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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텐의 계란찜
▲ 일본의 개호식품 라쿠텐의 계란찜
ⓒ 변민우, 라쿠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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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호식품(介護食品), 고령 인구에 특화된 식품

'먹는 일'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은 삶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다. 음식은 영양소 섭취의 근간이자 추억의 매개, 스트레스 해소의 방편 중 하나이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하나의 보상물로도 그 역할을 다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먹는 행위의 즐거움이 우리 삶에서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 한다. 대체로 노화에 따른 잇몸과 치아의 연화, 질병에 수반되는 식욕감퇴가 원인이 되는데, 최근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 중심에는 개호식품(介護食品)이 있다.

개호식품이란 '곁에서 돌봐 주는 음식'으로 풀이되는데, 체력적으로 약해진 고령 인구를 고려한 식품이나 서비스를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제대로 음식을 섭취, 소화하기 힘든 이들을 위한 식품의 종류라 할 수 있겠다. 주로 요양시설이나 병원에서 제공되는 급식, 혹은 소매점을 통해 판매되는 간식과 가공식품의 형태로 나타난다.

개호식품은 1994년 고령사회, 2006년에는 세계 최초로 '초 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 처음 대두되었는데, 비단 남의 나라 식문화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또한 영유아 대비 고령인구가 5배(2015년 기준)이상 되는 고령 사회이며, 세계적으로도 60세 이상 고령 인구의 수는 9억 명에 육박한다. 고도화된 산업국가에서 저출산은 하드웨어적 사회문제 중 하나로 점쳐지며,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류의 수명은 늘어가고 있다. 이는 곧 실버푸드 연구의 필요성과 직결되며 개호식품이라는 트렌드를 바라보아야 할 이유가 된다.

개호식품의 등장 배경으로는 크게 3가지가 손꼽힌다. 첫째는 고령화에 따른 간호 서비스 수요가 증가했다는 점인데, 고령화 사회의 진전으로 요양 보호자의 수요가 증가하고 관련 시설을 중심으로 '식단 마련'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둘 째는 고령인구의 영양부족 문제다.

60대 이상의 연령층은 저작 및 소화능력이 저하됨에 따라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고, 삼키는 힘이 부족해져 구토를 하거나 목에 이물질이 걸리는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특히 기초 대사량에 비해 실제적인 영양 상태가 좋지 못하다 보니, 건강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마지막은 구매세력으로서 고령 인구의 급부상이다. '단카이 세대' 일본의 베이비 붐 세대(1947~1949년 출생)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거치며, 경제적 여유를 가진 세대로 고령의 나이에도 높은 소비력을 보이는 대상. 이들에 대한 관심이 부각되면서 개호식품을 비롯한 시니어 산업이 주목받게 됐다.

고령 선진국 일본에선, 다양한 개호식이 출시 돼

죽
▲ 기사와 무관한 사진 죽
ⓒ 변민우, 한국식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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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초기의 개호식품은 주로 미음(죽)의 형태로, 맛보다는 영양소 공급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당시에는 제조업체마다 규격과 표시가 상이하여, 소비자들로 하여금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후 2002년 일본 개호식품협회가 설립되고 '환자식'느낌의 개호식품 대신, UDF(Universal Design Food)라는 이름을 붙였다. UDF는 기존의 개호식품보다 식품의 형태와 맛을 유지하는 것에 주안점을 둔 형태다.

