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즈의 신보 < 바람 >은 시간에 따른 감정의 변화를 그려냈다.

헤이즈의 신보 < 바람 >은 시간에 따른 감정의 변화를 그려냈다. ⓒ CJ E&M


2017년 가요계에는 수많은 히트곡이 있었지만, '헤이즈의 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 /// (너 먹구름 비) >의 수록곡 '비도 오고 그래서'는 '벚꽃엔딩'에 버금가는 시즌송이 되었다. 그루비룸과 함께 빚어낸 '널 너무 모르고'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화려한 테크닉은 없지만 듣는 사람을 몰입시키는 목소리,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사가 유효했기 때문이다.

헤이즈는 여러 가요 시상식에서도 유력한 음원 대상의 후보로 손꼽혔다. 성공을 거둔 지난 앨범의 콘셉트가 말 그대로 '비'였다면, 이번에는 '바람'이다. 헤이즈의 이번 앨범 소개란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뒤늦은 나의 바람, 그 사이로 스미는 차가운 바람'.

< 바람 >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다비(Davii)'다. 다비는 이미 헤이즈와 함께 '저 별', 'No Way', '비도 오고 그래서' 등을 작업해온 알앤비, 힙합 뮤지션이다. 이번 앨범에서는 모든 트랙의 작·편곡에 다비가 참여했다. 그는 < 바람 >의 사운드와 선율을 책임지는 한편, '잘 살기 바래'에서는 헤이즈와 듀엣으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헤이즈는 다비를 '자신의 구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추켜올리기도 했다.

'뻔한 사랑 노래'가 되지 않으려면

헤이즈는 두 개의 타이틀곡을 내세웠다. 개코가 피쳐링한 'jenga'와 평이한 발라드 '내가 더 나빠'다. 두 개의 타이틀곡을 내세울 경우, 스트리밍이 분산되면서 차트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징크스는 그녀 앞에서 소용없다.

이 두 곡은 현재 주요 음원차트의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바로 하루 전 인기 그룹 마마무가 컴백했고, 아이콘 역시 꾸준한 강세를 보이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추세다. 지난 2년 동안 헤이즈가 대중들에게 얼마나 강력하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헤이즈의 노래는 대부분 사랑과 이별에 기대고 있다. 사실 사랑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많이 있다. 그러나 헤이즈의 음악이 '뻔한 사랑 노래'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탁월한 작사 능력에 있다. 타이틀곡 'jenga'가 대표적이다. 이별 후의 무력함을 잠수에 비유했던 'Underwater'(2016)가 그랬듯이, 헤이즈는 이번에도 독특한 제재를 찾아냈다.

내 맘에 수많은 구멍이 나도 버틸 수 있는 이윤 너라고
이제 네가 한 발짝만 더 발을 빼면 난 무너질 텐데
'jenga' 중

특히 이번 앨범은 트랙 간의 유기성이 눈에 띄는데, 이번 앨범의 1번 트랙(jenga)부터 4번 트랙(잘 살길 바래)까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그녀의 이야기를 담아낸 것이라고 한다. 떠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붙잡고 싶은 마음', '돌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거쳐 '잘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러한 배치에 앨범을 듣는 재미가 있다. 헤이즈의 신보는 지난 앨범들과 비교했을 때도 한결 차분해진 편이다. 'And July', 'Shut Up & Dance'만큼 경쾌한 곡도 찾아보기 어렵다. 랩의 비중은 매우크게 줄어들었으며, 보컬의 비중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졌다.

한편 연주곡 '바람'을 거쳐 흘러나오는 소울 넘버 'MIANHAE'는 네 곡의 사랑 노래들 사이에서 다소 이질적으로 들린다. '매일 행복한 척 하는 연기는 어설퍼', '노래하는 기곈데 난' 이라는 가사로 미루어볼 수 있듯이 그녀는 스타덤에 오른 후 겪게 되는 고충을 노래한다. 헤이즈는 자신의 음악을 늘 자신의 경험담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그녀가 지금 받고 있는 압도적인 대중적 지지는 이처럼 음악 내외적으로 솔직한 태도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헤이즈는 컴백과 함께 방송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이번 앨범의 여섯 곡 모두 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 지금까지 냈던 앨범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애착이 간다' 는 소감을 밝혔다. 물론 정성을 쏟은 보람이 있었다. 멜로디는 흡입력있고, 가사 속 이별의 감성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가요팬들이 그녀에게 기대하는 감성이 이런 것이다. < 바람 >은 당분간 많은 친구들의 플레이리스트에 머물 것이다.

헤이즈 바람 내가 더 나빠 JENGA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