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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울산에는 그 중심을 흐르는 태화강이 있다. 그 강에는 여러 개의 다리가 있는데, 태화교도 그 중 하나의 다리이다. 태화교 아래에서 나는 여섯 살, 네 살인 아들과 함께 있다가

"여기서 10분만 기다려, 아빠 금방 갔다 올게. 우리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

큰아들이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손에 찬 시계의 초침을 가리키며

"아빠 10분이면 이 바늘이 몇 바퀴나 돌면 되는데?"
"응 10바퀴만 돌면 돼. 다른 데 가지 말고 꼭 이 자리에 있어야 돼."
"알았어."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주차장에 있는 차를 가지러 갔다. 그런데 가는 중에 직장 상사인 정 부장을 만났다.

"윤 과장, 아주 잘 만났네. 지금 아주 중요한 일 때문에 가고 있는데, 인터넷으로 우리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제품 하나만 좀 조회해주면 좋겠어."

직장 상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 하고 조회하는 동안 정 부장은 전화기를 들고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 시간 큰아들이 초침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다가

"열 바퀴 다 돌았다. 어! 아빠가 안 오네."
"열 한바퀴"
"열다섯 바퀴"
"우리 아빠 찾으러 가자."

그리고는 동생 손을 잡고 다리 위로 올라갔다. 잠시 후 정 부장이 원하는 정보를 찾아 주고는 시계를 보니 20분이 지나 있었다. 아차 싶어 아이들 있는 곳을 보니 아이들이 없어졌다. 한참 주위를 둘러보니 큰아이가 작은아이의 손을 잡고 다리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다리와 이어진 도로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저러다 사고가 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졌다. 정 부장에게 간다는 말도 못하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아이들은 점점 도로 쪽으로 걸어가고 마음이 급해진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넘어졌다. 양복바지가 찢어져 피가 났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다리가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또 넘어졌다. 아이들이 무사하기만 하다면 진짜 잘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안 돼, 도로로 가면, 안 돼. 그 자리에 있어 아빠 간다."

아이들의 걸음은 점점 도로 가까이로 걸어가고,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뛰어갔다. 그리고 아이들이 도로를 막 건너려 할 때, 그 앞에 도착하여 아이들을 막을 수 있었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갔더라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하였다.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고, 찢어진 바지 사이로 피가 나고 있었다.

"휴. 정말 다행이다. 아빠가 어디 가지 말고 있으라고 했잖아?"
"응, 아빠 기다리다 안 와서."

안도의 한숨을 쉬며 꿈에서 깨어났다. 어릴 때 아이들에게 못해준 것이 마음에 걸렸던지 꿈속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를 놓쳐버리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 꿈이었지만, 아이들은 아빠를 기다리며 얼마나 초조했을까? 시계의 초침 돌아가는 것을 보며 얼마나 아빠를 기다렸을까?   

일요일이라 교회에 다녀오면서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둘째와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는 기꺼이 그러라고 하였고, 집에 와서 둘째에게 여행을 가자고 했다.

얼마나 아빠를 기다렸을까

10분만 기다려, 아빠 금방 갔다 올게
 10분만 기다려, 아빠 금방 갔다 올게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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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의 얼굴을 보니 꿈속에서 보았던 아이의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껏 내가 아들에게 못해준 것들이 생각났고 둘째를 보니 아직도 태화강변에서 초조하게 나를 기다리는 꿈속의 어린 시절 그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알코올 중독에 빠져 아이들과 함께 해주지 못했을 때, 우리 아들들은 얼마나 나를 기다렸을까. 아빠와 함께 놀이동산도 가고, 가족과 함께 여행도 가고, 얼마나 맛있는 것도 먹고 싶었을까?

그 생각이 들어 둘째와 함께 여행을 하며 함께 시간도 보내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었다. 이제 조금만 더 나이가 들어버리면 해주지 못할 것을 더 늦기 전에 해주고 싶었다. 모든 것은 때가 있지만, 그때가 훌쩍 지나버린 지금이지만, 그래도 무엇이라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꿈속에서 아이를 향해 달려가며 애타는 내 마음이 떠올랐다.

"오늘 아빠랑 오토바이 드라이브 어때?"
"갑자기 왜 그래요?"
"아빠가 드라이브 시켜주고 싶어서 오토바이 타는 것 좋아하잖아."
"좋아요. 가요."   

계획된 여행이 아니었지만 무작정 둘째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출발했다. 경주를 갈까, 밀양으로 갈까, 정자 바닷가나, 동구 울기등대 등을 이야기하다가 경주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경주로 가는 길에 오토바이 펑크가 나버렸다. 산업도로이기 때문에 차들이 시속 80km로 달리는 길이라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다행히 뒤따라오는 차가 없어 넘어지지 않고 도로 옆에 멈춰 설 수 있었다. 오토바이를 길옆에 세워두고 둘이 앉아서 허탈하게 웃었다.

