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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부모모임은 함께해 온 부모님들과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묶어 한 권의 책으로 제작하려 합니다. '나는 성소수자입니다', '나는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입니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라는 목소리를 담아 <커밍아웃 스토리- 성소수자와 그 부모들의 이야기>를 출판합니다. 저희의 솔직한 이야기가 위로의 손, 도움의 손으로 다가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네 번째 이야기는 <오마이뉴스>에서 이은솔 시민기자와 함께 진행했습니다. [편집자말]
['성소수자와 부모들의 이야기' 이전 기사]
① "지금 성으로 살고 싶지 않아" 내 삶을 멋지게 바꿔준 아이
② 아들 덕분에 2년 차 '성소수자 활동가'가 된 부부
③ "게이인 아들을 사랑한다" 엄마의 외침이 미국을 바꿨다

 트랜스젠더 남성인 변우빈 씨는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가족등록부 정정 신청도 본인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아버지 변홍철씨는 말한다.
 트랜스젠더 남성인 변우빈 씨는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가족등록부 정정 신청도 본인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아버지 변홍철씨는 말한다.
ⓒ 변홍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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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해빈이와 같은 성 소수자들의 존재는 하느님이 창조한 이 세상의 놀라운 다양함의 일부라고 믿습니다. 풍성한 피조물들의 꽃밭의 한 부분에는 해빈이와 같은 트랜스젠더들도 당당하게 자신의 색깔과 향기를 발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2월, 트랜스젠더 남성 변우빈씨의 아버지 변홍철씨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의 일부다. 변우빈씨 가족은 작년(2017년) 여름부터 개명과 성별 정정 신청을 준비해 왔다. 이름을 '해빈'에서 '우빈'으로, 가족관계등록부 상 성별을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경해 달라는 것이다. 변홍철씨가 글을 올린 날, 대구가정법원은 이들 가족이 낸 '등록부정정허가 신청'을 받아들였다. 기쁜 소식을 알리기 위해 쓴 이 글은 페이스북에서 170번의 공유와 1240여 개의  '좋아요'를 기록했다. 
 
변우빈씨의 부모 변홍철, 오은지씨는 대구에서 함께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아들을 통해 성소수자부모모임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한번 가보자는 마음이었지만, 은지씨는 이내 정기모임마다 대구와 서울을 오갈 만큼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지난 4월 3일, 대구에서 이들 부부를 만났다.

"하나하나 모은 탄원서를 내면서, 평범한 사람들도 가족, 친척, 이웃에 성소수자가 있을 때 받아들이고 응원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이만큼 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80장의 탄원서, 우리 사회가 이만큼 왔다는 증거

-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오은지 : "저는 오은지라고 하고요, 부모모임에서는 '위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저희 집 둘째 우빈이가 트랜스젠더 남성입니다. 아이가 소개해줘서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나가게 됐습니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고, 대구에 살고 있습니다."

변홍철 : "저는 트랜스젠더 아들을 둔 아빠고요, 변홍철이라고 합니다. 같이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지난겨울 변홍철 님이 올리신 글이 SNS에서 소소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가족등록부 정정신청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됐나요?
변홍철 : "희망법(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분들의 도움이 컸죠. 그분들께 법적 절차에 대한 조언도 받고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저희 가족이 맨 처음에 했던 고민은 어느 지역 법원에 이 신청을 넣을 것인가 하는 거였어요. 대구가 아무래도 보수적인 경향이 있기 때문에 서울로 주소를 옮기는 게 좋다는 주변의 조언을 듣고 고민을 했는데, 저희 아들이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 대구에서 정면돌파를 해보고 싶다'고 했죠. 
 
