요한 스페인의 러시아 도전기

스페인은 러시아 월드컵의 강력한 우승 후보다. 스페인의 힘은 허리에서 나온다. 미드필더 왕국답게 세계 최고 수준의 미드필더가 넘쳐난다. 이니에스타, 세르히오 부스케츠, 코케, 티아고 알칸타라 등이 중원을 구성한다. 바이에른 뮌헨의 주전 미드필더 하비 마르티네스도 대표팀에 합류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 선수들로 채워진 포백 라인도 단단하다. 중앙 수비수 피케-라모스 조합이 패널티 박스를 지키고, 공·수 양면에서 탁월한 풀백 호르디 알바와 카르바할이 측면을 휘어잡는다. 골문 앞에는 다비드 데 헤아가 버티고 있다. 유럽 지역 예선 10경기에서 단 3실점 만을 허용한 스페인이다.

완벽에 가까운 스페인 대표팀에 유일한 흠은 최전방 공격수다. 고민의 크기가 작지 않다. 자원은 많지만 신통치 않다. 유럽 지역 예선에서 주로 선발로 나선 알바로 모라타가 첼시 이적 이후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올 시즌 발렌시아 CF의 주포 역할을 하고 있는 호드리고 모레노가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지만 경험 측면에서 물음표가 달린다.

 2일 오전(한국시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레드불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한국 대 스페인의 친선경기. 한국이 스페인 다비드 실바에게 프리킥 선제골을 허용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지난 2016년 6월 2일 오전(한국시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레드불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한국 대 스페인의 친선경기. 한국이 스페인 다비드 실바에게 프리킥 선제골을 허용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디에고 코스타가 살아나고 있는 점은 다행이다. 그러나 코스타는 스페인 대표팀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인 적이 없다.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스페인의 영광에 반드시 걸출한 공격수의 존재가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빈약한 최전방은 위험 요소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결국 에이스 실바의 활약이다. 보다 정교하고 상대가 예측하기 어려운 패스를 공격수들에게 공급해야 한다. 선배 사비와 이니에스타가 그러했듯이 비좁은 틈을 뚫고 찬스를 창조해야 한다. 실바의 어깨가 무겁다.

만일 로페테기 감독이 이스코를 활용한 '제로톱' 전술을 활용하면 실바의 임무는 더욱 막중해질 전망이다. 가짜 공격수 이스코가 만들어 낸 공간에서 실바가 결정력을 발휘해야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 이 역할은 실바가 유로 2012에서 세스크 파브레가스 옆에서 수행한 경험이 있다. 실바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경기 대부분의 시간 동안 공을 소유하는 스페인은 안정감이 높은 팀이다. 유로 2016에서 이탈리아에게 패배를 당한 후 2년 가까이 패배를 경험하지 않았다. 그러나 월드컵 우승을 위해서는 안정을 넘어선 확실한 승리가 필요하다. 러시아 월드컵을 겨냥한 실바의 발 끝에 많은 것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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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실바 무적함대 우승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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