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신태용 감독이 12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북아일랜드(24일)-폴란드(28일)로 이어지는 3월 유럽 원정 평가전에 나설 23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오는 6월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벌어지는 사실상의 마지막 평가전인 만큼, 이 선수들이 본선 무대를 밟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주장' 기성용과 '주포' 손흥민을 비롯해 김민재, 이재성, 권창훈, 김신욱 등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들이 모두 합류했다. K리그1 이적으로 경기에 나서기 시작한 홍정호와 박주호, 장기간의 부상에서 돌아와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준 이용도 대표팀 복귀에 성공했다.

갈 길이 멀다. 명단만 확정됐을 뿐, 월드컵 본선 전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손흥민과 전방에서 호흡을 맞출 선수는 누가 될 것인지, 김민재와 함께 후방의 안정감을 더할 이는 누가 될 것인지, 이운재와 정성룡의 뒤를 이어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대표팀 골문은 누가 지킬 것인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

한국 축구의 '난제', 기성용의 파트너는 누구?

그중에서도 고민이 가장 큰 곳은 '중원'이다. 전방에는 손흥민이 부활을 알렸고, 황희찬과 김신욱, 이근호의 소속팀 및 대표팀 활약이 좋다. 후방에는 김민재와 같은 소속팀(전북 현대)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이 무려 4명이나 합류했다. 최소한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 시절 최종예선 8경기 10실점을 내주던 때보다는 나아진 조직력과 안정감이 기대된다.

 지난 23일 중국 후난성 허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축구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6차예선 A조 한국과 중국의 경기에서 한국 기성용이 슈팅하고 있다.

지난 2017년 3월 23일 중국 후난성 허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축구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6차예선 A조 한국과 중국의 경기에서 한국 기성용이 슈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중원은 다르다. 아직도 기성용만 보인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이후 박주호, 한국영, 정우영, 김보경, 주세종, 이명주, 고요한 등 많은 선수들이 기성용과 함께 중원을 책임졌지만, 확신을 주지 못했다. 그나마 박주호와 고요한이 기대를 품게 했지만, 그 기간이 너무나도 짧았다.

그간 9차례의 월드컵 본선을 돌아보면, 한국 축구의 성공에는 탄탄한 중원이 있었다. 역사적인 4강 신화를 이룩한 2002 한-일 월드컵에선 유상철과 김남일이 있었고,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한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선 기성용과 김정우가 있었다. 중원이 부실했던 때는 어김없이 뼈아픈 실패를 경험했다.

세계 축구의 흐름도 다르지 않다. 탄탄한 중원은 성공으로 가는 핵심이자 기본이다.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세계 축구의 흐름을 선도한 스페인과 바르셀로나는 말할 것도 없다. 사비 에르난데스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르히오 부스케츠 등은 탄탄한 중원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독일, UEFA 챔피언스리그 3연패에 도전하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도 토니 크로스와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루카 모드리치 등을 앞세워 큰 성공을 맛봤다.

중원이 허술하면 승리는 어림없다. 지금처럼 공수 능력을 겸비한 미드필더가 기성용뿐이라면, 신태용호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다. 대표팀에는 기성용의 부담을 나눌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 최소한, 수비나 공격 중 어느 한쪽이라도 뚜렷한 강점이 있는 미드필더가 절실하다. 

대표팀 복귀한 박주호, 호주 아시안컵 때처럼?

그래서인지 박주호에게 눈길이 간다. 신태용 감독은 박주호를 그의 주 포지션인 왼쪽 풀백으로 쓸 생각이 아니다. 왼쪽 풀백 자리에는 그간 좋은 모습을 보여 온 김진수와 김민우가 예상대로 합류했다. 박주호는 유사시 풀백으로 나설 수는 있겠지만,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용할 계획이다.

박주호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낯설지 않다. 독일 분데스리가 마인츠(2013.07~2015.08)에서 활약할 당시, 수비형 미드필더로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수비수 출신답게 상대의 패스 길목을 예측하는 데 능했고, 빼어난 차단 능력을 자랑했다. 정확한 태클과 강철 체력을 바탕으로 한 압박도 우수했다.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볼 소유 능력과 패스였다. 박주호는 쉽게 볼을 빼앗기지 않았다. 안정적인 드리블, 2대1 패스 등을 활용해 상대 압박을 이겨내고 전진했다. 압박을 이겨내지 못해 백패스를 남발하지 않았다. 특히, 역습 속도를 높이는 짧고 빠른 패스, 상대 수비 뒷공간을 노리는 장거리 패스에 능숙했다.

다재다능한 '수비형 미드필더' 박주호는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진가를 드러냈다. 궂은 일을 도맡으며 공격 가담이 많은 기성용의 부담을 줄였고, 좌우측 풀백 김진수, 차두리의 오버래핑으로 인한 공간도 확실하게 메웠다. 빠른 판단에 이은 패스로 공격의 속도와 질을 높이는 데도 힘을 보탰다. 

2015 호주 아시안컵 선전(준우승)에는 '수비형 미드필더' 박주호의 공이 상당했다. 기성용의 짝으로 김정우(2010 남아공 월드컵)와 박종우(2012 런던 올림픽)에 뒤처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박주호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2015년 여름 도르트문트 이적 후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며 대표팀과 멀어졌다.

그사이, 대표팀은 고전했다. 기성용의 확실한 파트너가 보이지 않았다. 기성용이 수비의 안정감을 더하고,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도맡고, 팀이 필요한 순간에는 득점까지 책임져야 하는 등 그에 대한 의존도가 극에 달했다.

기성용과 함께 중원을 책임진 선수들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위험 지역에서 불안한 볼 처리와 태클로 실점의 원인이 됐고, 상대의 전방 압박에 우왕좌왕하며 불필요한 백패스를 남발했다. 평범한 침투 패스 한 번에 상대 공격수와 우리 수비수가 마주하고, 느린 속도로 연습을 전개하는 모습이 반복됐다. 부실한 중원은 곤두박질친 대표팀 성적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출사표 밝히는 울산 박주호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2018 K리그 개막 미디어데이 기자회견에서 울산 박주호가 출사표를 밝히고 있다. 2018.2.27

▲ 출사표 밝히는 울산 박주호 지난 2월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2018 K리그 개막 미디어데이 기자회견에서 울산 박주호가 출사표를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물론, 대표팀에 복귀한 박주호가 이전과 같은 활약을 보일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박주호는 도르트문트에 소속된 2시즌 반 동안 리그 7경기(선발 5) 출전에 그쳤다. 지난 시즌에는 2경기(1선발)에서 65분만 뛰었다. 절반을 보낸 올 시즌에는 경기 출전 자체가 없었다. 2년 6개월 동안 전력 외 선수였다.

박주호는 지난해 12월 K리그1 울산 현대 이적을 선택했고, 이제야 경기를 뛰기 시작했다. 빼어난 활약을 보인 때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대표팀에 발탁된 것은 과거에 보여준 활약과 기성용과 함께할 파트너의 부재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수비형 미드필더' 박주호가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신태용 감독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다. 과연 박주호는 대표팀 중원의 희망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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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국가대표팀 박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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