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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위한 의미있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계간지 <딴짓>의 발행인인 프로딴짓러가 소소하고 쓸데없는 딴짓의 세계를 보여드립니다. "쫄지 말고 딴짓해!" 밥벌이에 지친 당신을 응원합니다. [편집자말]
"딴짓? 취미 생활? 먹고살 만하니까 그런 소리가 나오지."


프로딴짓러로서 사람들에게 '딴짓 좀 하고 살자'고 말하면 열에 하나는 이런 대답을 하곤 했다. 딴짓을 하자는 건 내가 두 명의 시스터즈와 함께 만드는 잡지 <딴짓>의 모토다. 밥벌이에만 매몰되지 말고 스스로를 위한 무엇을 하자는 뜻을 담았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딴짓을 권할 때면 '그런 태평할 소리 할 때가 아니다'라는 답을 듣는 일도 많았다. 그 말에 일부 공감하기도 했다. 포기세대라는 말을 들을 만큼 먹고 살기 힘든 지금 세대에게 '딴짓'을 권하는 건 사치인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결혼도 포기하고 출산도 포기하고 내 집 마련까지 포기했는데 내가 '딴짓'마저 포기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대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무엇이 남는 걸까?

얼마 전 영화 <소공녀>를 보며 '딴짓'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소공녀>는 일당 4만5000원으로 살아가는 가사도우미 미소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세 가지다. 남자친구, 담배, 그리고 위스키다.

그러나 하루 4만5000원으로 집세와 밥값, 약값을 내고 나면 담배와 위스키를 즐길 여유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담뱃값까지 2000원 올랐다. 미소는 과감히 그중 하나를 포기하기로 한다. 담배? 위스키? 그럴 리가. 그녀가 포기한 것은 바로 '집'이다.

그녀의 취향은 염치없는 걸까

 영화 <소공녀> 광화문시네마 스틸컷
 영화 <소공녀> 광화문시네마 스틸컷
ⓒ 광화문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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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는 월셋집을 정리하고 캐리어에 짐을 담아 대학생 때 함께 밴드 활동을 했던 친구들을 찾아 나선다. 하루만 재워줄래?라고 말하는 미소의 손에는 늘 달걀 한 판이 들려있다. 미소는 더 좋은 기업으로 이직하려 애쓰는 문영, 결혼해 전업주부로 사는 현정, 이혼 후 술에 절어 사는 대용, 노총각으로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록이, 부유한 남편과 결혼해 저택 같은 집에 사는 정미 집을 전전한다.

평범한 친구들 눈에 미소의 선택은 이상하게 보인다. 수액을 맞아가며 바쁘게 일하는 문영은 미소의 선택에 '스탠다드는 아니지. 너 바람든 것 같다'라고 말한다. 노총각 록이는 너는 갈 곳이 없고 자신은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으니 결혼하자고 말한다. 록이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안정'이라고 주장한다. 미소를 가사도우미로 고용한 여자는 미소의 삶을 '유니크해서 좋다'고 한다.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하지 않는 미소에게 친구 정미는 독설을 내뱉는다.

"그 사랑, 참 염치없다."

집 대신 담배와 위스키를 선택한 미소는 정말 '이상'한 걸까? 미소의 취향은 정말 염치없는 걸까?

 영화 <소공녀> 티저영상 스틸컷
 영화 <소공녀> 티저영상 스틸컷
ⓒ 광화문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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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의 치트키라는 금수저가 아닌 이상 우리는 마냥 자유롭게 살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제한된 '선택'이다. 월급에서 생활비를 제하고 남는 20만 원으로 노후대비연금을 들지, 여행을 갈지, 술을 마실지를 선택한다.

게다가 언제나 대가도 있다. 좋은 아파트에 사는 미소의 후배는 20년간 아파트의 대출금을 갚아야 하고 부유한 남편과 결혼한 미소의 친구는 남편 눈치를 보느라 절절맨다. 모두 저마다의 선택을 했을 뿐이다.

누군가의 선택은 '안정적'이라 인정받고 또 다른 누군가의 선택은 '취향'이라 차별받는다. 미소는 집에서 오는 안정성보다 취향을 즐김으로써 얻는 위안을 선택했다. 그러나 미소에 대한 세상의 폭력성은 집요하다.

사실 영화에서 친구들의 삶의 방식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조금 더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 몸을 혹사하며 일하는 문영, 무리해서 아파트까지 얻었는데 갑자기 이혼당한 대용, 적성에 맞지 않는 전업주부 일 때문에 괴로운 현정, 부유한 집에 시집가 남편 눈치 보며 사는 정미의 삶은 주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의 조언 역시 고개를 끄덕일만하다. 담배와 위스키를 끊고 그 돈을 모아 월세방이라도 마련해보라는 정미의 조언은 내 입에서 나올만한 말이기도 했다.

취향은 당연히 '집'보다 후순위가 되어야 할까

다만 중요한 것은 미소의 선택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데 있다. 좋은 집, 안정적인 직장, 성공적인 커리어는 인정할만한 것으로 취급하고 담배나 위스키 같은 취향은 부차적인 것으로 미뤄진다. 취향은 당연히 '집'보다 후순위가 되어야 하는 걸까?

저마다 자신의 선택을 감내하며 산다. 미소가 담배와 위스키를 끊지 않고 끝내 한강 공원에서 텐트를 치며 살기를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그녀의 선택이 우리에게는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존중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취향을 선택하는 것도 선택이다.

 매거진 <딴짓>
 매거진 <딴짓>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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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을 만들다 보면 가끔 고민 상담을 요청하는 독자들이 있다. 그중 한 청년의 상담이 기억에 남는다. 청년은 공장에 다니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바리스타라고 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카페를 운영하는 게 청년의 꿈이었다. 그러나 청년의 부모님이 아프신데다 집안에서 돈을 버는 사람이 청년밖에 없단다. 공장이 서울과 멀어 퇴근 후에 수업을 들을 수도 없다고 했다.

청년의 말을 듣는 동안 같이 가슴이 답답해졌다. 도저히 딴짓할 수가 없는 환경인 것 같았다. 그와 중에 <딴짓>을 찾아 읽고 상담을 신청하는 마음이 느껴져 더 속상했다. 그럴 때면 '쫄지말고 딴짓해'라고 말하는 <딴짓>의 모토가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흔한 댓글처럼 '먹고살 만하니까 하는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다. 결국 그 청년에게는 어떤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주제넘은 조언일 것 같았다.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도 딱히 품을 수 없었다.

허나 언젠가 그 청년이 딴짓을 한다면 그 선택을 존중해주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인 것 같다. 그의 딴짓을 응원하는 것. 그 무게를 감당하는 것도 오롯이 본인일 테니까. 미소가 집 대신 담배와 위스키를 선택한 것을 존중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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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왜 사냐건 웃지요 오홍홍홍. brunch.co.kr/@hongmilm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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