사실 대구는 퀴어문화축제가 올해로 10년째 열릴 만큼 성소수자 운동이 힘을 키워가고 있는 지역이에요. 대구에도 우리 아들과 같은 성소수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힘이 되고 싶었고, 이웃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오은지 : "주변의 이웃들이 저희 아이 이야기를 듣고는 많이 응원하고 지지해 주었어요. 성별 정정 신청 서류에 지인들의 탄원서(진술서)가 많으면 도움이 된다고 해서 주변에 말씀드리니, 모두들 적극적으로 써주셨어요. 게다가 이 탄원서는 미리 작성된 글에 서명만 하는 게 아니라, 각자 자신의 경험과 입장에서 아이를 위해 글을 새로 쓰고 도장을 찍어주셔야 하는 거였어요. 부담스럽고 번거로운 일인데도 모두 정성껏 써주셔서 너무 고마웠어요.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삼촌과 이모들, 그리고 오래된 지인들은 아이를 어려서부터 봐왔던 이야기를 하면서 '이 아이의 성별을 정정해주면 더 좋은 시민으로 잘 살아갈 거다, 응원한다' 이런 내용을 써주기도 하고, 어떤 분은 혹시라도 늦을까 봐 점심시간에 헐레벌떡 뛰어와서 탄원서를 쥐여 주시기도 했어요. 먼 곳에 사는 지인은 손으로 눌러 쓴 글을 써서 우편으로 보내주기도 하고요. 그런 지지와 응원에 저희 가족은 용기도 얻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이렇게 하나하나 모은 탄원서를 내면서, 평범한 사람들도 가족, 친척, 이웃에 성소수자가 있을 때 받아들이고 응원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이만큼 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법원에 낸 가족등록부 정정 신청을 통해 변우빈 씨는 주민등록상으로도 남성이 됐다. 대구의 이웃들은 탄원서를 통해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법원에 낸 가족등록부 정정 신청을 통해 변우빈 씨는 주민등록상으로도 남성이 됐다. 대구의 이웃들은 탄원서를 통해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 변홍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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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이 살아야 하는데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

- 할머니도 트랜스젠더 손자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지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우빈씨가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오은지 : "저한테 제일 먼저 커밍아웃 했어요. 우빈이가 여고를 다녔는데, 1학년 한 학기만 다니고 학교를 그만두었어요. 아이가 중학교 때부터 조금씩 어두워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긴 했지만 성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는지는 몰랐죠. 자퇴한 다음해인 2015년 가을에 아이가 할 얘기가 있다고 하더니 커밍아웃을 했죠. 예상을 전혀 못 하긴 했지만, 성소수자의 존재에 대해 모르고 있던 건 아니기 때문에 크게 충격을 받진 않았어요. 
 
다만 제가 더 놀랐던 건, 저희 부부는 아이가 커밍아웃하기 전에도 퀴어퍼레이드에 아이와 함께 가보기도 했거든요. 엄마 아빠가 어느 정도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있는 것을 아는데도 이야기하기가 이렇게 힘들었구나, 저는 오히려 이게 더 놀랍고 가슴 아팠어요. 우리가 아무리 이해를 한다고 해도 당사자가 느끼는 건 또 다르구나 싶었죠.
 
나중에 돌아보니 '가슴이 너무 커서 축소하는 수술을 하고 싶다'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그때 단지 미용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줄 알았어요. 커밍아웃을 한 후에도 수술을 바로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러는 사이 아이는 한여름에도 압박붕대로 가슴을 꽉 동여매고 다녔어요. 어느 날, 엄마 아빠 나는 정말 너무 힘들어요 그러더라고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고, 너무 덥고, 사람도 만나기 싫다고…. 정말 미안했어요. 커밍아웃하고 일 년이 지나도록 우리가 그냥 손을 놓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얼른 가족회의를 했죠. 이렇게는 안 된다, 애가 죽을지도 모른다, 가슴수술부터라도 하자. 그래서 가을에 가슴절제 수술을 했고 겨울이 지난 뒤 작년 봄에 자궁적출 수술도 했어요. 그러고 나니 성별정정도 빨리 하고 싶다고 해서 작년 여름 희망법 변호사님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변홍철 : "저는 아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오히려 안심이 됐어요. 아, 이래서 힘들었구나. 이 친구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그런데 그 얘기는 바꿔 말하면 우리가 지켜보기에도 우빈이가 아주 힘들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밖에 나가지도 않고, 잘 먹지도 않고. 무엇보다 말을 안 하니까. 같이 사는 친할머니도 손녀, 그때는 손녀인 줄 알았으니까, 걱정을 많이 하셨죠."

