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슬럼버> 포스터의 문구 '아무도 믿지마. 그리고 반드시 살아남아.'

<골든 슬럼버> 포스터의 문구 '아무도 믿지마. 그리고 반드시 살아남아.' ⓒ CJ E&M


온 세상이 나에게 등을 돌렸다는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본인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평생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며 살아왔던 한 청년에게, <골든 슬럼버>의 세상은 예고 없이 등을 돌린다. 작년 말 개봉해 7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 1987 >에 예고 없이 등장하여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던 배우 강동원은, 이번 영화에선 반대로 본인이 놀라움의 주체가 된다.

"아무도 믿지 마"

 <골든 슬럼버> 스틸컷

<골든 슬럼버> 스틸컷 ⓒ CJ E&M


평범한 택배기사인 건우(강동원)가 어느 날 오래된 친구 무열(윤계상)의 전화를 받게 된 후, 대통령 유력 후보의 암살범으로 몰려 세상으로부터 도망치 는 이야기. 동명의 일본 소설이 원작이고, 이미 2010년에 일본에서 영화화된 바 있는 영화 <골든 슬럼버>는 대충 들어도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의 영화이다. 어떤 한 집단이 자신들이 원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국가 기관의 힘을 동원, 누명을 씌울 희생자 한 명을 선정하여 꽤 오랜 기간 동안 일을 꾸며왔다는 설정은 기발하지만 황당하다. 과연 그런 일이 진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바로 몰입하기엔 힘든 영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이 영화의 디테일이다. 예컨대 그중 하나는, 건우에게 한 여성 요원이 이성적으로 접근하여 '암살 도구가 건우 것'이라는 증거를 확보시키려고 한 것까지 있다. 첫 도주 후 어딘가 쉴 곳이 필요한 건우가 처음 찾아간 곳이 바로 그 요원인 유미의 집이었는데,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집에 찾아가는 것, 그리고 둘의 대화 등을 보면 이 관계가 결코 짧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이 계획은 언제부터 준비된 것일까. 난 어디서부터, 누구까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영화는 무열이 건우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절대 아무도 믿어선 안 돼"라는 말을 플래시백으로 보여주며 이 영화의 주된 공포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골든 슬럼버>는 디테일들이 중요한 영화였다. 그런 디테일들이 쌓이고 쌓여야 했다. '아무도 믿지 말라'의 '아무'가 평소에 더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일수록, '이 사람만은 정말 믿었던' 바로 그 사람이 나를 배신할수록, 그 임팩트가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앞서 언급한 유미를 제외하곤 아무도 건우에게 배신의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영화 초반 잡은 분위기를 놓친다. 그 대신 건우를 무조건적으로 믿어주는 친구들을 등장시켜, 영화의 갈등 구도를 '우정 vs. 국가'로 만들어 버린다. 게다가 누구보다 냉철했을 전직요원 민씨(김의성)까지 갑자기 이성의 끈을 놓고 건우의 '중독성'에 취해 건우의 도주에 힘을 보태준다.

그렇게 급하게 방향을 튼 여파로 균형을 잃은 영화는, 황급히 가수 신해철의 '그대에게'로 우정을 설득하지만, 이마저도 사려 깊지 못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노래는 사실상 치트키에 가까운 노래이다. 특정 세대, 특정 기억을 가진 많은 사람들에게 이 노래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에게'가 흘러나오는 순간 영화는 아주 잠깐 특별해진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속았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형'의 노래를 이렇게 쓴 것에 대해 분노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나는 감독이 영화의 제목을 '골든 슬럼버'라는 노래 대신 '그대에게'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살아남아

 <골든 슬럼버> 스틸컷

<골든 슬럼버> 스틸컷 ⓒ CJ E&M


이제부터 영화는 '건우가 국가에 맞서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가 일본판 <골든 슬럼버>와 가장 다른 지점, 그리고 가장 설득력이 떨어지는 지점, 그래서 사람들이 이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노동석 감독이 연출한 <골든 슬럼버>는 건우가 결국 (강동원 배우와 가장 잘 어울리는) 레드 카펫에 입성하며 국가로부터 승리하는 결말을 보여주는 반면, 일본판 <골든 슬럼버>는 주인공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잠적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렇게 치밀하게 계획을 준비했던 국가가 결국 건우를 놓치게 되는 한국 <골든 슬럼버>의 결말은 그나마 초반부 잠깐 빛났던 치밀함들의 리얼리티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이렇게 스스로를 부정하면서까지, '그대에게'라는 치트키를 사용하면서까지 말하고 싶었던 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착하게 살아라'인가, 아니면 '우정'인가. 나름 재밌는 영화로 살아남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기에는 어려운 영화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철홍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anwu.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골든슬럼버 강동원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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