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 지시하는 허재 감독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농구 월드컵' 아시아예선전 대한민국과 뉴질랜드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대표팀 허재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2018.2.26

▲ 작전 지시하는 허재 감독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농구 월드컵' 아시아예선전 대한민국과 뉴질랜드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대표팀 허재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2018.2.26 ⓒ 연합뉴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지난해 많은 국민들을 감동시켰던 슬로건이자 오늘날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원칙이다. 그런데 정작 나라를 대표한다는 국가대표팀에서 이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허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이 대한민국농구협회는 지난 19일 소집명단을 발표했다. 이미 13일 발표된 24인 예비엔트리 중에서 오세근, 양희종(이상 안양 KGC인삼공사), 안영준(서울 SK), 하승진(전주 KCC) 등 부상과 개인 사정으로 제외된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고 16인으로 명단을 압축했다.

귀화선수 리카르도 라틀리프(라건아)를 비롯하여 이정현(전주 KCC) 김선형, 최준용, 최부경(이상 서울 SK), 두경민(원주 DB) 등이 이름을 올렸다. 대표팀은 6월 28일 중국, 7월 1일 홍콩과 FIBA 월드컵 지역 예선 원정 2연전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허재 감독의 두 아들인 허웅(상무)과 허훈(부산 KT)이 이번에도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두 선수는 허재 감독이 사령탑으로 선임된 이후 사실상 '붙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꾸준히 대표팀에 발탁되고 있다.

형 허웅은 프로농구 올스타 출신이고, 동생 허훈도 지난해 신인드래프트 1순위로 개인 성적 면에서는 신인왕 안영준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프로 무대에서 실력을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 대표팀에서도 허웅이 지난 2017 FIBA 아시안컵에서 정확한 3점슛을 앞세워 대표팀 '양궁부대'의 한 축을 담당했고, 허훈은 농구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과감한 돌파력과 배짱 있는 플레이로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은, 과연 이들 형제가 포지션 경쟁자들을 제치고 대표팀에서 항상 기회를 '독점'해야 할 만큼 월등한 실력을 보여줬는가 하는 부분이다. 허웅과 허훈은 지난 2월 홍콩-뉴질랜드와의 농구월드컵 아시아예선 무대에서도 나란히 발탁되었으나 크게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많은 농구팬은 허웅-허훈 형제 때문에 프로 무대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많은 선수가 대표팀에서 실력을 검증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한다. 그 부담은 자연히 두 선수의 친아버지이면서 대표팀 사령탑인 허재 감독을 향한 '특혜' 의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표팀 인원이 감독 독단적인 결정은 아니지만

물론 '국가대표 경기력 향상위원회'라는 공식 기구에서 대표팀 인원을 선발하고 허재 감독의 독단적인 결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감독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대표팀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선수를 뽑는데 눈치를 봐야 한다면 그 또한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선수가 최근 다른 포지션 경쟁자들에 비해 딱히 우위를 보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대표팀에는 무조건 발탁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표 선수들을 허재 감독 혼자 뽑는 것은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감독이 원하지 않는 선수들을 위원회의 강요로 억지로 뽑는 것도 아니다.

논란은 이미 예비엔트리 발표 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프로농구 어시스트 1위를 기록했던 김시래(창원 LG)가 지난 2월에 이어 이번에는 예비 명단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는 것을 비롯하여, 차바위(전자랜드), 전성현(안양 KGC 인삼공사) 등 올 시즌 프로 무대에서 성장세를 보여줬던 선수들이 대거 외면받았다.

공식신장 185cm인 허웅은 국내 무대에서도 단신 슈팅가드(2번)로 꼽히지만 정작 국가대표팀에서는 포워드로 발탁됐다. 포인트가드인 허훈은 비슷한 나잇대 선수들 중에서는 뛰어나지만 사이즈의 한계나 중장거리 슈팅능력, 경기 완급조절 등에서 약점도 뚜렷한 선수다. 최근에 소속팀이나 리그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대표팀에서 이들이 전폭적으로 부여받은 기회에 비해 부진했던 경기도 많다. 애초에 이들 형제가 대표팀에서 대체 불가할 정도의 실력을 인정받았다면 이런 논란이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허재 감독은 그동안 "대표팀은 짧은 시간 소집되어 손발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선수들을 뽑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해명한 바 있다. 만일 라틀리프나 오세근, 이정현 같이 팀내 비중이 커서 섣불리 제외하기 어려운 '주전급' 선수라면 이해가 간다. 그러나 허웅과 허훈은 냉정하게 말해 팀 내에서 경기마다 비중이 달라지는 식스맨에 불과하다. 이들이 없으면 대표팀이 흔들린다고 걱정할 만큼 월등한 활약을 보여줬거나, 이들을 대체할만한 다른 자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프로농구 시즌 중에 A매치가 열린 작년 11월이나 올해 2월이면 몰라도, 지금은 비시즌 기간이다. 대표선수들은 5월 말에 소집되어 6월 일본으로 건너가 전지훈련과 평가전을 거쳐 최종 12명 엔트리를 확정하기까지 선수들을 점검할 충분한 시간이 있다. 이미 국제대회에서 숱하게 기회를 얻은 허웅과 허훈이 아니어도 대표팀에서 한번쯤 활용해 볼 만할 자원들은 많았다.

허재 삼부자의 '특혜' 논란에 부정적인 시선이 더욱 커지고 있는 이유는 바로 올해 8월에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농구는 2002년과 2014년의 짜릿한 경험을 통하여 아시안게임 우승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선수들에게는 금메달을 따면 병역혜택까지 돌아가는만큼 동기부여가 클 수밖에 없다.

이대로라면 허웅과 허훈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아시안게임까지도 사실상 '프리 패스'로 승차할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들이 최근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보여준 실력을 감안하면 명백히 특혜로 비칠 수밖에 없다. 아버지 잘만나서 매번 태극마크를 쉽게 다는 '금수저' 이미지가 되는 것은 프로 선수로서 이들의 커리어와 자존심에도 손해만 될 뿐이다.

허재 삼부자나 농구협회 입장에서는 억울할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많은 팬들의 눈높이에 비추어볼 때 기회는 평등하지 못했고, 과정도 공정해 보이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다. 남은 것은 이제 결과뿐인데 과연 팬들이 원하는 정의가 이루어질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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