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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일본에 가보고 싶었다
후지산과 벚꽃을 그와 함께 꼭 한번 보고 싶었다
남편 없이 구경하는 건 상상할 수가 없다
혼자서 보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 사람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인트로 중에서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포스터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포스터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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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루디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먼저 알게 된 부인 트루디는 자녀들이 살고 있는 베를린으로의 방문을 제안한다. 각자의 바쁜 삶과 지난 감정들로 인해 자녀들은 부모의 방문이 영 달갑지 않고, 루디와 트루디는 베를린에서도 여전히 둘 뿐이자 발트해로 떠난다. 남편의 투덜거림에도 기분을 전환시키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트루디와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루디. 하지만 여행지에서의 다음날 아침, 트루디는 죽은 채 발견되고 루디는 혼자 남는다. 장례식을 치른 후 아내의 흔적을 돌아보던 루디는 아내가 가고 싶어 했고 막내아들이 살고 있는 일본으로 떠난다.

루디는 아내가 즐겨 입던 바다색 가디건을 입고 밖으로 나와 봄날의 도쿄 풍경을 대신 보여주고 손으로 매만지고 느낀다. 공원을 걷다 전화기를 손에 들고 춤추고 있는 한 여성을 만나게 되고 그녀(유)에게 춤 '부토'에 대해 물어본다. 죽은 엄마와 대화하기 위해 춤을 추고 있다는 유의 이야기를 들으며 끌린 루디는 그녀를 만나러 매일 공원으로 나간다. 아내가 여행 가고 싶어 하던 후지산으로 둘은 여행을 떠나고, 정작 기다린 후지산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여행은 계속 길어진다. 드디어 후지산의 모습이 드러난 날, 그는 아내의 기모노를 입고 밖으로 나가 춤춘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화면 갈무리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화면 갈무리
ⓒ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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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상황과 심리를 설명하는 대화보다 이미지나 음악, 동작 등 추상적인 이미지가 감정을 더욱 끌어올릴 때가 많다. <파니 핑크>로 국내 영화팬들에게 알려진 독일 여성 감독 도리스 되리는 이번 영화에서 이런 화법을 많이 사용했다. 음식, 그림, 의상, 동물, 화장된 시체 등의 소품부터 시작해서 그림, 춤, 의식 그리고 그림자와 자연 풍경까지 심리를 담았다. 핸드헬드(삼각대 등 장비를 이용하지 않고 촬영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방식)를 통해 인물의 표정을 살리고 '부토'라는 춤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 그리고 만남을 그려냈다.

친구야, 어떻게 지내니


보고 싶은 친구에게 표지
 보고 싶은 친구에게 표지
ⓒ 6699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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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한 사람의 뒷모습이 담긴 책이 있다. 표지를 넘기면 조금은 비뚤 한 손글씨로 친구를 소개해놨다. 글쓴이 양수련. 북한에서 군인이었다가 탈북해 지금은 한국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고 있는 그녀가 '내가 제일 믿고 의지했던 친구' 숙이와 주고받는 가상의 대화를 담은 그림책 <보고 싶은 친구에게>의 첫인상이다.

서울 하늘엔
아쉽게도 별이 잘 보이질 않아.
하지만 서울의 밤은 참 밝아.
넌 어떻게 지내니.
 
숙이의 가상 인사와 숙이에게 보내는 수련의 인사로 구성된 이 그림책은 20여 쪽에 불과하지만, 수련과 같은 탈북자가 아니어도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당신이라면 그녀의 인사에 기꺼이 답하게 만든다. 이 책의 그림을 그리고 글을 함께 쓴 그림작가 윤세정씨의 후기에도 잘 나와 있지만, 북한에서 장교가 되어 평양에 남는다는 것과 꿈을 안고 (그게 수도권 외 지역에서 상경한 남한 사람이든, 수련 같은 탈북자든, 돈을 모으기 위해 한국으로 온 이주노동자든) 서울이라는 메가시티에 와서 막연한 현실 속에서 버틴다는 것은 유사한 평행선이다.

'그리움'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연결하는 고리다. 다시 만날 기약을 알 수 없는(또는 그렇게 예상되는) 경우, 나는 대상이 되어 본다.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에서 남편 루디는 아내 트루디를 그리워하며 그녀의 옷을 입고, 추고 싶어 했던 부토 춤을 추고, 가족에게 만들어 주던 요리를 만들어낸다.

수련은 책 <보고 싶은 친구에게>에서 친구 숙이가 되어 장교가 되기 위해 지금도 버텨내고 있을 일상을 그려냈다. 나와 대상을 닮은 또 다른 나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더 이해하고 그리워하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힘, 희망을 맛볼 수 있다. 막연하더라도 언젠가 가능하다고 상상하게 만드는 그런 희망. 지금 이 시대는 그런 희망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수련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보고 싶은 친구에게
 보고 싶은 친구에게
ⓒ 6699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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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7일 11년 만의 역사적인 만남이 있었다. 국민들은 물론 해외 언론들도 많은 감동을 받았고,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들에서도 중계 화면을 보면서 남북의 만남을 환영했다.

첫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2000년 6월 15일, 스무 살의 나는 대학교 노천강당에 있었다. 새로운 세기의 시작과 함께 남북의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악수를 나눴다. 그때만 해도 나는 정말 금방 통일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난 정부의 대북 정책으로 인해 우리 민족은 오히려 서로를 겨누는 상황이 되었다.

하나의 경계를, 믿음을, 지난 역사를 넘어서기까지 단순히 11년이 아닌 반 세기가 훨씬 넘는 시간이 걸렸다. 경계를 넘어섰으니 이제는 경계를 무너뜨려야 할 때다. 서로의 오해라는 경계, 나만 우선이었기에 먼저 쳐버린 경계, 당신을 알기엔 내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는 변명이 만든 경계 말이다.

친구들을 사고로 떠나보냈던 4월, 세월호 참사로 인해 다시 그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면서 항상 아팠던 4월의 끝에서 올해는 다행히 희망을 보았다, 아니 찾았다. 수련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숙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루디가 죽은 트루디와 춤추며 손을 포개는 장면에서의 그 감동을, 숙이를 만난 수련의 두 번째 책을 통해 느껴볼 수 있길 바라본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입니다.
나도, 당신도, 우린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으니까요.

너무 보고 싶어 힘들어질 때면
바람 되어 불어주고
가끔 저 언덕에서 내 이름 부르며
달려와 힘껏 안아주렴
- 레이디스 코드 <I'm fine thank you> 가사 중에서


보고 싶은 친구에게

윤세정.양수련 지음, 6699press(2016)


태그:#보고싶은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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