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월드컵이 이제 반 년도 남지 않았다. 오는 6월 14일 오후 6시(현지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개최국 러시아와 1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맞대결로,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이 시작된다. 개막전을 시작으로 결승전까지 총 64경기가 러시아 땅 전역에서 펼쳐진다.

월드컵은 축구 선수들에게 있어 '꿈의 무대'다. 흔히들 'UEFA 챔피언스리그'를 꿈의 무대라 부르지만 여전히 축구 판에 있어서 가장 가치가 높은 대회는 월드컵이다. 챔피언스리그가 매년 자웅을 겨루는 반면 월드컵은 4년 주기로 대회가 열린다. 평균적으로 10~15년 동안 프로 생활을 이어가는 선수들에게 산술적으로 월드컵 4회 출전이 최대치다. 과거 멕시코의 골키퍼 안토니오 카르바할과 독일의 전설 로타어 마테우스가 월드컵 본선에 5번이 참가한 경험이 있지만 특수한 경우다.

또한 월드컵은 4년마다 개최될 뿐만 아니라 대회에 참여하려면 운도 따라야 한다. 월드컵은 국가대항전이다. 자신의 조국이 축구 약소국이면 제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월드컵에 참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웨일스의 라이언 긱스, 라이베리아 조지 웨아 등 세계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담당한 선수들도 월드컵에 초대받지 못했다. 자신의 조국이 월드컵에 참여하더라도 부상 등의 변수가 발생하면 월드컵 초청장은 남의 것이 된다.

K리그로 돌아온 박주호와 홍정호

 지난해 12월 18일 울산 현대는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뛰고 있던 박주호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18일 울산 현대는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뛰고 있던 박주호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 울산 현대


월드컵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영광의 무대다. 모든 축구 선수들이 참가하고자 하는 진정한 꿈의 무대다. 한국이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나서는 만큼 모든 한국 선수들에게 표면적으로 기회가 생겼다. 그 중에서도 대표팀군에 속하는 선수들의 의지는 남다르다. 특히 국가대표팀에서 다소 멀어진 선수들의 움직임이 바쁘다.

가장 빠르게 움직인 선수는 박주호다. 박주호는 지난해 12월 7년 간의 유럽 생활을 정리하고 울산 현대와 4년 계약으로 K리그에 입성했다. 2008년부터 J리그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한 박주호는 프로 데뷔 11년 만에 처음으로 국내 무대에서 뛰게 됐다.

박주호는 국내 복귀를 결정한 후 인터뷰에서 "대표팀에서 뛰고 싶은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다"는 말에 "K-리그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주호가 유럽 무대 도전을 정리하고 K리그를 선택한 이유가 명확히 드러나는 발언이다. 울산에서의 활약을 기반으로 월드컵에 도전하겠다는 확실한 의도가 엿보인다.

박주호가 이적 소식을 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홍정호의 전북 현대 이적 소식도 들려왔다. 중국 장수 쑤닝에서 입지를 잃은 홍정호는 올 시즌부터 임대 이적 형식으로 전북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박주호와 달리 홍정호는 "대표팀 생각은 전혀 없다"는 말과 함께 기회를 준 전북에서 최대한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홍정호는 "(기회를 준) 최강희 감독님께 보답하는 것이 우선이다"라면서도 "그 후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따라 올 것이다"고 국가대표팀에 대한 열망을 은연 중에 드러냈다. 홍정호도 박주호와 마찬가지로 소속팀에서 활약하면 국가대표팀에 다시 합류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K리그로 복귀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2부 리그로 향한 지동원, 아쉽게 잔류하게 된 이청용

박주호와 홍정호처럼 자신의 소속팀에서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선수가 또 있다. 바로 독일 분데스리가 FC 아우크스부르크의 지동원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크리스탈 팰리스 FC의 이청용이다. 두 선수는 올 시즌 소속팀에서 완전히 입지를 잃은 상태였다.

변화가 절실할 시점이었다. 박주호와 홍정호가 국내 무대 복귀로 활로를 모색한 반면 지동원과 이청용은 유럽 무대에서 계속 도전을 이어가기로 했다. 발 빠르게 움직인 쪽은 지동원이었다. 지난 시즌 리그 전 경기 출장이란 나름의 대업을 이뤄낸 지동원은 올 시즌 촐 3경기에 출장해 단 17분 간 그라운드를 누비는 굴욕을 겪고 있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지동원은 독일 2부리그에 위치한 SV 다름슈타트로 임대 이적을 선택했다. 다름슈타트는 2부리그에서도 강등권 경쟁을 하는 약팀이지만, 과거 지동원을 지도했던 디르크 슈스터 감독이 팀을 지휘하고 있기에 지동원 입장에서는 위험 부담이 적다는 이점이 있다. 지동원은 이적 2일 만에 세인트 파울리와 리그 경기에 선발 출장해 어시스트를 기록해 팀의 1-0 승리에 일조하며 반전의 신호탄을 쐈다.

