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강 : 2월 8일 오후 4시 5분]

결국 '동의'의 문제다. 성폭력 사건의 핵심에는 늘 '동의'의 여부가 있다. 지난 1일 한 여성감독이 '미투' 캠페인에 동참한다면서 자신의 성폭행 피해를 고백했다(관련 기사: 여성 영화감독도 성폭행 피해 고백 "피해자 더 있을까봐").

2015년 4월 여성감독 A씨가 만취한 상태에서, 여성감독 B씨가 A씨의 신체 부위를 만지고 유사성행위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1월 대법원은 B씨에게 준유사강간 혐의를 적용,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성폭력 교육 40시간 이수 명령을 선고했다.

 한 여성 영화감독이 '미투' 캠페인에 동참하는 취지로 자신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이렇게 사건을 알리게 되면 또 다른 미투 캠페인이 일어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나 말고 없다고도 확신할 수 없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리게 됐다"고 밝혔다.

한 여성 영화감독이 '미투' 캠페인에 동참하는 취지로 자신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이렇게 사건을 알리게 되면 또 다른 미투 캠페인이 일어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나 말고 없다고도 확신할 수 없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리게 됐다"고 밝혔다. ⓒ 오마이스타


첫 보도 후 인터넷 상에서는 가해 감독이 누군지에 대해 한 차례 논란이 일었다. 결국 가해 감독은 한국영화감독조합에서 제명당하고 작년 수상한 여성영화인상 감독상 부문 수상을 박탈당했다. 그로부터 5일 후인 지난 6일 영화 <연애담>의 이현주 감독은 장문의 입장문을 통해 자신이 그 당사자이며 "<연애담>을 아껴주신 많은 분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지만 여전히 무죄를 주장하고 싶다"고 밝혔다.

피해감독은 이현주 감독의 입장문이 공개된 당일 밤 "그날 사건에 대해 생각하기도 싫어 세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은 또 하게 되는구나"라며 조목조목 반박하는 반박문을 냈다. 해당 반박문에서 피해 감독은 사건 당일의 정황부터 이현주 감독을 고소하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설명했다.

판결문의 핵심은 '동의' 여부

<오마이뉴스>는 해당 사건의 1심·2심 판결문을 입수해 이현주 감독의 입장문에 나온 주장과 피해 당사자인 여성 감독의 주장을 비교해 보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사건이 발행한 2015년 4월 당시 피해 감독은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가 됐고, 일행은 그를 인근 모텔에 데려가 재운다. 해당 모텔에는 피해 감독과 이현주 감독이 남았고 이후 유사성행위가 벌어졌다. 이현주 감독은 피해 감독이 '동의'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피해 감독은 여러 차례 진술한 것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당시 저로서는 피해자가 저와의 성관계를 원한다고 여길만한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성관계에 대한 피해자의 동의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현주 감독 입장문 중)

이현주 감독은 입장문에서 밝힌 것처럼 재판 당시에도 "피해자가 유사성행위에 '동의했다고' 믿었으므로 유사강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판결문 발췌)한다. 1심 법원도 "유사성행위 사실을 숨기려는 의도가 없었고 오히려 피해자의 질문에 유사성행위 사실을 그대로 말해준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이현주 감독과 변호인의 주장에 일부 동의한다. 

그러나 1심 법원은 이어서 "피해자는 당시 술에 만취해 정상적으로 성적 자기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고 피고인도 미필적으로나마 피해자의 위와 같은 상태를 알면서 이를 이용해 유사성행위를 했다"고 지적한다. 판단 근거로는 술자리에 동석했던 동행인의 진술("피해자가 만취해 몸도 가누지 못하고 정상적인 대화도 불가능한 상태였고 모텔 방에 눕힐 때 의식이 없는 채로 잠들었다")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유사성행위 당시 피해자는 음주 등으로 인해 의식 내지 판단능력이 거의 없었고 이에 따라 당시의 상황을 기억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보아야 한다." (1심 판결문 중)

이후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피해 감독은 남자친구에게 해당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후 피해 감독은 자신이 경험한 일이 범죄에 해당된다고 판단해 이현주 감독을 고소한다. 사건 한 달 후 피해자와 피해자의 남자친구 그리고 피고인은 전화 통화를 하고 이는 그대로 2심 판결문에 실린다.

"피해자: 언니는 내가 술이 완전히 깼다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했다는 거잖아. 우리가 합의 하에.
피고인: 완전히 깬 게 아니라 술에 취한 상태에서 진심이라고 생각했어. 그게 진심." (2심 판결문 중)

사건이 일어나고 한 달이 지난 5월 통화 내용에 따르면 이현주 감독은 피해자가 술에 취해있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이를 '진심'으로 해석한 것.

문제는 '동의'로 돌아온다. 남녀 간의 관계든 남남 혹은 여여와의 관계든 성폭력은 충분한 동의를 거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판결문에서 해석한 것처럼 이현주 감독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지 모르겠지만 정황상 그것이 '충분한 동의'가 아니었음을 판결문은 보여주고 있다. 피해 감독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이 부분에서 가해자가 생각하는 '동의'라는 게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인지를 알게 한다"며 "과연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는 동의라는 게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피해감독 "선정적 보도 유감"

현재 두 감독이 사건 당시 다녔던 한국영화아카데미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고 해당 사건에 대해 조사 중이다. 이현주 감독의 <연애담> 배급사인 인디플러그는 피해 감독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며 "사건에 대해 배급사 전 직원은 거듭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1년 전부터 잇달아 벌어지는 #OO_내_성폭력 운동이나 최근 벌어지는 #METOO에서 피해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 다른 이들로 하여금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있다. 이들은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피해 감독 역시 "이 일이 일어난 뒤에 피해자가 더 생기지 않게끔 하는 영화계 내 사후 조치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일련의 보도가 선정적이거나 공방식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 "이미 지나간 일을 사실 관계에 대한 갈등으로 주목하는 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8일 이현주 감독은 다시 입장문을 내고 "더 이상 영화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현주 감독은 이날 낸 입장문에서 "이미 많은 분들이 이 일로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는 점점 커지고 있다"면서 "그 날의 일을 전하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그 날 이후 피해자와 피해자의 남자친구가 느꼈을 고통에 대해 간과했다. 이유를 막론하고 저의 행동들이 큰 상처를 줬음을 인정하고 반성한다"고 밝혔다.

이현주감독 한국영화아카데미 동의 성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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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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