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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구산선문 장흥 가지산 보림사 대적광전입니다.
 천년고찰 구산선문 장흥 가지산 보림사 대적광전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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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암에 깃든 지 어느덧 여섯 해를 맞습니다. 이제 숨고르기를 마치고 세간의 벗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이름은 <일지암 다경실>입니다. 그저 번거로운 인연 잠시 내려놓고 초의선사의 '선다일미' 향훈을 그리며, 차를 마시고(다) 솔바람 소리 들으며 책을 읽고(경) 사유와 성찰의 복된 시간을 누리고자 합니다."

전남 해남 대흥사 일지암 법인 스님의 초대입니다. 법인 스님은 "참선, 차담, 독서, 산행이 진행되며, 담소음악회까지 예정되어 있다"며 꼬드겼습니다. 눈길이 갔던 건 '참선'이었습니다. 호흡법을 배울 좋은 기회였지요.

도(道)는 자기 안에 있지 바깥에 있지 않다

가지산 보림사 한창 기와 교체 작업 중입니다.
 가지산 보림사 한창 기와 교체 작업 중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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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변수가 생겼습니다. 법인 스님께서 공동대표로 있는 참여연대 총회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일지암을 비워야 하는 상황이랍니다. 이왕 나서기로 마음먹은지라 방향을 틀었습니다. 일지암 대신 가지산 보림사에 가기로 했습니다. 일선 스님께 '참 나', 즉 '공적영지' 드나드는 방법과 수행 등 궁금증을 여쭐 좋은 기회였습니다.

천년고찰 구산선문 장흥 가지산 보림사로 향합니다. 가던 도중 마음이 혼란스럽습니다. 매화 구경이나 갈까. 흔들리는 마음 다잡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는 건 일선 스님 뵈면 호통 치실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유인 즉 간단합니다. 도(道)는 자기 안에 있지 바깥에 있지 않다는 게지요. 집에서 수행할 일이지 돌아다닐 게제가 아니라는 거죠. 호통을 각오하자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구산선문 장흥 가지산 보림사. 담 너머로 기와 교체 작업이 한창입니다. '청태전 티로드' 안내판이 반갑습니다. 비자림과 어우러진 자생차 서식지를 둘러보는 것도 정신 건강에 좋지요. 보림사 외호문을 넘습니다. 사천문을 통해 대적광전을 봅니다. 한가로운 가람 배치에서 여유와 넉넉함을 느낍니다. 대적광전에 듭니다. 국보 제117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앞에 서서 절합니다.

요사채 기와 교체 작업 등으로 혼잡합니다. 스님, 절집 마당을 고르고 있습니다. 고요합니다. 반가움이 앞섭니다. 스님께 웃으며 합장합니다. 스님, 갑자기 절집 마당을 고르던 쇠스랑을 치켜들더니 고래고래 악을 쓰고 쫓아옵니다. 뭐라는지 알아채기 힘듭니다. 얼굴에 웃음기가 싹 사라집니다. 이 무슨 해괴한 마주침이란 말인가. 스님, 계속 악다구니입니다.

스님의 기행, 말로만 듣던 선문답의 다른 모습

가지산 보림사, 청태전 티로드 안내에 끌립니다.
 가지산 보림사, 청태전 티로드 안내에 끌립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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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오는 놈인고?"

고래고래 소리칠 이유가 없습니다. 거품 문 폼을 보면 깨달은 큰스님이 아니라 고저 미친 영감탱이일 뿐입니다. 기와 교체작업을 하던 사람들마저 손 놓은 채 희한한 광경을 살피는 중입니다. 뿐만 아니라 공양 간 공양주 보살까지 나와 지켜봅니다. 모두들 스님의 진노한 모습을 처음 대하는 듯 놀란 모양새입니다.

허나 '참 나'를 체험하고 경험한 입장에선 그러려니 합니다. 스님의 기행(奇行), 말로만 듣던 선문답의 다른 모습일 뿐. 쇠스랑을 치켜들고, 화내며 득달같이 달려드는, 일선 스님께선 온몸으로 당신의 의견을 분명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일선 스님은 한 번도 스승인 적 없었으되 스승입니다. 나그네 또한 한 번도 제자인 적 없었으되 제자입니다. 인연이지요. 찰나, 해탈의 길목에서 '감사'를 봅니다.

스님께선 여전히 사천왕상처럼 눈을 부릅뜬 채 쇠스랑을 치켜 든 상태로 달려드는 중입니다. 당장이라도 '쇠스랑으로 내려쳐서라도 너를 가르쳐야겠다'는 기세입니다. 스님과 거리는 일 미터 여. 순간, 마음을 뺏깁니다. '저것으로 나를 내려치면 꼼짝없이...' 겁을 집어 먹자, 나그네를 감싼 오욕(五慾) 덩어리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머리카락이 죄다 일어서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뇌 전체가 싸늘하게 반응합니다.

'생로병사'의 마지막, 죽음 앞에 섰습니다

구산선문 장흥 가지산 보림사 대적광전에 자리잡은 국보 제117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입니다.
 구산선문 장흥 가지산 보림사 대적광전에 자리잡은 국보 제117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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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스님을 화나게 했을까?'
'저러다 일 나지.'
'이 사람아 그러지 말고 어서 피해. 스님 참으세요.'

사방에서 숨죽여 지켜봅니다. 천지신명조차 긴장합니다. 일촉즉발. 스님과 거리는 불과 30센티미터 여 지근거리. 들린 쇠스랑으로 후려치면 그만입니다. 피를 흘리며 꼬꾸라지면 게임 끝인 상황. '생로병사'의 마지막 '사(死)' 죽음 앞에 섰습니다. 바람마저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하지만 공적영지에 들었던 때처럼 그저 무덤덤합니다. 그냥 맡깁니다.

스님 손에서 쇠스랑이 힘없이 내려집니다. 아! 그대로 내려쳤으면 금강이 되었을 것을... 짧은 순간 천당과 지옥을 오갑니다. 스님, 차츰 온화한 얼굴로 변합니다. 영감탱이, 누굴 놀리나 싶습니다. 허나 스님의 깊은 마음 이미 압니다. '참 나'는 모든 상황을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구산선문 장흥 가지산 보림사 요사채 기와에 보조선사가 내려앉았습니다.

장흥 가지산 보림사 보조선사탑은 보물 제157호입니다.
 장흥 가지산 보림사 보조선사탑은 보물 제157호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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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장흥 가지산 보림사, #일지암 법인스님, #일선스님, #깨달음으로 가는 길, #선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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