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어벤져스:인피니티 워 >의 한 장면. 블랙 팬서가 이끄는 와칸다 군과 힘을 합친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 윈터 솔져

< 어벤져스:인피니티 워 >의 한 장면. 블랙 팬서가 이끄는 와칸다 군과 힘을 합친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 윈터 솔져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아래 <어벤져스3>) 개봉 후 극장가에서 '어벤져스 열풍'이 불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어벤져스3>는 각종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 불거진 '오역' 논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 영화에서 현재 오역으로 지적되는 부분은 두 군데다. 마지막 쿠키영상에서 닉퓨리가 죽으면서 "mother f…"라고 외치는 부분과 타노스와 아이언맨, 닥터스트레인지가 타이탄에서 전투를 벌인 후 아이언맨의 질문에 닥터스트레인지가 답하는 부분 "it's end game"이다.

쿠키영상 내 오역 논란에 휩싸인 대사는 누가 봐도 서양에서 관용적으로 쓰는 욕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문장 그대로 "어머니..."로 번역했으니, 영화를 본 관객들이 '닉퓨리가 이렇게 효자인 줄 몰랐네'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이다.

일부에선 닥터스트레인지의 "it's end game"이란 대사는 이후 전개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쿠키영상 속 오역보다 문제가 더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내년에 <어벤져스4> 개봉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마지막 단계"라고 번역을 해야 흐름이 이어지는데, "가망이 없어"라고 번역되면서 이해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오역 논란이 알려지고 난 뒤 '역시 그러면 그렇지'하는 반응이 적지 않다. 영어를 잘 모르는 대다수의 관객들도 영화를 보는 순간 어색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던 장면이었다.

지난달 29일 <스타뉴스>는 이와 관련된 소식(박지훈 번역가 '어벤져스 인피니트워' 오역에 대한 변명)을 전하며 "'어벤져스3'는 주요 장면은 블라인드된 영상이 주어지고 스크립터를 받아 번역이 이뤄졌다"면서 "박지훈 작가는 오역 논란이 불거진 "It's end game"을 '어벤져스3'를 일단 마무리하고 '어벤져스4'에 대한 궁금증을 유도하기 위해 "가망이 없어"라고 번역한 것으로 전해졌다"라고 보도했다.

 영화 '어벤져스 : 인피니트 워' 스틸컷.

영화 '어벤져스 : 인피니트 워'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물론 <어벤져스3>의 경우 극도의 보안 속에 촬영이 이뤄지면서 출연했던 배우들조차 정확한 스토리를 알지 못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번역가 역시 블라인드 처리된 영상을 보며 번역을 진행해야 했기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내용을 충실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번역을 진행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일한 조건에서 번역했던 다른 나라는 어땠을까?

일본에선 한국보다 이틀 늦은 4월 27일 <어벤져스3>가 개봉했다. 과연 한국에서와 같은 오역논란이 있었을까? 우선 쿠키영상의 닉퓨리의 영상은 어머니 대신 "くそっ(썩을...혹은 젠장의 의미)"이라고 번역됐다. 'くそっ'는 일본에서 외국 욕설을 해석하거나 번역할 때 흔히 쓰이는 말이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대사인 "its end game"은 "あとがなくなったな(뒤가 없어졌다)"로 번역되었다. 언뜻 보면 한국의 '가망이 없다'와 비슷한 의미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과 달리 정말 상황에 맞는 완벽한 번역이라고 여겨지는 이유가 있다. 일본에선 저 말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한 후에 마지막을 기다려보자", "각오를 하자"라는 상황에서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일본판의 번역이 적절하게 잘 이뤄진 것을 볼 때, 언뜻 <어벤져스3> 한국 번역가가 내세운 고충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한 장면.  우주 정복을 꿈꾸는 타노스(조쉬 브롤린 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한 장면. 우주 정복을 꿈꾸는 타노스(조쉬 브롤린 분).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물론 '100% 완벽한 번역'이란 것은 존재하기 힘들다. 외국어에서 사용하는 표현과 1대1로 매칭되는 우리나라 표현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  자주 오역으로 지적되는 것이 '悔しい(쿠야시이)'라는 표현이다. 한국 기자들은 이 부분을 보통 '분하다' 혹은 '아쉽다'로 해석하지만 두 가지 표현 모두 다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그렇다보니 이 부분이 작위적으로 번역될 때가 많았다. 특히 김연아의 라이벌이었던 아사다마오의 발언은 매번 '분하다'로 번역되어 국내팬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고, 이번 평창올림픽 때 화제를 모았던 컬링팀의 '후지사와'의 경우엔 '아쉽다'로 번역되었다. 아마도 그녀의 친근하고 높은 인기가 배경이었을 것이다.

'쿠야시이'라는 말은 경기에 진 선수가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을 뜻하는데 한국말에는 그 의미 그대로 번역할 수 있는 표현이 없다. 특히 인터뷰에 앞서서 하는 '쿠야시이'는 관용구처럼 많이 쓰이는 표현이다. 스포츠뉴스에서 보면 아쉽게 졌든 완패해서 졌든 진 선수들은 항상 저 말로 인터뷰를 시작한다. 그런데 일부 기자들은 이 부분을 인터뷰한 선수의 감정이 아닌 본인 감정에 따라 번역할 때도 있다. 이렇게 해서 오역이 생산되고 만다.

번역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기의 감정이나 의도가 아닌 작중화자의 의도다. 번역가는 작중화자 혹은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정확하게 관객 혹은 독자에게 전달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게 번역가들의 '몫'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일본 잡지사에도 송고예정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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