오은지 : "할머니께는 어떻게 알려드려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시기도 하고요. 그런데 막상 말씀드리고 나니 '괜찮다. 힘내라. 네가 이겨낼 만한 사람이니 그런 시련도 주신 거겠지' 하며 꼭 안아주시더라고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내 자식이 살아야 하는데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 애가 죽을 순 없지 않느냐' 하셨어요. '트랜스젠더'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셨겠지만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하시고, 외갓집에 더 많이 놀러 오라고도 하시고요. 이런 걸 보면서 아, 우리가 지레 너무 움츠러들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 글에도 적으셨지만 가족들이 가톨릭 신자라고 하셨는데, 성 소수자를 '반대한다'고 말하는 이들 중 보수 기독교인이 많잖아요. 가톨릭 신자이자 성 소수자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변홍철 : "저희 가족에게는 이 문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오히려 신앙이 큰 도움이 됐어요.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 세계 전체가 하느님이 창조한 놀라운 신비잖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당장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신비를 부정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라고 저희 가족들은 생각한 거죠. 일부 기독교인들이 교리를 내세워 성소수자들을 혐오하고 차별하지만, 사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듯이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이에요.

또 흔히 성소수자 차별의 근거로 몇몇 성경 구절들을 들곤 하는데요. 권위 있는 성서학자들이나 양심적인 성직자들은 그런 주장이 잘못된 해석이라고 반박합니다. 그 구절들은 사실은 동성애나 성소수자들을 죄악시하거나 심판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공동체가 약자들을 환대하지 않고 다수의 힘으로 폭력을 저지르거나 배제하는 것에 대해 하느님이 분노하는 내용이라는 거지요.

물론 저희가 사는 대구의 가톨릭 교구와 공동체 안에서 우리 아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를테면 우리 아들은 어렸을 때 여성으로서 세례를 받았는데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저희가 맞닥뜨린 또 하나의 도전이에요. 당장 지금의 교회법과 제도로 이 상황이 어떻게 이해되고 해결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나가는 성당의 이웃들은 우빈이의 이야기를 조금씩 알게 되고, 그러면서 아직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공동체 안에서 조금씩 받아들여지고 있는 과정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2016년 6월 인터뷰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성소수자 문제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등 여러 차례 가톨릭 교회가 소외시켜온 성소수자들을 이제는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결국 가톨릭을 비롯한 기독교 전체에서도 이런 생각들이 더욱 확산되어 가고 변화가 생길 거라 믿습니다. 하느님 형상으로 만들어진 고귀한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신성모독이라는 겸손한 마음들이 더욱 퍼져 나가서, 성소수자들도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사랑 받으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구명보트' 같은 커뮤니티들이 더 많이 생겨야 해요."

 오은지, 변홍철 씨 부부는 트랜스젠더인 아들 덕분에 새로운 것들을 공부해나가는 과정이 즐겁다고 말했다.
 오은지, 변홍철 씨 부부는 트랜스젠더인 아들 덕분에 새로운 것들을 공부해나가는 과정이 즐겁다고 말했다.
ⓒ 이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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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부모들이 찾아볼 수 있는 책 만들고 싶어

- 지금 오은지님은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운영위원으로도 계신데, 처음에 어떻게 나가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오은지 : "아이가 먼저 '엄마, 이런 모임이 있는데 한번 가보면 어떨까' 하고 권했어요. 저는 부모님들만 계실 줄 알았는데, 처음 가보니까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더 많았어요. 커밍아웃을 갑자기 받고 충격받은 부모님들뿐 아니라, 내 부모에게는 커밍아웃을 아직 못 했거나, 부모님께 거부당한 분들이 다른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도 오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각자의 절실한 이야기들에 마음이 너무 아프기도 하지만, 갈 때마다 많이 배우고 힘을 얻으니까 자꾸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도 커졌고요."

