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곤조곤'은 책과 영화, 드라마와 노래 속 인상적인 한 마디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무심코 스치는 구절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이야기로 풀거나, 그 말이 전하는 통찰과 질문들을 짚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함께 클럽에 간 친구가 내게 말했다. "여기 남자들은 왜 아무렇지도 않게 내 몸을 만져?"

함께 클럽에 간 친구가 내게 말했다. "여기 남자들은 왜 아무렇지도 않게 내 몸을 만져?" ⓒ Pixabay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미국인 직원들이 잠시 같이 일했다. 비록 서로 사용하는 언어는 달랐지만 비슷한 또래였던 탓인지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워낙에 파티와 클럽 문화에 익숙한 친구들이어서 그랬을까? 어느 날 그들은 내게 서울에서 춤을 출 만한 곳이 있다면 함께 가자고 권했다. 나 또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클럽에 들러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곤 했기에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동성애자인 내가 가던 클럽은 모두 게이들을 위한 곳이었고 이성애자들이 주로 노는 업소(?)에 대해선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부랴부랴 친구들에게 괜찮은 클럽을 수소문했지만 걱정거리는 또 있었다.

나는 여성이 혼자 클럽에 갔을 때 성추행을 자주 겪곤 한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왔다. 그리고 우연히도 내게 클럽에 가자고 요청한 친구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한국말을 하나도 할 줄 몰랐다. 말하자면 나는 그 친구들의 유일한 가이드이자 보호자였던 셈이다. 그래서 클럽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동료들의 옆에 딱 붙어서 밀착 감시를 시작했다. 하지만 흥에 겨운 친구들이 술을 권하기 시작하고, 여느 때처럼 혼을 놓고 춤을 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붐비는 클럽을 헤집으며 애타게 친구들의 이름을 불렀지만 결국 누구도 찾지 못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출근해 그들에게 안부를 물었다. 다들 별 사고는 없었고 새벽까지 놀다가 안전하게 집에 들어갔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한 친구가 지나가듯 건넨 말에 나는 얼굴이 하얗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근데 있잖아, 여기 남자들은 왜 아무렇지도 않게 내 몸을 만져?'

왜 남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날 만져?

나는 사람들이 '여성이 겪는 일상적 성차별'을 조금 더 와닿게 표현해달라고 부탁하면 '희로애락도 불평등하게 느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구조적인 성차별 탓에 사회적 성취를 이룰 기회를 평등하게 얻지 못하니 행복할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조금만 목소리를 높여도 폭력적이라는 비난을 받아 부당한 일에 마음 놓고 분노도 못한다. 그렇다면 슬픔은? 나는 여전히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당시 추모를 위해 현장을 찾은 여성들이 얼굴이 알려질까 마스크를 썼던 모습을 기억한다. 마지막으로 즐거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혼자 게임을 해도 성별이 드러나면 갖은 혐오 발언과 욕설에 시달린다. 아무리 근거리라도 홀로 여행을 가면 안전부터 신경 써야 한다. 심지어 술을 마시고 춤을 출 때도 성추행을 걱정해야 한다. 이쯤 되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걸 세어보는 게 더 빠르겠다 싶을 정도다.

이런 상황은 정도만 다를 뿐 어느 나라나 비슷한가 보다. 2006년 발표된 가수 핑크의 노래 'U+Ur Hand' 또한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다. 상황은 이렇다. 어느 늦은 밤 화자는 기분 좋은 외출에 나선다. 바에 방문한 그녀는 술을 마시고 홀로 춤을 추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순간 한 남자가 끼어들고 화자의 몸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의 한쪽 구석에선 남자들이 모여 방금 들어온 여자를 누가 가질지 돈을 걸고 내기를 한다(하지만 가사에 따르면 여자는 그 남자가 매우 구리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익숙한 풍경이다. 지나가는 아무 여성이나 도마에 올려 품평을 하고 농담 따먹기를 하는 남자 무리들. 홀로 밤을 즐기려는 여성들에게 기어이 접근해 치근대고 성추행을 하는 남성들 말이다.

성추행 남성들을 향한 메시지

 핑크의 정규 4집 앨범 < I`m Not Dead > 앨범 커버. 'U + Ur Hand'가 수록된 앨범이다.

