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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포비아(call phobia)'를 아시나요? 전화와 공포증의 합성어로, 전화통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통화보다는 문자나 메신저, 이메일로 소통하는 것을 선호하는 '콜포비아 세대'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콜포비아'를 둘러싼 사는 이야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언론에 관심 있다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회사였다. 내가 언제 또 이런 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 싶어서 무슨 일인지는 모르고 무작정 하겠다고 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방송 뉴스 제작에 필요한 이것저것을 보조하는 일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업무는 보도국으로 걸려오는 제보 전화를 받는 일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억울한 사람이 많은지 그때 처음 알았다. 아들이 군대에서 다쳐서 전화한 어머니, 동업자로부터 돈을 떼여 억울하다는 아저씨, 학교에서 군기를 잡는다는 체육대학 신입생까지.

가로세로 한 폭도 안 되는 사무실 자리에 앉아있으면 온갖 사람들의 사연이 들려왔다.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으면 통화 상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더 정성껏 메모를 해 선배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방송국으로 걸려오는 전화 중에는 말도 안 되는 요구도 많았다. 내일 날씨를 묻거나 방금 TV에 나온 비빔국수 맛집이 어디냐고 묻는 정도는 애교였다. 지금 당장 자기 집에 와서 취재를 해가라고 역정을 내거나 국장을 바꾸라고 말하기도 했다.

내 세금으로 월급 받는 주제에 이런 것도 못 하냐 (민영방송이었다) 시청자의 요구를 듣는 건 방송국 직원으로서의 의무다 (나는 일개 아르바이트 노동자였다) 등 전화를 하는 이들은 당연한 태도로 나에게 친절을 요구했다.

수화기를 내려놓지도 못한 채 굳어버렸다

 전화를 하는 이들은 당연한 태도로 나에게 친절을 요구했다.
 전화를 하는 이들은 당연한 태도로 나에게 친절을 요구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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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자기가 운영하는 사업이 어렵다는 중년 남성의 전화를 받았다. 자재 중 하나의 원가가 폭등하는데 거기에 무슨 비리가 의심된다는 내용이었다. 한쪽 어깨를 올려 수화기를 끼고 노트북으로 내용을 받아 적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용을 정리해 메모를 하다 보니 상대가 한 질문을 듣지 못했던 모양이다. 상대는 '지금 내 말을 듣고는 있는 거냐'고 화를 냈다. 그래서 죄송하다고 말하고는 다시 내용을 받아 적을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그가 '지금 원유 가격이 리터 당 얼만지 아느냐'고 물었다. 대답을 못 하자 상대가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한 마디를 내뱉더니 전화를 끊었다.

"멍청한 년, 그러니까 전화나 받고 있지."

전화가 끊긴 수화기를 내려놓지도 못한 채 굳어버렸다.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쾅쾅 뛰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갑자기 모욕적인 말을 들으니 설움이 몰려왔다. 옆자리의 아르바이트 동료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대답을 하기도 전에 눈물이 쏟아졌다.

화장실에 가서 코를 팽 풀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 '전화나 받고 있는', '멍청한 년'일까?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 이런 욕설을 들어서는 안 되고, 얼굴이 안 보인다고 막말을 하는 상대가 이상한 사람인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 말은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그 후로 전화 공포증이 생긴 것만 같았다. 이런 일이 또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또 그 사람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수화기를 들기가 싫었다. 비슷한 목소리의 중년 남성이 전화를 하면 도망치듯 친구에게 전화를 넘기기도 했다. 전화가 안 왔는데도 왠지 벨 소리가 울리는 것 같은 불안을 느끼기도 하고, 밥을 먹다가 식당 전화가 울려도 깜짝깜짝 놀랐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일부러 전화를 더 딱딱하게 받았다. '원유 일 리터 당 가격' 같은 질문을 하려고 하면 "그건 저희 업무가 아닙니다"하고 쳐냈다. 목소리도 괜히 낮게 깔아서 '어린 여성'이 아닌 것처럼 연기하기도 했다. 만만하게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어떤 아주머니는 내 사무적인 태도에 "아가씨는 전화를 그렇게밖에 못 받냐. 이런 게 다 방송국의 얼굴 아니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화 골라서 받기, 쉽지 않은 질문들

 웹드라마 '사랑합니다 고객님' 화면 캡처
 웹드라마 '사랑합니다 고객님' 화면 캡처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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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임감이 없었던 걸까? 내가 이 방송국의 '얼굴'이니 항상 친절하게 웃어야 했을까? 사실 나는 거기서 최저임금도 못 받았다. 시급이 아닌 일급제로 운영됐는데 최저임금이 오른 이후에도 일급을 바꾸지 않고 그냥 주었기 때문이다. 원래 받아야 하는 월급의 70퍼센트 정도를 받았다. 한 달 동안 평일 내내 일하고도 80만 원이 찍힌 적도 있다. 우리는 너무 사소한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의 임금 체계를 바꾸는 귀찮은 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

매뉴얼도 시스템도 없었다. 아주 기본적인 내용만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받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가 배우지 않은 것을 요구할 때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마다 난처한 얼굴로 정규직 직원을 붙들고 해결해달라고 조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요즘에는 콜센터에서도 '욕을 하면 끊는다' 등의 규칙을 세운다고 한다. 우리에겐 이런 규칙이 없었고, 그렇다고 규칙을 새로 만들기에는 시간도, 그럴 권한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무리하거나 무례한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위치에 놓였다. 시스템이 부재해 생기는 민원인들의 불만도 전화를 받는 개인에게 향했다. 부당한 감정노동을 방지하거나,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시스템 또한 아무것도 없었다.

일하는 내내, 내가 일에서 주도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 일이 굴러가는 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사소한 업무이고, 어차피 조금 있으면 꿈 많은 다른 학생들이 와서 이 자리를 채워주기 때문이었다.

일을 그만둔 후, 나는 전화를 골라서 받는 습관이 생겼다. 모르는 번호는 아예 받지 않고, 아는 번호로 전화가 와도 받고 싶지 않으면 안 받는다. 더 이상 '이 전화 안 받으면 안 될까?'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제 전화 받기는 내 업무가 아니고, 전화를 안 받는다고 해서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화를 받는 것에서만큼은 내가 주도권을 쥐기로 했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전화를 받지 않으면 내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가지기가 어렵다. 받고 싶은 전화만 받아서는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고, 돈이 없으면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가 없다.

비단 전화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너무 큰 스트레스를 주는 일에서 과감하게 벗어나고 싶지만, 그러면 도저히 '먹고사니즘'을 충족시킬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구조의 허술함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나는 언제쯤 내 삶에서 주도권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질문들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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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과 언론을 공부하는 여성 청년. 페미니즘, 노동, 철거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읽고 쓰는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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