돌파하는 이청용 지난 10월 7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VEB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 대 러시아의 경기. 이청용이 돌파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7일 오후(현지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VEB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 대 러시아의 경기. 이청용이 돌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동원과 마찬가지로 이청용도 EPL의 하부리그인 잉글랜드 챔피언십으로 이적을 노렸다. 과거 이청용과 영광을 함께 했던 볼턴 원더러스가 이적 시장 막판에 이청용 영입 의사를 밝혔다. 볼턴과 이청용의 관계가 워낙 좋고, 강등권에 내몰려 있는 클럽과 뛰는 것이 우선 순위인 선수 양 측의 이해관계가 맞았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이적 협상은 의외의 암초에 부딪쳐 무산됐다. 지난 1월 30일(현지 시각) 열린 크리스탈 팰리스와 웨스트햄 유나이트와 경기에서 팰리스의 주전 측면 미드필더 바카리 사코가 부상을 당했다. 팰리스의 팀 닥터는 사코의 부상 정도를 낙관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팀 전력에 구멍이 생긴 팰리스는 사실상 확정되었던 이청용 임대 이적을 불허하면서 이청용의 볼턴 복귀는 무산됐다. 월드컵에 가고자 하는 열망이 컸던 이청용 입장에서는 겨울 이적 시장 폐장 하루를 앞두고 발생한 불운이었다.

신태용의 선택은?

이청용을 제외한 세 선수는 일단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다름슈타트의 지동원은 당장 경기에 출장하고 있고, 공격 포인트도 기록했다. 시작이 좋은 만큼 남은 일정 동안 꾸준하게 경기에 출장할 공산이 크다. K리그로 돌아온 박주호와 홍정호는 각자 소속팀의 주축 멤버로 활용될 전망이다.

국가대표팀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들이기에 경기력만 올라온다면 실력은 크게 의심받지 않을 선수들이다. 문제는 얼마나 빠르게 경기력을 회복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월드컵 본선까지 반 년도 남지 않은 시점이다. 본선은 6월에 열리지만 유럽 주요 리그가 종료되는 5월부터 오로지 월드컵을 위한 대표팀이 가동된다.

월드컵 본선으로 갈 23인이 결정되는 5월 전에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기회는 사실상 3월 A매치 기간이 마지막이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오는 3월 19일, 24일에 폴란드·북아일랜드와 A매치를 가진다. 즉, 월드컵 참가를 위해 이번 겨울에 이적을 택한 선수들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2달도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현재 리그가 진행 중인 지동원의 컨디션은 정상 궤도로 올라올 가능성이 있지만, 박주호와 홍정호에게는 물음표가 달린다. 2월에 개막하는 AFC 챔피언리그와 3월부터 시작하는 K리그 1에서 두 선수가 나설 수 있는 경기 수는 최대 4경기에 불과하다. 월드컵 본선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경기력을 되찾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극적으로 정상 컨디션을 회복한다고 해도 국가대표팀에서 활약은 쉽지 않다. 지난 시즌 독일 무대에서 K리그로 복귀해 맹활약하며 국가대표팀에 재승선한 김진수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김진수는 지난해 3월부터 놀라운 퍼포먼스로 실력을 과시했지만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활약은 미비했다. 붉은 유니폼을 입고 김진수가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기 시작한 시점은 11월에 있었던 콜롬비아전부터였다. 리그에서 활약이 곧장 A대표팀에서의 선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또한 다른 대표팀 선수들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먼저 지동원이 노리는 공격진은 이미 포화 상태다. 손흥민과 이근호, 권창훈 등이 입지를 확실히 하고 있고 최근에는 김신욱까지 가세했다. 다재다능함이 장점이지만 바꿔 말하면 특색이 부족한 지동원에게 현재 상황은 녹록지 않다.

박주호도 마찬가지다. 박주호는 왼쪽 풀백 혹은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이 가능하다. 우선 왼쪽 풀백 자리는 김진수와 김민우라는 확실한 카드가 있다. 상주 상무의 홍철도 호시탐탐 이 자리를 노리고 있다. 주전급 멤버의 동시다발적인 부상이 없는 한 박주호가 왼쪽 풀백으로 월드컵에 참가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적다.

중원에 배치되는 것도 쉽지 않다. 신태용 감독이 구상하고 있는 대표팀의 플랜A는 4-4-2 포메이션이다. 허리에 배치되는 중앙 미드필더는 단 두 명 뿐이다. 한 자리는 대표팀의 주장 기성용이 차지할 것이 확실시 된다. 남은 한 자리를 놓고 다수의 선수들이 경쟁 중이다. 확실히 눈에 띄는 선수는 없지만, 신태용 감독이 그동안 보여줬던 스타일상 기성용의 파트너로는 활동량과 수비력을 동시에 갖춘 선수가 선택 받을 예정이다. 공을 잡았을 때 존재감을 과시하는 박주호의 특성상 어울리지 않은 옷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쪽은 홍정호다. 현재 신태용호의 최대 약점은 중앙 수비수다. 김민재를 제외한 그 어떠한 선수도 만족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마침 홍정호는 소속팀 전북에서 김민재와 호흡을 맞출 기회가 생겼다. 김민재의 짝꿍으로 누구도 합격점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홍정호가 리그에서 김민재와 찰떡호흡을 보여주면 상황은 급격하게 바뀔 수도 있다. 양 쪽 풀백의 김진수와 최철순도 전북 선수인 상황이기에 조직력 측면에서도 홍정호에게 높은 점수가 기대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적을 택했든 아니면 소속팀에 남았든 신태용 감독에게 남은 시간 동안 얼마나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는지가 관건이다. 주어진 시간은 동일하다. 이적을 택한 지동원, 박주호, 홍정호와 이적에 실패한 이청용. 그들은 과연 다가오는 6월에 원하는 위치에서 월드컵을 맞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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