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을 앞두고 K리그 팬들의 가장 이목을 끌었던 이슈는 단연 데얀의 수원 삼성 입단이었다. FC 서울에서 8시즌 간 맹활약하며 레전드의 자리를 '찜'했던 데얀의 라이벌 팀으로 이적은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자신들의 전설을 상대에게 빼앗긴 서울 팬들은 분노했고, 라이벌의 주포를 데려온 수원 팬들은 열광했다.

대부분의 서울 팬들이 데얀의 이적 소식에 울분을 터뜨렸지만, 올해로 만 37세의 공격수와 작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일부 전문가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체력과 순발력에서 한계를 보이는 데얀을 선택한 수원의 결정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그래도 데얀은 데얀이었다. 지난 시즌 리그에서 19골을 터뜨리며 득점 랭킹 3위에 랭크된 데얀은 마치 '푸른 유니폼'을 계속해서 입어왔던 것처럼 데뷔전부터 득점포를 가동했다. 수원의 올 시즌 홈 개막전이었던 FLC 타인 호아와 2018 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한 수 아래의 타인 호아를 상대로 시동을 건 데얀은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 시드니FC 원정 경기에서 멀티골을 넣으며 클래스를 입증했다. 데얀과 수원의 동행 앞에는 '꽃길'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데얀과 수원은 조금씩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했다. 매경기 선발로 나서며 득점을 노렸지만 무득점에 그친 경기가 많았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4차전 상하이 선화 원정 경기와 5차전 시드니FC전에서 1골씩 넣기는 했지만 리그에서는 침묵했다. 리그에서는 4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 원정길에서 1골을 잡아냈을 뿐이었다.

수원이 경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데얀의 공격 스타일에 간극이 컸다. 데얀은 기본적으로 패널티 박스 근처에서 에너지를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영리한 위치선정과 반박자 빠른 슈팅, 유연한 몸동작으로 득점을 뽑아낸다.

결승골 환호하는 수원 삼성 데얀 수원 삼성 데얀(오른쪽)이 17일 일본 이바라키 현 가시마 시의 가시마 사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6차전 가시마 앤틀러스(일본)와의 최종전에서 전반 결승골을 터뜨린 뒤 기뻐하고 있다. 2018.4.17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연합뉴스]

▲ 결승골 환호하는 수원 삼성 데얀 수원 삼성 데얀(오른쪽)이 17일 일본 이바라키 현 가시마 시의 가시마 사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6차전 가시마 앤틀러스(일본)와의 최종전에서 전반 결승골을 터뜨린 뒤 기뻐하고 있다. 2018.4.17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연합뉴스] ⓒ 연합뉴스


반면 스피드에는 강점이 없다. 전성기 시절에도 빠른 속도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유형이 아니었다. 데얀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더욱 스피드보다는 특유의 영리함과 슈팅력으로 상대를 제압했다.

문제는 수원의 서정원 감독이 최근 빠른 역습 축구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부임 초창기에는 짧은 패스를 기반으로 한 공격적인 플레이로 대성공을 거뒀지만, 근래에는 쓰리백을 중심으로 수비에도 무던히 힘을 주고 있다. 여전히 짧은 패스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과거보다는 직선적인 플레이로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데얀은 속도로 상대를 공략하는 타입의 공격수가 아니다. 그런데 올 시즌 수원은 후방에서 수비 뒷공간을 노린 롱패스를 자주 시도하면서 데얀이 의미없이 경기장을 누비는 시간이 많았다. 공중볼에서도 크게 강점이 없는 데얀은 길게 넘어오는 공을 하릴없이 쫓아다닐 뿐이었다.

데얀을 살린 김종우의 활약과 김건희의 등장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수원에는 염기훈-김민우로 이어지는 리그 최고의 왼쪽 공격 조합이 있었다. 하지만 김민우의 군입대로 조합이 깨졌고, 새롭게 영입된 이기제는 공격력에서 다소 아쉬운 모습이다. 측면 공격이 활발하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데얀의 고립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측면 공격이 약해진 상황에서 데얀의 득점포가 불을 뿜기 위해서는 수원이 높은 위치에서 공을 잡는 시간이 늘어야 했다. 서정원 감독의 선택은 김종우였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김종우는 수원에서 유일하게 전진 패스와 드리블에 능한 중앙 미드필더다. 양발 사용에 모두 능하고 날카로운 킥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다소 후방에서 활동한다는 점만 빼면 토트넘 홋스퍼의 크리스티안 에릭센과 비슷한 유형의 선수다.

'데얀 살리기'에 키는 김종우가 쥐고 있었다. 부상으로 2월까지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김종우는 3월부터 본격적으로 전력에 합류했다. 김종우의 등장으로 곧장 데얀의 경기력이 올라온 것은 아니다. 그래도 데얀의 발 밑으로 적절한 패스를 넣어주는 선수는 김종우가 유일했다.

수원 팬들이 뽑은 '3월의 MVP'로 선정된 김종우는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데얀과 날카로운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데얀에게 김종우가 패스를 찔러주는 것을 기본으로 전진성이 좋은 김종우의 스타일에 맞게 데얀이 적절히 공을 내주며 기회를 만들고 있다. KEB하나은행 K리그1 2018 7라운드 상주 상무와 경기에서 데얀이 상대 수비수를 등지고 건내준 공을 김종우가 중거리 슈팅으로 마무리해 선제 득점을 올린 장면이 대표적이다.

데얀은 이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베테랑이다. 데얀에게 매경기 풀타임 활약을 요구하는 것은 욕심이다. 적절한 로테이션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부활의 신호탄을 쏜 김건희의 등장도 데얀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데얀을 쉬게 하고 싶어도 마땅한 대체자가 없어 고민하던 서정원 감독에게 김건희의 활약은 가뭄 속 단비다. 김건희에게 이번 시즌은 중요하다. 데뷔 시즌이었던 2016년에는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지난 시즌에는 조나탄의 등장으로 완전히 백업으로 밀렸고, 간혹 경기장에 나서도 부진했다. 팀 내 입지를 위해서는 반드시 활약이 필요한 2018 시즌이다.

기뻐하는 수원 삼성 선수들 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5차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시드니 FC의 경기. 동점골을 기록한 수원 삼성 데얀이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2018.4.3

▲ 기뻐하는 수원 삼성 선수들 지난 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5차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시드니 FC의 경기. 동점골을 기록한 수원 삼성 데얀이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올 시즌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듯 김건희는 리그 6라운드 강원FC와 경기에서 멋진 헤더 골을 작렬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전반전 동점골에 이어 후반전에는 상대의 자책골도 유도하면서 맹활약했다. 데얀에 비하면 무게감이 떨어지지만 적극적인 움직임과 자신감 있는 플레이로 수원 팬들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아직 부족함이 있어도 데얀의 체력 관리를 위해서 서정원 감독은 김건희를 적극 활용할 공산이 크다. 강원전 활약 이후 김건희는 곧바로 이어진 상주와 경기에서 교체 출장했고, 지난 18일에 있었던 가시마 앤틀러스와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6차전에도 교체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김건희의 등장으로 휴식을 취한 덕인지 몰라도 데얀은 가시마전에서 소중한 결승골을 넣으며 팀의 16강 진출을 견인했다.

올 시즌 데얀은 공식 경기 13경기 중 7골을 터뜨렸다. 훌륭한 득점 기록이다. 다만 경기력 측면에서는 아직 물음표가 달린다. 수원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조금씩 '데얀 활용법'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이번 시즌 수원의 성패를 결정지을 데얀이 얼마나 많은 득점을 기록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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