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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건(채식주의자)이 아니다. 그렇지만 비건의 삶이 궁금하다. 얼마 전 나라는 인간에게 슬며시 끼어든 생각이다. 꼭 공장식 축산 반대와 동물 복지 차원에서 기인한 생각은 아니었다. 라이프스타일로서의 비건,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비건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충분한지가 나에게는 더욱더 중요한 관심사였다.

비건에 대한 삶을 보다 주시하게 된 까닭은 옆에 있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가리는 것 없이 함께 식사를 즐겼던 몇몇 사람들이 어느 순간 각자의 이유로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주었고, 나는 더는 이들과 고기를 파는 식당에 갈 수 없었다.

그들의 선택과 방식에 대해 충분히 존중했기에, 갈 수 있는 식당이 현저히 줄어든 것에 대해서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삶과 식생활이 더욱 궁금했고, 함께 밥을 먹으면서 일시적으로 그들의 식사를 체험할 기회도 친구라는 이유로 더러 생겼다. 나아가서 나의 식습관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옆에서 지켜본, 혹은 일시적인 비건 체험은 엄청 어려운 일이었다. 우선은 외식에 제약이 상당하다.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대폭 줄어든다. 행여 먹을 수 있다고 믿었던 메뉴에서도 주방의 레시피에 따라 먹을 수 없는 메뉴로 전락하기 일쑤다.

이들의 식생활이 소수자의 이상한 취향이 아니라 누구나의 취향으로 존립하기 위해서라도 공공기관을 필두로 채식 선택권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들의 식생활이 소수자의 이상한 취향이 아니라 누구나의 취향으로 존립하기 위해서라도 공공기관을 필두로 채식 선택권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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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비건 식당이라고 이름을 붙인 곳에서 그나마 식사에 대해 안심할 수 있는데, 문화의 거점인 서울에서도 비건 식당을 내건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자신이 사는 동네에 비건 식당이 있는 사람들은 운이 좋은 사람들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건 식당을 찾기 위해서는 먼 길을 나서야 하는 실정이다.

채식이 성행한 다른 국가에서는 일반 레스토랑에 가도 비건 메뉴가 따로 있는 일이 빈번하다고 한다. 다른 기호를 가진 사람들이 똑같은 식당에서 한데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본인의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한국은 따로 비건 메뉴를 취급하고 있는 곳이 거의 없을뿐더러, 취급하는 식당에서도 직원분에게 따로 물어봐서 주문해야 하기도 한다. 얼마 전 채수를 기반으로 한 중식당 두 곳을 방문했는데, 어느 곳도 메뉴판에 해당 정보를 발견할 수 없었고, 조심스럽게 직원분에게 여쭤본 후에야 어렵사리 비건 메뉴를 주문할 수 있었다.

학교는 어떠한가? 애초부터 우리는 성장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우유를 강제로 섭취해야 했고, 급식에서는 고기가 거의 빠진 적이 없었다. 학교급식법은 학생들이 육류와 계란, 유제품을 포함한 식사를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명하며 식단을 육류 위주로 강제 편성한다. 개인의 건강상 이유로 철저하게 육류 위주의 식단을 피해야 하는 사람들은 배려하지 않는 처사이다. 이런 상황에서 채식 선택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민한 사람'이라고 명명하며 철저히 배제한다.

더는 급식을 먹지 않고, 성장을 이유로 우유를 챙기지 않아도 되는 대학교에서도 실정은 비슷하다. 학내에서 채식 식당을 운영하는 곳은 거의 없다. 그마저도 종교상의 이유로 채식 식당을 운영하는 학교를 제외하면, 더욱 극소수가 된다. 자신의 기호로 채식을 선택한 사람들이 공공기관 내에서 배제되는 경우는 비단 학교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들의 식생활이 소수자의 이상한 취향이 아니라 누구나의 취향으로 존립하기 위해서라도 공공기관을 필두로 채식 선택권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지난해 포르투갈에서는 학교, 대학, 수감시설, 병원 등의 공공기관에 의무적으로 채식 메뉴를 두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다양한 소비가 존중되는 사회이길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제목의 비건 다큐멘터리를 봤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비건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자세하게 담아 사뭇 흥미로웠다. 농부, 요리사, 운동선수 등 자신의 직업과 관련해 비건으로서의 삶을 역설하는 장면을 통해 모두가 비건을 실천하는 행동 방식이나 이유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흔히 비건이라고 하면 비슷한 양상이겠거니 하는 생각은 착각이었고, 같은 비건 안에서도 그들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누군가를 특정 호칭으로 규정하는 것은 엄청 쉬운 일이지만, 쉬운 만큼 그 속을 들여다보는 노력은 게을리하게 된다. 게으름은 누군가를 자신의 기준 속에서 쉽게 판단하게 하고, 무례한 질문을 하게 한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했던 프로 트랙 사이클 선수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운동선수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육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해야 한다는 주변의 말에 그는 채식으로도 충분히 영양을 섭취할 수 있다고 본인의 삶의 시간을 통해 증명한다. 음식 일지를 작성해서 무엇을 먹고 영양을 충분히 섭취했는지 확인한 결과, 비건 식단으로 바꾼 후 오히려 회복 시간이 줄고 에너지 수준이 올라갔다고 말한다.

그리고 많이 먹어도 육식을 먹었을 때와 같은 무거운 기분을 느끼지 않고, 영양 결핍의 문제가 전혀 없다고 한다. 흔히 비건에 대한 착각 중 하나인 영양소 불균형에 대해 다큐멘터리는 식물에서 몸에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고 논거를 통해 주장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비건이 아니다. 그렇지만 일주일에 몇 번은 친구들을 통해 혹은 자발적으로 간헐적 채식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부러 찾아간 비건 식당에서 흥미로운 체험을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비건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한다. 많은 공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비건 소비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은 하나의 소비들이 모여서 지금까지 미루거나 혹은 둔감해진 이야기들을 새로운 공론의 장으로 소환할 수 있다고 믿는다.


태그:#비건, #채식,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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