2014년에는 일본 농림수산성의 주도 아래, 개호식품의 명칭을 '스마일 케어 다이어트(Smile Care Diet)'로 명명하여 그 분류를 세분화했다. 개호식품의 겉면에 청-황-적색의 표시를 부여하기로 하였는데, 건강유지를 위한 영양공급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청색. 씹는 것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음식에는 황색, 삼키기조차 어려운 이들을 위한 음식에는 정색이 표시되도록 했다.
청색 1단계, 황색 적색 각 3단계 (출처 : UDF)
▲ UDF 스마일케어 다이어트 분류 청색 1단계, 황색 적색 각 3단계 (출처 : UDF)
ⓒ 변민우, U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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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병원과 요양시설에만 국한되어 있던 문제점을 극복, 편의점을 포함한 편의점과 인터넷에서도 식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갖췄다. 개호식의 형태 또한 죽과 조림, 게살과 같은 부드러운 원재료는 물론 음료 및 음식에 섞어 먹을 수 있는 분말 형태의 식품. 소량으로도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는 식품과 젤리 형태의 음료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근래에는 스마트폰, 인터넷의 보급에 따라 1인 노령인구들도 쉽게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어 인터넷을 활용한 통신판매가 각광받고 있다. 집 근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편의점에서도 개호식의 판매가 이뤄지고 있어, 판매처로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2조 원대 시장 규모, 대한민국도 이제는 좇아야 할 때

이 같은 일본 개호식품 시장의 규모는 2014년 1조 2800억 원대에서 2020년에는 1조 90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성장세에 부합하게, 식품의 경도표기에 참여하며 개호식 문화에 적극적으로 일조하는 식품기업은 2016년 기준 72개사, 등록된 제품은 2천여 개에 달한다. 개호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넓어져 호텔, 레스토랑을 비롯한 식당에서도 개호식을 판매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대한민국 사회의 미래를 현실적으로 잘 담아내고 있다. 빠르게 상승하는 고령 인구 비율, 우리는 얼마나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고 있는가? 다행히도 고령친화식품 시장의 규모는 2015년 기준 약 8천억 원 규모로 2011년 대비 55% 가까이 성장했다. 업계에서도 관련 상품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한돈자조금은 대한영양사협회와 함께 치아가 약한 이들도 먹을 수 있는 국산 돼지고기 요리를 선보였다. 종합식품기업 아워홈은 지난해 말 '효소를 활용한 연화(蓮花) 기술'을 활용하여 고령자를 위한 견과류와 떡, 고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업체 관계자는 특허 출원한 육류 연화 기술이 영양손실은 최소화하되, 육류와 떡 등을 부드럽게 할 수 있는 기술이라 밝히며 시장에서의 높은 활용성을 이야기했다.

국내 고령친화식품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 고령친화식품 시장 현황과 전망 국내 고령친화식품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 변민우, 중소기업 전략기술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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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차원뿐 아니라 정부부처의 대응도 시동이 걸렸다. 지난 11월 농림축산식품부는 서울 AT센터에서 '고령친화식품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하여, 고령친화 식품을 건강기능식품과 특수용도식품, 두부와 묵류, 전통·발효식품, 인삼·홍삼제품으로 분류하여 이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씹기, 삼키기, 소화 등 섭취와 관련된 단계별 성상 물성 기준, 그리고 측정방법을 명확히 하여 산업표준(KS) 제정에도 활용하기로 했다. (고령친화식품 한국산업표준은 2018년 1월 제정됨) 또한, 일본에서 식품의 경도(딱딱함)를 표기했던 것처럼, 1단계(치아섭취) 2단계(잇몸섭취), 3단계(혀로 섭취)의 국내 기준을 표기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의 개호식품, 고령친화식품은 아직 갈 길이 험난하다. 일본과 영미권 국가들에 비하면 아직 초기단계에 지나지 않지만, 농림축산식품부의 표준 마련 등 정부기관 참여, 그리고 국내 식품들의 노력이 더해져 2018년이야 말로 '고령친화식품의 발전의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고령화의 늪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 사회의 책임이자 의무 중 하나다. 또한 우리가 겪게 될 삶의 일부이기에, 이에 대한 연구노력과 기준마련은 소홀히 해선 안 될 것이다. 고령친화식품에 대한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식품연구원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태그:#변민우, #개호식품, #고령친화식품, #실버푸드, #한국식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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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글거리를 좋아하고 사람과 삶, 환경에 관심이 많습니다. (독립출판 저자, 스토리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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