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번 공을 튕겼던 나, 팔목에 멍이 들었다

수백 번 공을 튕겼던 나, 팔목에 멍이 들었다 ⓒ 이정진


팔뚝에 멍이 들었다. 크고 작은 갈색 반점들이 얼룩덜룩 퍼졌다. 특히 손목, 그러니까 엄지손가락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유독 심했다. 공을 수백 번 튕기면서 생긴 흔적이었다. 팔뚝을 숨기거나 가리진 않았다. 영광의 상처라도 되는 듯,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자랑을 했다. '네가 무슨 운동선수라도 되냐'며 한숨 섞인 핀잔을 들어도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기뻤다. '나 운동선수처럼 보이나?' 좋을 대로 받아들였다. 뭐든지 내가 좋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처음이었다, 스포츠 만화를 좋아한 건. 친구는 내게 '배구를 좋아하는 소년들의 이야기'를 추천했다. 그 이름도 유명한 <하이큐>, 이미 한국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만화였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흔히 말하는 스포츠 '일알못(일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스포츠에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배구라니. 우연이라도 직접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친구는 끈질겼다. 실랑이 끝에 <하이큐> 1화를 보았다. 그리고 그날 서른 편이 넘는 <하이큐> '정주행'을 끝냈다.

이 작품의 '덕질'을 결심한 이유는 무수히 많았다. 극 중 학교마다 구별되는 게임스타일, 배구의 역동성을 극적으로 담아낸 영상구도, 그 모든 요소들을 찰떡같이 품어내는 음악, 모든 게 좋았다. 무엇보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솔직한 감정표현'이 매력적이었다. 작품 속 캐릭터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좋다, 슬프다, 분하다, 에둘러 표현하지 않았다. 특히 주인공의 배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순수하다 못해 숭고하기까지 했다.

덕질을 할수록 커져갔던 공허함

본격적으로 <하이큐> 덕질을 시작했다. 다른 만화를 좋아했던 것처럼 관련 굿즈를 모으고, 대사를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보았다. 가끔 애니메이션에 사용된 배경음악을 따로 듣기도 하고, 어떤 장면이었는지를 머릿속에서 맞출 때면 짜릿하기까지 했다. 평범했던 <하이큐> 덕질이 절정을 향해갈 때쯤, 마냥 좋기만 하던 주인공이 부러워졌다. 질투도 나고 공허함도 생겼다. 그렇게 덕질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과거엔 '주인공이 라이벌을 이겨서 기쁘겠다'에 가까운 심정이었다면, 지금은 '나도 라이벌을 이겨서 기쁘고 싶다'가 됐다. 단순히 캐릭터의 감정을 이해하던 것이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끼려는 욕심으로 바뀐 것이다. 만화 <하이큐>의 배경은 고등학교 배구 동아리다. 주인공을 비롯한 대부분의 캐릭터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한다.' 부러웠다, 원하는 걸 마음껏 쫓을 수 있다는 자유가. 덕질을 할수록 공허함이 커져갔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너도 하면 되지'라고 물을 수 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하이큐> 속 주인공들의 삶이 배구였다면, 나의 삶은 입시였다. 모든 선택은 스펙을 위한 것이었다. 토론, 논술 아니면 신문 읽기가 전부였다. 댄스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처참히 무시당했다.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취업을 위한 선택이 대부분이다. 굳이 미래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지금 내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하이큐> 속 주인공들처럼.

 스포츠 만화 <하이큐>는 배구를 좋아하는 소년들의 이야기다

스포츠 만화 <하이큐>는 배구를 좋아하는 소년들의 이야기다 ⓒ ANIMAX


캐릭터의 감정을 쫓기 시작하다

목표는 두 가지였다. '나도 배구를 배우고 싶다'와 '나도 배구를 하면서 주인공이 느꼈던 감정을 느끼고 싶다'다. 가장 중요한 건 배구, 직접 배구를 하지 않고선 그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일주일 내내 '배구', '초보', '동아리' 등의 단어를 조합해 검색을 하거나, 체육학과에 다니는 친구를 찾아 괜찮은 모임을 추천받았다. 지성이면 감천,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여성들만 모여서 배구를 배우는 '초보여성배구교실'을 찾았다.

<하이큐>는 주인공이 자신보다 강한 선수를 만나 좌절하기도 하고, 그 좌절을 노력과 도전으로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경기에서 만난 선수는 주인공에게 크고 작은 자극이 됐다. 결국 코트는 배구를 하는 장소뿐만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공간이었다. 실제로 코트는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을 제공했다. 비록 공식적인 경기에 나가 경쟁자를 만난 적은 없지만 배구로 묶인 곳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육아로 배구를 쉬다가 다시 시작한 언니가 있었다. '슬기 어머니'라는 호칭보다 '언니'를 좋아해서 그렇게 불렀다. 연령 제한이 없는 배구교실이었지만 중년여성을 본 건 처음이었다. 언니는 매주 슬기를 데려왔다. 이유는 한 가지, '강하고 건강한 엄마를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언니 외에도 배구부에서 활동하는 중학생, 각종 스포츠가 취미인 경찰언니를 만났다. 매번 20대 대학생 집단에만 머물던 내겐 '만남' 그 자체가 큰 자극이었다.

만화 <하이큐>에 이런 대사가 있다. "6명이 강한 쪽이 진짜 강하다." 그렇다. 배구는 선수들 간의 유대감이 중요한 스포츠다. 공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는 한 경기는 계속된다. '떨어트리려는 자'와 '떨어지는 걸 막는 자'의 싸움인 것이다. 한 명의 개인이 강할 순 있지만, 개인의 강함이 팀의 승리를 가져다주진 않는다. <하이큐>에서 중심이 되는 감정 역시 팀에서 발생하는 유대감이다.

 배구를 하던 장소, 서울 소재의 초등학교

배구를 하던 장소, 서울 소재의 초등학교 ⓒ 이정진


'떨어지는 공 살리기'가 주는 짜릿함, 나는 그걸 위해 뛰는 리베로였다. 공격을 할 순 없지만 상대팀의 득점을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4월의 어느 날, 한 번의 모의경기에서 내가 살려낸 공이 이어지는 것을 보았다. 짜릿하기도 하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만화에서 표현된 감정이 과장된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점점 <하이큐>의 누군가처럼 배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됐고,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만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했다. 

덕질이 이어준 새로운 세상

배구를 배웠던 모든 순간이 만화처럼 극적이거나 감동적이진 않았다. 긴장감 넘치는 경기를 이어간 적도 많지 않다. 어떤 날은 공 받는 연습만 하다 끝나기도 했다. 지금은 다리를 다쳐 배구를 쉬고 있지만. 함께 배구를 배웠던 언니, 동생들은 팀을 꾸려 대회까지 나갔다. 유니폼을 맞추고 코트 위에서 같은 곳을 바라봤을 그들이 참 부러웠다. 함께하지 못함이 아쉽지만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마냥 속상하진 않았다.

스포츠에 무관심하던 내가 배구를 좋아하게 됐다. 이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나는 더 이상 만화 속 주인공이 부럽지 않다. 공허함도 사라졌다. 직접 배구를 하면서 그가 느끼는 감정들을 나 역시 느꼈기 때문이다. <하이큐> 덕질은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다. 나는 지금도 새로운 덕질을 준비 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덕질이 이어줄 새로운 경험을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덕질 때문에 OO까지 해봤다' 응모글입니다.
배구 만화 덕질 하이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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