핑크의 정규 4집 앨범 < I`m Not Dead > 앨범 커버. 'U + Ur Hand'가 수록된 앨범이다. ⓒ 소니뮤직


아마 여기까지만 들으면 답답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노래를 부른 핑크가 어떤 사람인가. 그녀는 데뷔 초기부터 강하고 주도적인 캐릭터를 형성해 왔으며 강경한 페미니스트이고 무엇보다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가사와 행동으로도 유명세를 치렀다. 'Dear Mr. President'에서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를 향해 '당신은 힘든 일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른다'고 일갈했고 'So What'에서는 자신의 이혼을 두고 호들갑을 떠는 미디어를 향해 '나는 여전히 록스타고 재미있는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라고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심지어 뮤직비디오에는 이 노래의 주인공(?) 중 하나라 할 그녀의 전 남편도 유쾌하게 등장한다) 이는 'U+Ur Hands'에서도 이어진다. 노래의 후렴 중 일부를 직접 인용하자면 이렇다.

'난 너의 즐거움을 위해 여기에 있는 게 아냐/ 나와 문제를 일으키고 싶은 건 아니겠지?/ 잠깐 멈춰 서서 생각을 좀 해봐/ 네가 끼어들기 전까지 난 정말로 괜찮았다고'(I'm not here for your entertainment/ You don't really want to mess with me tonight/ Just stop and take a second/ I was fine before you walked into my life)

덧붙일 것도 덜어낼 것도 없이 깔끔하다. 여기에 핑크는 남자들에게 '만지지 말고 물러서, 난 네가 찾는 사람이 아냐', '우리는 너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을 차려 입은 게 아니야, 그러니까 나한테 술 좀 그만 흘려', '난 너 같은 남자들이 어떤 애들인지 알아, 하이파이브를 하며 음담패설을 하지만 결국 집에는 혼자 들어가겠지 안 그래?'라는 메시지까지 전달한다. 이쯤 되면 모든 남성들이 술집과 클럽에 들어서기 전에 이 노래를 다섯 번씩 반복 청취하도록 규칙이라도 정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싶다. 물론 핑크는 여성들을 향해서도 이런 가사를 남긴다.

'잘들어 이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야/ 넌 남자들에게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어/ 오늘은 홀로 즐기도록 좀 내버려두라고'(Listen up it's just not happening/ You can say what you want to your boyfriends/ Just let me have my fun tonight)


'오늘 밤은 너와 너의 손 뿐이야'

바와 클럽에서 반복되는 성추행에 이골이 난 사람들에게는 통쾌함을 주는 노래다. 하지만 작은 비판도 자신을 향한 공격이라고 여기는 '일부 남성'들은 불쾌함을 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꼭 그럴 필요는 없다. 핑크의 이 노래는 강력한 비판이지만 동시에 훌륭한 행동 지침이기도 하니 말이다. 여성들에게 굳이 접근하지 말 것, 함부로 손대지 말 것, 명백한 동의의 의사를 보이지 않는다면 물러설 것, 그들이 남성인 당신의 성적 즐거움을 위해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파악할 것. 이것만 지켜도 당신은 폭력과는 거리가 먼 예의와 교양을 갖춘 시민이 될 수 있다. 참 쉽지 않은가?

하지만 이렇게까지 조언을 해도 꼭 마주하게 되는 남성들의 반응이 있다. 그렇다면 여성들의 근처에 접근하지 말라는 것인가? 말도 걸지 말고 손도 대지 말라는 것인가? 여자를 아예 만나지도 말라는 것인가? 이런 식의 반발은 항상 '그렇다면 나의 외로움과 욕구는 어떻게 해결하라는 말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묻고 싶다, 그게 누군가를 괴롭게 하면서까지 충족해야할 만큼 중요한 것인가?) 지금껏 로맨스로 포장되어 왔던 성적 추행과 폭력만을 여성을 유혹하는 유일한 방식으로 알고 있는 남자들의 한계다. 이들에게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합의를 통해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은 '분위기를 깨는' 일로 여겨진다.(성관계 전에 합의서라도 써야 하냐는 비아냥거림이 아마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사실 핑크는 이런 남자들에게도 메시지를 남겨두었다. 이 노래에서 가장 통쾌한 부분이기도 한데 그녀는 후렴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술은 가지고 있고 그냥 돈이나 줘/ 오늘 밤은 너와 너의 손 둘 뿐이야(Keep your drink just give me the money/ It's just you and your hand tonight)'


무슨 의미냐고? 그 욕구와 외로움은 당신과 당신의 손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뜻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안전하고 자유로운 공간에서 마음 놓고 유흥을 즐기고 있겠다.


핑크 U + UR HANDS 성추행 클럽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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