"아빠, 제가 몸무게가 많이 나가서 그런 것 같아요. 살 뺄게요."
"아니다. 너 잘못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오토바이 가게에 전화를 해서 위치를 설명해주고 오토바이를 찾아가게 조치했다. 그러고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오토바이 타고 가다 경주 가는 산업도로 부근에서 타이어 '빵구'가 나서 더 못 갈 것 같아요. 차 가지고 태우러 오면 좋겠어요."

아내는 깜짝 놀라서

"다친 데는 없어요? 정확한 위치 좀 찍어주세요."   

조금 기다리자 아내가 왔다. 차를 타고 가는데, 아내가

"이왕 내친 김에 태화강역까지 태워줄 테니 기차를 타고 어디든 다녀오세요."
"너 생각은 어때?
"좋아요. 아빠 가요."

그래서 무작정 여행을 시작했다. 기차역에 우리를 내려주고 아내는 카드를 건네주며

"잘 다녀와요."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역 대합실로 둘이 팔짱을 끼고 들어와 기차 시간을 보니 마땅하게 탈만한 기차가 없었다.

"마땅하게 탈만한 기차가 없네. 시외버스터미널에 가면 있을 거야. 그리로 가자."

기차역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니 창원으로 가는 버스가 10분 후에 출발했다. 다른 생각하지 않고

"우리 창원으로 가볼까?"
"그곳에 뭐가 있어요?"
"아빠도 몰라 무작정 가보는 거지 뭐."

어차피 계획을 세워 움직이는 여행이 아니고 무작정 출발하는 것이라서 목적지는 어디라도 좋았다. 그래서 도착한 곳이 창원이었다. 창원 터미널에 나와서 관광안내도를 훑어보았지만 딱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없었다. 어차피 무작정 가는 여행이니 아들에게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처음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가자."

아들도 동의를 하여 터미널 앞에 있는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첫 번째로 오는 버스를 탔다. 그 버스는 지선버스라서 작은 도로를 달렸다. 한 30분가량을 달리다 버스는 종점에 도착했다. 시내버스 기사에게 가서 물었다.   

"기사 아저씨 저희들 울산에서 왔는데, 창원에 어디 갈만한 곳이 있습니까?"
"창원은 그렇게 볼만한 곳이 없고, 마산으로 한번 나가보세요. 저쪽에 가면 가는 버스가 있을 겁니다."

기사가 말한 곳으로 가니 마산으로 가는 시내버스가 있었다. 버스를 타고 달리니 도로 옆에 벚꽃들이 줄지어 피어있었다. 며칠 전 비가 내려 벚꽃이 떨어지기는 했어도 아직은 볼만했고, 멀리 보이는 연둣빛 산은 봄의 생명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벚꽃은 졌지만 추억은 쌓이는 여행
 벚꽃은 졌지만 추억은 쌓이는 여행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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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구불구불한 벚꽃 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이 진해였다. 우리가 생각한 곳은 마산이었는데, 그 버스는 진해를 경유해서 가는 버스였던 것이다. 진해의 중심 도로를 달리는데 사람들이 많은 곳이 보였다. 아들이 갑자기

"아빠, 여기 한번 내려 봐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데 뭐 때문인지 보고 가요."

어차피 마산에 꼭 가야할 이유가 없었기에 아들과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 내렸다. 그런데 그곳이 진해 군항제 행사하는 곳이었다. 애초에 진해 군항제에 올 생각을 하지 않고 무작정 출발했는데, 진해 군항제에 오게 된 것이다.

군항제 행사장 주변에는 차량이 통제되었고, 큰 도로 양 쪽에는 음식을 파는 천막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천막 앞 곳곳에는 돼지 바비큐를 하며, 사람들의 눈과 코를 유혹하고 있었다.

"돼지고기 맛있겠다. 먹을래?"
"배 안 고파요."   

진해 군항제는 벚꽃과 음식과 사람들로 지천이었다. 아들에게 무엇이든 먹이고 싶어 행사장을 돌며

"저것 먹을래?"란 소리만 열 번은 한 것 같고, 아들은 "배 안 고파요"라는 답을 열 번은 한 것 같다. 그렇게 둘이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면서

"아무런 계획도 안 세우고 왔는데, 정말 여기에 잘 온 것 같지? 우리가 운이 좋은 모양이다."
"맞아요."

그렇게 돌아다니는 중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곳이 보였다. 그곳은 제왕산까지 모노레일로 올라가는 줄이었다.