변홍철 : "저는 가장 중요한 게 이 문제를 '정치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가족이 이웃들에게 아이의 성별정정 신청을 알리고 그 과정을 함께한 것도 그런 의미였거든요. 커뮤니티를 만들고 지지하는 사람들을 조직하는 것. 이제 싹 트는 단계이긴 하지만, 녹색당이나 성소수자 단체 같은 커뮤니티들이 있잖아요. 이런 '구명보트' 같은 커뮤니티들이 더 많이 생겨야 해요."

-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책을 준비하는 이유가 있는지, 또 어떤 내용의 책인지 궁금해요.
오은지 : "부모모임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당사자들은 어려서부터 부모들에게 사인을 많이 보낸다고 해요. 그런데 저희 세대는 성소수자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정보도 없기 때문에 더더욱 눈치를 못 채거나 편견을 나타낼 뿐이죠. 그래서 당사자들은 더 상처를 받고. 그래서 시민들이 기본적인 교육을 제대로 받는 것과 사회에 바른 정보가 공유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동안 성소수자 부모님들과 당사자들이 많은 글을 써왔어요. 언론에 발표도 하고 직접 들고 나가 읽기도 하고. 그러면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이 부모모임 안에서 모였어요. 성소수자에 대해 궁금할 때, 본인이 커밍아웃으로 고민할 때, 가족에게 갑자기 커밍아웃을 받고 당황했을 때 찾아볼 수 있는 바른 정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럴 때 도서관에서, 서점에서 찾을 수 있는 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목을 <커밍아웃 스토리>로 정한 이 책에는 다양한 입장의 성소수자 부모님들 글과 당사자들의 글이 실려 있어요. 여기에 연구자 두 분(김승섭, 이지하 교수)께서 함께 글을 써주셨어요. 한창 마무리 편집 중입니다."

"아이 덕분에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넓어진 것 같고, 예전엔 못 느꼈던 것들을 많이 느낄 수 있게 됐어요. 아이가 아니었다면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했을 텐데, 아이 덕분에 많이 배우게 되었고 더 겸손해야 한다는 걸 느껴요."

"성소수자의 목소리가 민주주의의 확장,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알던 인류가 반드시 이런 모양일 필요는 없다는 상상을 해보기도 하고요."

느리지만 분명히 세상은 바뀌고 있다

- 아들의 커밍아웃과 부모모임 활동을 통해 달라진 게 있으신가요?
변홍철 : "아들 덕분에 여러 가지를 새로 배워요. 아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의 인식 수준을 가졌는지를 새롭게 발견하고 있는 거죠. 저는 뜻밖에 놀랐던 게,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신청이 받아들여진 이후의 행정적 절차가 별 어려움 없이 착착 진행이 되는 거예요."

오은지 : "아이가 호르몬 주사를 서울 가서 매번 맞기는 힘드니까 주사약을 처방받아 왔어요. 하지만 가족이나 본인이 직접 주사를 놓는 것은 못 하겠더라고요. 가족들이 의논 끝에 늘 이용하는 동네 병원에 가서 부탁했어요. 당연히 커밍아웃을 하게 된 건데,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 모두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셨어요.

아이는 운동하러 가서도 코치님에게 커밍아웃하고요. 저희 가족은 그렇게 동네 이웃들에게도 하나씩 둘씩 커밍아웃하고 있는데, 의외로 잘 받아주는 평범한 이웃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도 점점 달라지고 있구나 하는 것을 피부로 느껴요. 큰아이도 '대학에 그런 친구들 많고 동아리도 있다. 친구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동생에게 해주고요. 

저는 아이 덕분에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넓어진 것 같고, 예전엔 못 느꼈던 것들을 많이 느낄 수 있게 됐어요. 아이가 아니었다면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했을 텐데, 아이 덕분에 많이 배우게 되었고 더 겸손해야 한다는 걸 느껴요. 아이에게 고마워요."

