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하는 이승훈 이승훈 선수가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가운데 시상대에 올라 기뻐하고 있다.

▲ 기뻐하는 이승훈 이승훈 선수가 지난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가운데 시상대에 올라 기뻐하고 있다. ⓒ 이희훈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의 자존심 이승훈이 올림픽 매스 스타트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의 간판스타 이승훈은 지난 24일 강릉스피드스케이팅장에서 펼쳐진 평창올림픽 남자 매스 스타트 결선에서 16명의 선수 중 1위로 들어오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상대가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이승훈을 매스 스타트의 일인자로 만들었던 전매특허인 마지막 한바퀴 폭발적인 스퍼트가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10,000m 금메달과 5000m 은메달을 목에 걸며 깜짝스타로 등장한 이승훈은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팀추월 은메달에 이어 평창 올림픽에서도 팀추월 은메달과 매스 스타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 번의 올림픽에서 무려 5개의 메달을 차지한 이승훈은 자타가 공인하는 아시아 최고의 스케이터이자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진정한 제왕으로 등극했다.

스피드 전향 1년, 10,000m 참가 세 번 만에 올림픽 챔피언 등극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승훈은 쇼트트랙 선수 출신이다. 더 정확히는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시작했다가 신목중학교 시절 쇼트트랙으로 전향한 후 2009년 올림픽 출전을 위해 다시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돌아온 경우다. 이승훈은 쇼트트랙으로도 2008년 강릉 세계선수권대회 3000m 금메달, 2009년 하얼빈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 3관왕에 오르는 등 국가대표 출신의 엘리트 선수로 활약한 바 있다.

하지만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선발전에서 이정수, 성시백, 이호석 등에 밀려 탈락의 고배를 마신 이승훈은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기 위해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돌아왔다. 당시만 해도 1년도 채 남지 않은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종목을 변경한 이승훈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는 시선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승훈은 스피드 스케이팅 전향 7개월 만에 5000m 한국신기록을 세웠고 이듬 해 열린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 역사를 새로 썼다.

5000m에서 6분16초95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딴 이승훈은 이어진 10,000m 경기에서 12분58초55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장거리 최강자 스밴 크라머(네덜란드)의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겹친 행운의 금메달이었지만 10,000m 공식대회 출전 세 번 만에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한 것은 올림픽 역사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든 엄청난 업적이었다.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에서도 5000m와 10,000m, 매스스타트에서 3관왕을 차지한 이승훈은 2012년부터 슬럼프에 빠져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개인전에서 메달을 수확하지 못했다. 하지만 팀추월 종목에서 후배들을 이끌고 러시아, 캐나다 같은 빙상 강국들을 연이어 제압하며 네덜란드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렇게 이승훈은 이상화, 김연아, 박승희와 함께 밴쿠버와 소치 올림픽 2연속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소치 올림픽 이후 이승훈은 다시 주종목을 바꿨다. 바로 동일 선상에서 출발해 순위를 가리는 매스 스타트 종목이다. 올림픽 장거리 종목에서 2개의 메달을 따냈고 쇼트트랙 최강국 국가대표 출신의 이승훈에게 매스 스타트는 그야말로 '맞춤 종목'이었다. 이승훈은 2015년 노르웨이 월드컵과 2016년 종목별 세계선수권에서 매스 스타트 금메달을 차지하며 매스 스타트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4종목 출전해 금1·은1 수확, 베이징 올림픽 도전 계획까지 밝혀

2017년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서도 4관왕을 차지하며 아시아의 빙신(氷神)임을 재확인한 이승훈은 2016-2017 시즌과 2017-2018시즌 연속으로 매스 스타트 월드컵 1위를 차지했다. 평창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기 때문에 이승훈이 매스 스타트를 집중적으로 훈련한다면 8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친구 모태범, 이상화와 함께 대표팀의 맏형이 된 이승훈에게는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장거리 종목을 이끌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이 있었다. 특히 10,000m의 경우는 이승훈이 출전을 포기할 경우 마땅히 한국을 대표할 만한 선수를 찾기 힘들었다. 결국 이승훈은 5000m와 10000m, 팀 추월, 매스 스타트까지 4종목에 출전하기로 결정했고 대회가 열린 2주 내내 거의 쉼 없이 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을 펼쳤다.

11일 5000m에서 6분14초15로 5위를 차지한 이승훈은 15일 10,000m에서도 3위에 단 1초 뒤진 12분55초54의 기록으로 4위에 올랐다. 그리고 김민석, 정재원과 함께 출전한 팀 추월 종목에서 두 대회 연속 은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달성했다. 노련하게 후배들을 이끌다가 막판 특유의 스퍼트로 경기를 주도한 이승훈의 활약 덕분에 대표팀의 막내 정재원은 고등학교 1학년의 어린 나이에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며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그리고 이승훈은 폐막을 하루 앞둔 24일 매스 스타트 금메달을 통해 화룡점정을 찍었다. 레이스 후반까지 2위그룹의 선두를 이끌어준 정재원의 희생 덕분에 힘을 비축한 이승훈은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 네덜란드의 코엔 페르베이와 벨기에의 바트 스윙스를 차례로 추월하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특히 폭발적인 스피드로 스윙스를 인코스로 추월하는 장면은 흡사 쇼트트랙 경기를 보는 듯했다.

경기가 끝난 후 태극기 세리머니 때 자신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했던 정재원을 데리고 다녔던 이승훈은 인터뷰에서도 정재원과 함께 하며 맏형다운 면모를 보였다. 그리고 올림픽에서만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를 수확하며 대한민국 동계 스포츠의 살아있는 전설이 된 이승훈은 인터뷰 말미에 전국민이 기다리던 그 한 마디를 던졌다.

"저도 베이징을 준비할 생각이고 그저 참가에 목적을 두지 않을 겁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매스 스타트 이승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