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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어느 시골집에 한 여자가 들어섰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에 이미 울음이 터졌다. 굳이 자세한 내막을 알지 않아도 '예측 가능한 공감'이라는 건 있으니까. 공교롭게도 내가 연출한 첫 단편 영화의 오프닝 장면은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 한 여자가 남몰래 강의실에 들어서는 장면이었다.

영화는 아름다운 농촌의 풍경이 배경이었지만 서울을 떠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낯선 곳을 떠나 집으로 돌아온, 잊은 척했지만 잊지 않았던 풍경과 사람들로 돌아온 혜원(김태리 분)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 영화사 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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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는 경기도 양평으로 귀촌해 살고 있는 임순례 감독의 신작 영화다. 원작은 동명의 일본 만화이며, 일본에서도 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한국의 농촌(실제 촬영 장소는 요즘 '컬링'으로 유명해진 경북 의성군)에 맞게 각색되었고, 영화에서 중요한 매개가 되는 요리도 한국의 식재료를 기반으로 바뀌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힐링이 되는 영화'로 호평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비슷한 듯 차이가 있어 각자의 소감과 삶을 꺼내어 듣는 과정이 나에게는 또 한 의 영화를 완성시키는 것 같았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요인은 영화의 주인공인 동갑내기 세 친구 혜원, 재하(류준열 분), 은숙(진기주 분)이 농촌은 물론, 수도권 외 지역이라면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그리고 우리 모두가 경험했던 20대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대상이 무엇 - 사람, 장소, 감정 등등 - 이든 간에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떠날 때보다 많은 고민과 감정을 필요로 한다. 혜원의 귀향, 재하의 사직, 은숙의 상경은 서로 어긋나는 욕망 같지만 사실 닮아 있기도 하다.

직접 농사를 짓는 분들에겐 '농촌을 너무 환상적으로 그렸다'는 비판을 종종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만약 감독이 그럴 의도였다면 다른 장르를 택했어야 한다고 답한다. 혹자는 '이 영화 덕분에 귀촌 인구가 늘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영화에서 잠깐 나오지만 비혼 여성으로서 농촌에서 혼자 살아가는 어려움은 이미 꽤나 알려져 있으므로(!) 그럴 기대는 접고 영화 자체로 봐주시면 좋겠다.

영화는 공감이자 위로가 되는 환상이다. 당신이 그 환상을 현실로 만들고 싶다면 '삶을 바꾸는 도전'을 택하면 된다. 영화에 나오는 그들처럼.

영화를 보고나서 '날 닮은 혜원에게 주고 싶은 책'이 떠올랐다. 친구출판사 샨티에서 펴낸 <좋은 인생 실험실>은 뉴욕에서 전형적인 직장인으로 살던 웬디와 마이키 커플이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닌, 자급하는 삶을 찾으면서 새로운 이웃들을 만나고 각종 생필품은 물론, 심지어 집까지 직접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에서 혜원은 직접 농작물을 가꾸고, 그 재료들로 요리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기도 한다. 혜원이라면 이 책 하나로 뚝딱, 잘 만들 것 같았다.

"뭔가를 이루어냈고, 문제를 해결했고, 아이디어를 진척시켰고, 꿈을 더 꾸었고, 어떤 거라도 개조하고 짓고 만들었다는 성취감을 느끼지 않고서 지나가는 날은 하루도 없었다. 우리는 실패하면 전문가들을 불러 고쳐달라고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어떤 문제든 '한번 해보지 뭐'라는 태도로 임했다. 유투브를 비롯해 자세한 방법을 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는데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런 태도를 갖고 있으면 제아무리 야심차고 거대한 프로젝트라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해 볼 수 있다." - 책 본문 중에서 발췌

이 책에서 중요한 지점 중 하나는 '시행 착오'다. 두 사람은 그것을 겁내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로 만들었고, 그 경험을 이웃과 나누면서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간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자급의 기술을 다루기도 했지만,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변화를 담은 자서전이기도 하다.

특히 대도시에 살다보면 돈 하나만 있으면 쉽게 구입/처리가 가능하다보니 '효율적인' 소비라는 건 돈이 기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급을 직접 고민하다보면 소비의 과정이 '효율적이지 않았던'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생산과 소비의 프레임을 바꾸는, 그래서 내 생활과 사고방식을 바꾸는 '삶의 전환'을 다룬 도전기라고 볼 수 있다.

좋은인생실험실
▲ 좋은인생실험실 좋은인생실험실
ⓒ 좋은인생실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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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이 되면 나는 옥천 주민이 될 예정이다. 문화예술을 업으로 하다보니 한 장소에 머물기보다는 이곳저곳 떠도는 것이 익숙했던 나에게 '오래 살 어딘가'라는 의미를 두고 하는 이사는 20년만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이 편한 도시를 두고 왜?'라는 질문을 많이 던진다. 그때마다 나는 웃으며 반문한다.

"결코 편하지 않았는데 몰랐죠?"

옥천은 나에게 <리틀 포레스트>가 되어줄까? 적어도 나의 귀촌 준비 과정이 내 이웃들의 <리틀 포레스트>를 듣고 막연했던 그림을 소박한 도움 속에서 성공해가고 있는 도전이 되고 있어 즐겁고 행복한 건 확실하다.

감자씨를 함께 심어보자는 약속을 했다.
일상을 함께 해 줄 그들을 만나러, 봄바람 타고 가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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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인생실험실 좋은인생실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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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All Night, All Right
땡땡책협동조합 친구출판사의 책들과 다른 문화예술 장르의 만남.
여러분의 깊은 밤은, 언제나 옳으니까요.

글쓴이. 루카
엄마한테 ‘모’와 ‘피’의 차이를 열심히 배워갔으나 처음 간 농활 모내기 현장에서 모만 몽땅 뽑고 말았다. 가을이 되고 내가 모를 뽑았던 자리가 휑한 광경을 보니 죄송하고 분한 마음에 논두렁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그날의 기억이 다음 해 모내기 할 땐 실수하지 않게 했다. 경험은 도전이 주는 괜찮은 결실이자 선물 아닐까.



좋은 인생 실험실 - 소비자로 살기를 멈추고 스스로 만들며 살아가기

웬디 제하나라 트레메인 지음, 황근하 옮김, 샨티(2016)


태그:#리틀포레스트, #좋은인생실험실, #서평, #땡땡책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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