변홍철 : "정치적인 입장은 같이해도 '퀴어 문화축제 같이 가자'고 하면 '난 그런 데는 안 간다'며 완강히 버티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 우빈이가 트랜스젠더라는 걸 알게 되고는 진지하게 다시 생각하고, 현실을 있는 대로 인정하게 되었어요. 주변에서 '난 동성애는 좀 그래' 하던 분들도 우빈이 얘기를 하면 바로 사과하고, 인정하고.(웃음) 
 
저는 우리 사회가 이제 이 정도는 된다고 생각해요. '미투' 운동 때문에 우리가 짧은 시간에 많은 걸 배우고 있잖아요. 사회의 인식이 바뀌는 게 너무 더디다고 느껴지다가도, 또 어떨 때는 학습효과가 빠르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성소수자의 목소리가 민주주의의 확장,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알던 인류가 반드시 이런 모양일 필요는 없다는 상상을 해보기도 하고요. 나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고,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또 궁극적으로는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함께 배워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변홍철씨가 가족등록부 정정을 위해 법원에 제출한 '부모 동의서' 발췌문

"저의 소견에 비추어 보건대 해빈이와 같은 성 소수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 받아야 마땅합니다. 비록 사회 일각에서는 아직도 이들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시각도 있으나, 날이 갈수록 사회 전반적으로 성 소수자들의 존재와 당당한 삶을 누릴 권리를 인정하고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또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저는 해빈이와 같은 성 소수자들의 존재는 하느님이 창조한 이 세상의 놀라운 다양함의 귀한 일부라고 믿습니다. 풍성한 피조물들의 꽃밭의 한 부분에는 해빈이와 같은 트랜스젠더들도 당당하게 자신의 색깔과 향기를 발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하기에 해빈이의 뜻대로 전문가와 상의하여, 해빈이가 자신의 정체성대로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의료적 처치들을 받아왔습니다. 이제까지 자신의 몸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가슴을 칭칭 동여매었던 압박붕대를 풀고, 유방을 절제했습니다. 젖가슴을 숨기고 싶어서, 건강에 무리가 올 정도로 가슴을 답답하게 조여 왔던 아이를 생각하면 아비로서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자궁을 적출하고, 남성 호르몬 주사를 맞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정체성대로 살고 싶다는 바람 때문에 해빈이는 이 힘든 과정들을 씩씩하고 담담하게 잘 겪어 왔습니다.

이제 해빈이는, 아니 '우빈'이는 누가 보더라도 멋진 남자 청년으로 보입니다. (해빈이는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남성으로 살기를 바라면서 자기 이름을 '해빈'에서 '우빈'으로 고쳐 불러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 뜻을 존중해서 가족들은 '우빈'이라고 부릅니다.) 하루가 다르게 표정이 밝아지고, 말수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십수 년 만에 우빈이가 밝게 웃는 얼굴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들은 이제야 한 시름을 놓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의욕과 애착을 갖고 앞날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잃어버렸던 아이를 되찾은 듯한 가슴 뻐근한 기쁨을 느낍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친지와 이웃, 친구들도 이제 우빈이를 스스럼없이 남성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빈이도 그동안 서먹서먹했던 친지들, 이웃들, 친구들과 더 밝은 얼굴로 만나고 관계를 회복해 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제 이름도 다들 우빈이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저는 우빈이의 아비로서, 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존중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판사님께서 우빈이가 남성의 신분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법적인 선처를 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판사님의 선처로 우리 사회가 우빈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덧붙이는 글 | *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커밍아웃 스토리' 펀딩 : https://goo.gl/5aEGJn
* 웹사이트: http://www.pflagkorea.org/
* Facebook: https://www.facebook.com/rainbowmama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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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 정기모임: 매월 두 번째 토요일 오후4시(서울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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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과 언론을 공부하는 여성 청년. 페미니즘, 노동, 철거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읽고 쓰는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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