"저것 한번 타볼까?
"예, 좋아요. 아빠."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니 위에는 박물관이 하나 있었는데, 8층에 진해 시내를 전망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바라본 진해 시내는 도로마다 벚꽃이 피어 있었고 멀리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박물관 안에는 군항도시 진해시의 역사가 사진과 유물과 함께 잘 정리되어 있었다.   

다음으로 들른 곳이 여좌천이었다. 굴다리를 지나 올라가니 작은 천이 있었고 천 주변에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양쪽으로 벚꽃이 화려하게 가득 피어있었다. 진해는 온통 벚꽃 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도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고, 멋진 꽃길을 따라 걸으며, 아들에게 또 물었다.

"저것 사줄까?"
"배 안 고파요."

아들은 내 마음도 모르는 채 사주려고 하는 것마다 안 먹는다는 말만 했다. 그러고는

"아빠, 우리 돈 아껴서 나중에 맛있는 것 먹어요. 그것이 맛있는 것에 대한 예의예요."
"넌 음식에까지 예의를 차리냐?"

라고 말하고선 더 이상 권유하지 않았다.

"내년엔 저도 여자 친구 만들어 여기에 오고 싶어요."
"제발 그래라."
"저기 꽃으로 만든 화관이 보이네요. 엄마 사주면 좋아할 텐데."
"야, 저걸 어떻게 울산까지 들고 가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데, 세계를 다니며 배낭여행을 하는 중이라며 사진을 파는 외국인을 보았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2천원을 주고 사진을 한 장 사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언젠가 나도 저런 여행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그렇게 돌아다니니 시간은 오후 5시가 넘어있었다. 그때 마침 거리에 플래카드가 붙은 것이 보였다. 아들이 좋아하는 스시였다. 아들이 그것을 보더니

"아빠, 스시 먹으러 가요."
"그래 가자."   

폐쇄된 진해역 앞은 복개천이 있었는데, 스시 식당은 그곳에 있었다. 생각 외로 가격이 저렴했다. 아들 식성을 아는 터라, 3인분을 시켰는데, 아들은 음식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인지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진해시외버스터미널에 갔는데, 울산으로 바로 가는 차는 6시가 막차였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부산 서부 터미널까지 가는 차를 탔다. 타자마자 피곤이 몰려와 나는 잠에 빠졌다. 서부터미널에서는 바로 울산에 오는 버스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지하철을 타고 노포동까지 와서 울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집에 돌아오니 시간은 11시가 넘어있었다.

일요일이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오토바이 사고부터 창원, 진해 여행까지 많은 일이 일어난 하루였다. 아들과 나는 좋은 추억을 공유했다는 것에 보람이 있었다. 다시 지난밤 꿈 생각이 났다. 아빠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주었다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위안이 되는 하루였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만약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했더라면, 꿈속의 아이들은 교통사고가 날 수도 있었으리라. 때를 놓치면 다시 돌이킬 수 없고, 그것은 화로 돌아올 수도 있다. 난 지금이라도 우리 아들들이 아이 때 못해준 것을 다해주고 싶다. 아들 둘은 다 커버렸지만, 그래도 그 마음속에는 어린 아이가 들어있을 것이다.

어릴 때 만족하게 해주는 만큼은 못할지라도, 아들들의 마음속에 있는 어린 아이의 기다림을 해소하여주고 싶고, 그 어린 아이가 하고 싶었던 것을 지금이라도 해주고 싶다. 그 아이가 해맑게 웃을 수 있게.   

"지금 당신의 어린 아이는 당신이 무언가를 해주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덧붙이는 글   

'무조건 여행'이라 이름 붙인 둘째와의 여행에 대해 아내는

"벚꽃은 졌지만 추억은 쌓이는 여행"이라며 시적인 표현을 해주었다.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어디 있으랴. 둘째와 갑자기 여행을 떠났고, 생각 이상의 좋은 추억을 가슴 가득 담고 왔다. 아들에게나 나에게나 오랫동안 잊을 수 없으리라.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아들이 힘들 때마다 아빠와 함께 떠난 이 여행을 기억한다면 새로운 힘이 생기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나는 시를 쓰며 살았는데, 아내도 어느덧 나의 영향을 받았음인지 반은 시인이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하나도 틀림이 없는 말이다.

"와, 정말 멋진 말입니다. 이 말 제가 좀 써도 되겠어요?"

그래서 기존에 쓴 '무조건 여행'을 '벚꽃은 졌지만 추억은 쌓이는 여행'으로 제목을 바꾸었다.


태그:#CYYOUN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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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생활 속에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들꽃은 이름 없이 피었다 지지만 의미를 찾으려면 무한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들꽃같은 글을 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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