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률 감독의 4.3 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의 한 장면

김경률 감독의 4.3 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의 한 장면 ⓒ 김경률


'끝나지 않은 세월'. 제주 4.3항쟁을 그린 김경률 감독과 오멸 감독의 영화에 똑같이 붙은 제목이다. 김경률 감독은 2005년 4월 3일 4.3항쟁을 그린 첫 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을  개봉한 후 건강을 돌보지 못하다 그해 12월 안타깝게 타계했다. 친한 동생이었던 오멸 감독은 2013년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를 만들며 김경률 감독의 작품의 뜻을 이었다.

1997년 완성된 <레드헌트>는 최초의 제주 4.3 항쟁 다큐멘터리로 주목받은 영화였다. <레드헌트>는 정치사회적으로 4.3을 언급하기 부담스러웠던 시절, 피해자들의 생생한 육성 증언을 이끌어내며 4.3의 진실을 알렸다. 이는 이후 <레드헌트 2>로 이어졌고 4.3 영화의 돌파구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영화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영화 제목 <레드헌트>는 '빨갱이 사냥'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1948년 단독정부를 반대하며 올렸던 한라산의 횃불이 70주년을 맞는다. 4.3 항쟁은 저항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애꿎은 양민들까지 학살된 현대사의 비극이다. 당시 미군정은 서북청년단과 경찰을 앞세워 수많은 양민들을 학살했는데 희생자 수가 3만 명으로 추산될 정도였다.

숨겨졌던 진실은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시절인 2000년 1월 4.3 특별법이 만들어지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10월 4.3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된 뒤 국가의 범죄에 대해 사과했다. 이후 2006년 4.3 추모식 때는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거듭 사과하며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로했다.

제주 4.3항쟁 70주년을 앞두고 일찍부터 당시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앞장섰던 영화계도 4.3을 돌아보는 행사를 잇따라 준비했다. 70년 전 비극을 상기하면서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항쟁의 의미를 되새기는 형식이다. 4.3을 주제로 한 영화, 그리고 감독과의 만남을 통해 당시의 사건을 마주하며 희생자들의 정신을 계승하는 목적도 담고 있다.

'레드헌트'와 시집 '한라산'

 4월 1일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레드헌트1.2> 상영 후 시집 '한라산' 저자 이산하 시인과 조성봉 감독의 대화가 마련된다.

4월 1일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레드헌트1.2> 상영 후 시집 '한라산' 저자 이산하 시인과 조성봉 감독의 대화가 마련된다. ⓒ 문화법인 목선재


먼저 오는 4월 1일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는 4.3을 주제로 한 '독립영화 시(詩)봤다'가 문화법인 목선재 주최로 열린다. 영화를 보고 시인과 영화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인데, 시기가 시기인 만큼 4.3 영화를 집중 조명한다.

이번에 상영되는 영화는 4.3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헌트>와 후속편인 <레드헌트2>다. 금기시됐던 소재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연출자인 조성봉 감독은 최근 박근혜 정권 블랙리스트에 올랐음이 드러났다. 조성봉 감독이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공개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다룬 <구럼비, 바람이 분다>도 블랙리스트 영화로 지목돼 상영이 가로막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1일 상영회에는 지리산에서 긴 시간 <진달래산천> 제작에 매달리고 있는 조 감독이 직접 참석한다. 영화 상영 후에는 윤중목 영화평론가의 사회로 제주 4.3을 다룬 시집 <한라산>의 저자 이산하 시인과 함께 4.3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당일 오후 2시부터 시작되는 상영회 및 관객과의 대화에는 예약자나 선착순으로 무료 참석할 수 있다(문의 : 02-2266-2296).

끝나지 않은 세월

 4월 3~4일 이틀간 서울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리는 4.3 항쟁 기획전 '끝나지 않은 세월'

4월 3~4일 이틀간 서울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리는 4.3 항쟁 기획전 '끝나지 않은 세월' ⓒ 인디스페이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는 4월 3~4일 이틀간 '제주 4.3 제70주년 특별상영: 끝나지 않은 세월' 기획전을 마련했다. 4.3의 기억을 소환해 애도하는 목적으로 준비됐다. 제주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고 기억해야할 영화 6편을 상영한다. 이번 기획전에선 <레드헌트>를 포함해 김경률 감독의 <끌나지 않은 세월>, 오멸 감독의 <이어도>,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임흥순 감독의 <비념>, 이상목 감독의 로드다큐 <백년의 노래> 등이 관객들과 만난다.

이중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은 세월>의 경우 쉽게 보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오멸 감독의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는 4.3 항쟁을 형상화 시킨 극영화로서 부산영화제에서 감독상 등 4관왕을 차지했고, 미국 선댄스영화제 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제주에서만 4.3항쟁 희생자 수와 같은 3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전국적으로 14만이 관람한 대표적인 4.3 항쟁 극영화다. 그의 초기작인 <이어도>를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관심을 끄는 요소다.

인디스페이스 기획전은 제주 4.3과 관련 핵심적인 영화를 모두 모았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다. 임흥순 감독의 <비념>은 제주가 고향인 피디를 중심으로 4.3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비춘 상당히 정적인 다큐멘터리다. 최근 제작된 이상목 감독의 <백년의 노래>는 인디뮤지션 단편선의 제주 여정을 통해 4.3의 그림자를 담는데, 4.3 이후 힘든 인생을 살아온 할머니의 목소리를 접할 수 있다.

제주를 넘어

 4월 6일~8일까지 열리는 아리랑시네센터 제주를 넘어-4.3 영화특별전 포스터

4월 6일~8일까지 열리는 아리랑시네센터 제주를 넘어-4.3 영화특별전 포스터 ⓒ 아리랑시네센터


4월 6일~8일에는 성북구의 아리랑시네센터에서 4.3 영화가 이어진다. '제주를 넘어, 4.3 영화특별전'(Beyond JEJU 4.3 Cinema Special)은 범위를 제주 4.3 이전까지로 확장시킨다. <레드헌트>,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등 대표적인 4.3 영화들 외에 <이재수의 난> 등 그 이전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영화들까지 모두 9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은 1999년 개봉한 작품으로 1901년 일어난 제주 민란을 담고 있다. 김휘 감독의 2015년작 <퇴마 : 무녀굴>은 한국 전통 설화를 바탕으로, 현재는 출입이 제한된 제주도 '김녕사굴'에 얽힌 설화에 제주 4.3항쟁을 접목한 오컬트영화다. 개봉을 앞둔 오멸 감독의 신작 <눈꺼풀>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가 담긴 영화로, 희생자들을 위로한다는 의미에서 4.3과 맥을 같이 한다.

아리랑시네센터 특별전의 특징은 감독과의 대화를 풍성하게 준비했다는 점이다. 4월 6일에는 <비념> 임흥순 감독이, 4월 7일에는 <레드헌트> 조성봉 감독과 <퇴마 : 무녀굴> 김휘 감독이 상영 후 관객들과 만난다. 4월 8일에는 오멸 감독과 함께 '제주 4.3과 영화적 재현'을 주제로 박준성 역사학자, 강성률 영화평론가가 시네토크를 나눈다.

아리랑시네센터 측은 "진정한 자주독립과 더 나은 세상을 염원했던 4·3항쟁은 제주 사람들의 울분의 저항이었으나 불과 수 년 전만 해도 제주도 간첩들의 무장봉기 사건으로 왜곡되어 있었다"며 "이번 특별전을 통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제주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희생자들의 정신을 계승해 평화와 상생, 인권의 소중함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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