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인근서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는 배우 손예진과 정해인, 그리고 안판석 감독이 참석했다.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인근서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는 배우 손예진과 정해인, 그리고 안판석 감독이 참석했다. ⓒ JTBC


안판석 감독의 말은 하나하나가 마치 사랑에 대한 좋은 아포리즘 같았다.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근처에서 열린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안판석 감독은 구름처럼 모인 취재진을 앞에 두고 "일하는 중간에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하다"라며 입을 뗐다.

안판석 감독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할 것"

안판석 감독은 <아내의 자격>(2012)과 <밀회>(2014) 그리고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까지 연출하는 드라마마다 꾸준히 호평을 듣고 있다. 특별한 연출 비법이 있느냐는 질문에 안 감독은 "나는 '요즘 뭐가 먹히지' 혹은 '요새 사람들 뭘 좋아하지'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며 예상 밖의 답을 했다.

안 감독은 그보다는 "내가 지금 골똘하게 관심을 갖고 있고 재미 있어 하는 생각을 메모해놓고 꺼내서 작품을 만든다"며 "아직 확인해 본 바는 없지만 인간은 보편적일 거라는 믿음이 있고 이런 내 기록을 소중히 다뤄 작품에 잘 배열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이 내가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고 아직까지 유효하며 영원히 유효할 것이라 본다"고 덧붙였다.

안 감독이 이번 드라마에서 보다 집중한 것은 '일상의 변주'다. 안 감독은 이날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한 신문의 시 코너에 실린 시 한 줄('세상은 자주 이상하고 아름다운 사투리 같아서 우리는 자주 웃는데 오늘 넌 우는 것을 선택하였지')을 읊으며 "이 시가 내 마음을 쳤다"고 고백했다.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스틸 사진.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스틸 사진. ⓒ JTBC


그는 "매일이 똑같은 일상인데 어떤 날은 기분이 좋고 어떤 날은 살기도 싫고 그렇다"면서 "같은 일상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계속 변한다"며 말을 이어갔다.

"진아(손예진)와 준희(정해인)의 일상도 계속 반복되지만 똑같은 반복이 아니다. '시청자가 그 일상을 보려고 드라마를 볼까' '누가 알아봐줄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한 번 해보자 싶었다. 오늘의 일상은 살아남은 자의 일상이라고 생각한다. 하루하루 전쟁을 치른 뒤 살아남은 자의 일상. 그 미묘한 차이를 봐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 점을 들여다 보면 아주 재밌을 것이다. 나조차 그 차이를 보려고 뚫어지게 화면을 본다. 관객의 눈으로 보고 마음 졸이고 흥미로워 한다."

안판석 감독은 '연인 관계가 시작되면서 갈수록 흥미를 잃고 있는 것 같다'는 지적에 대해 "연인 관계의 완성은 언제일까"라고 다시 되물었다. 그는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그 순간이 완성일까 아니면 누가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는 순간이 완성일까. 이는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이어 "서준희랑 윤진아의 관계가 완성인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문제고 그 찾아온 일상은 묘하게 달라져 있을 거다. 그런 (관계의 변화) 지점이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윤진아는 서준희를 통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각성해나간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만나면서 영향을 주고 좋은 방향으로 변해간다. 서준희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는 윤진아의 성장기이기도 하지만 서준희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무엇이 저 사람을 성장하게 하는 건지 사랑에 있어서 중요한 건 무엇인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봐달라. 그리고 악평이라도 듣겠으니 시원하게 평을 해달라."

"실제 두 배우가 사귀는 거 아니냐고?"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인근서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는 배우 손예진과 정해인, 그리고 안판석 감독이 참석했다.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인근서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는 배우 손예진과 정해인, 그리고 안판석 감독이 참석했다. ⓒ JTBC


안 감독은 김은 작가와 함께 이야기를 만들면서 "펑펑 울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7~9부 정도 대본이 나오면 정말 그 인물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고 그 인물이 돼 울게 된다"며 "슬픈 대목에서는 감정이입 정도가 아니라 실제 그 인물 속에 빨려 들어가 그 인물이 내가 된 것처럼 운다. 이 드라마는 철철 울었다"라고 드라마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안판석 감독은 '실제 두 배우가 사귀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많다는 질문에 "오죽 현실 같았으면"이라며 웃다가도 "그런 반응은 고맙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받고 싶지 않기도 하다"고 말했다.

"TV를 틀면 드라마가 하루 종일 나오고, (그만큼) 친근하니 누구나 쉽게 말을 할 수 있다. 전국민이 드라마 비평가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감독 입장에서도 늘 촬영을 나갈 때마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나간다.

어느 날은 준희와 진아가 아파트 입구에 서서 이야기하는 신을 찍으려는데 대본이 아주 길더라. 조명은 이미 맞춰져 있고 금세 찍을 수 있는 신이었다. 그런데 손예진씨가 아파트 현관 앞에 서서 길게 이야기를 하는 게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맞다. 누가 현관 앞에 서서 (드라마 대본처럼) 길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그렇게 초심을 잃지 말자고 다짐을 하면서도 잠깐의 안락함을 추구했다는 것 때문에 죄책감이 들었다. (다른 장소에서 찍기로 하고) 촬영팀이 전부 자리를 옮겼다. 촬영 준비를 다 마치고 손예진씨가 차에서 내리는데 그 모습이 마치 링에 오르는 복서 같더라. 복서들은 문을 열고 침침한 복도를 걸어와서 관객들이 앉은 틈을 비집고 홀로 링에 오른다. 손예진씨도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여서 세트장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리고 조명이 켜진 밑으로 들어간다. 그때는 마치 무하마드 알리 같다.

첫 촬영부터 지금까지 그랬다. 어릴 때야 겁도 나고 성공해야 한다는 긴장감도 있을 테니 (그럴 수 있지만) 20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그대로다. 이 사람은 커리어 유지 차원에서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연기를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는구나. 이 사람의 모습에서 품위와 위엄을 느낀다. 그래서 두 사람이 실제 사귄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마음에 걸리기도 한다."

한편, 올드팝 등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연출에 대해서는 "젊은 시절 나의 사랑을 생각하면 늘 음악과 결부돼 있다"며 "라디오를 듣거나 길을 지나가다가 그 음악이 나오면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안 감독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시작하면서부터 자신이 좋아했던 음악을 종이에 계속 메모했다고 말했다.

"음악은 사랑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래서 곡 몇 개를 반복적으로 쓰고 있다. 윤진아와 서준희가 부부가 돼있든 아니든 10~20년이 지나 그 음악을 들으면 분명 울 것이다."

안판석 감독은 마지막으로 "드라마가 조금 더 소중하게 다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 이유로 "세상이 좀 더 나아지는데 예술이 영향을 주는데 전국민이 유일하게 향유하고 있는 예술 행위가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렇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안 감독은 "인간의 마음을 좋게 바꾸려고 하는 드라마에 집중해야 한다"며 "사명감이 있다. 내가 언제까지 (드라마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힘을 합쳐 같이 소중히 가꾸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안판석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손예진 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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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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