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무기들.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2가의 경찰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조선시대 무기들.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2가의 경찰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옛날에는 군대 갈 때 무기도 가지고 갔다. 원칙상 그랬다. 지금은 머리만 깎고 가면 되지만, 옛날에는 '준비물'이 많았다. 창병은 창을, 기병은 말을 갖고 가야 했다. 

옛날 국가는 지금처럼 세금을 걷지 못했다. 산업생산성도 지금보다 낮았고, 조세 징수 시스템도 그랬다. 그래서 모든 군인의 무기를 장만할 수 없어 "무기 좀 갖고 와"라고 입대 예정자들한테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음력으로 세조 1년 12월 16일자(양력 1456년 1월 23일자) <세조실록>에는 수사관이 살인 용의자의 첩이 사는 집에서 창을 발견하는 장면이 나온다.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창이었다. 이렇게 민간에 무기가 있었던 것은, 군인이 무기를 갖고 입대했다가 돌아올 때 갖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든 경우에 다 그랬던 건 아니다. 국가가 무기를 공급하는 경우도 당연히 있었다. <고려사절요> 우왕 편에 실린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서한에 따르면, 1367년 봄에 명나라는 면포와 비단을 주고 고려에서 말을 구매했다. 여진족과의 전투에 사용할 목적이었다. 이렇게 국가가 장만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웬만한 무기는 군인이 직접 조달하는 게 옛날 풍경이었다. 

실정이 그랬기 때문에, 지난 24일 개봉한 영화 < 1급기밀>에 나오는 군수 비리나 부실 관리가 옛날에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군대 내부 비리세력, 군대 출신 비리세력(군피아), 외국 군산복합체의 커넥션에 의한 조직적 비리가 개입할 여지도 별로 없었다.

검은 커넥션으로 불량 장비가 도입되는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장비를 사용하던 군인들이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할 가능성도 오늘날보다 낮았다. 그래서 군수물자에 대한 부실관리가 지금처럼 문제될 소지가 적었다.

< 1급기밀>은 국방부 항공부품구매과 박대익 중령(김상경 분)이 전투기 부품 공급 과정의 비리를 세상에 알리는 영화다. 2002년에 조주형 공군 대령이 폭로한 차세대 전투기 외압설과 더불어, 2009년에 김영수 해군 소령이 폭로한 비품 구매 비리를 모티브로 했다.

군인 생명 담보로 한 납품비리

 <1급기밀>.

<1급기밀>. ⓒ 명필름 등


박대익은 우직하고 충직한 군인이다. 야전 장교 출신인 그는 군대를 절대적으로 신성시한다. 자기 자신처럼 동료들도 정직하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동료들에 의해 군수비리와 부실관리가 생기리라고는 생각도 못한다. 그랬던 그의 생각을 공군 전투기 추락 사고가 확 바꾸어놓는다. 

사고 전에 박대익을 찾아온 장교가 있었다. 강영우(정일우 분)란 공군 대위였다. 강영우는 전투기 부품 비리를 제보했다. 박대익은 설마 했다. 잘못된 제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강영우가 조종하던 전투기가 추락한 뒤에 벌어진 뒷수습 과정을 접하면서 군수비리의 실체를 목도하게 된다. 

미국 군수기업, 장교 출신 군피아, 군 내부 비리세력은 추락 사고를 전투기 부품 문제가 아닌 조종사 개인의 과실로 몰아간다. 사생활 관리를 잘못한 강영우가 전날 밤 음주 때문에 사고를 낸 걸로 몰아간다. 이런 부조리를 보면서, 박대익은 내부 고발자가 되어 세상으로 뛰어나가게 된다. 

군수비리는 국민 세금을 좀먹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뇌물이 개입됐든 안 됐든 간에 부실 관리로 불량 장비가 도입되면, 영화 속의 강영우처럼 군인들이 인명 손실을 입게 된다. 그래서 이 문제는 군인의 생명,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다.

군이 세계 최고라며 홍보한 장갑차가 있다. 수륙 양용인 K-21 장갑차다. 군은 K-21이 적의 전차뿐 아니라 헬기도 잡을 수 있다고 홍보했다. 그랬던 K-21이 실전 배치 직후인 2009년 12월 침수 사고를 일으켰다. 수륙 양용이므로 물 위에서도 문제 없어야 할 K-21이 물에서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2010년 7월 28일에는 전남 장성의 저수지에서 K-21 도하 훈련 중에 하사 한 명이 익사하는 사고도 있었다. 장갑차 안에 물이 침투했던 것이다. 지금은 국회의원인 군사 전문가 김종대는 2014년 12월 '방산비리의 진정한 배후'란 글에서 "K-21 장갑차의 파도막이가 파손"된 게 원인이라며 부실 관리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파도막이는 바닷물이 장갑차 내부에 유입되지 않도록 막는 방패 역할을 한다. 이게 없으면 수륙양용 장갑차라 할 수 없다. 이런 장치가 부실한 상태로 일선에 배치돼 인명손실로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2015년 3월에 <황해문화>에 실은 '방위산업 비리, 깃털이 아닌 몸통을 봐야 한다'에서 이 사건을 언급했다. 그는 "파워팩(엔진과 변속기가 결합된 핵심 부품)이 군이 당초 요구했던 것보다 무거운 제품이 장착되면서 전방 부력이 부족하고, 파도막이 및 엔진실 배수 펌프 기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군이 주문한 부품이 아닌 다른 부품이 K-21에 장착됐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명품 무기로 홍보한 소총이 있다. 적군이 수풀 같은 데 숨어 있을 때 유용한 무기다. 적군 바로 위 공중에서 폭발이 일어나도록 하는 K-11 복합형 소총이다. 전통적인 소총 기능에 더해 공중폭발탄 기능을 더한 것이라 복합형 소총이란 타이틀이 붙었다.

 K-11 복합소총. 위키백과

K-11 복합소총. 위키백과 ⓒ 김종성


이 소총의 생산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 적군 머리 위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아군 병사 코앞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2014년 3월 12일, 경기도 연천군 국방과학연구소 시험장에서 비록 경미하나마 K-11 시험 사격 중에 군인 3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있었다. 위의 글에서 김종대는 사고 원인이 부실 관리에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야전에 배치된 한국형 무기체계들의 문제점이 바로 이렇게 발생했다. 개발시험과 운용시험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야전에서 결함이 발생하면 그때 수정하겠다는 의도로 배치부터 먼저 하고 정책 당국이 '한국형 명품무기'라고 먼저 축포를 떠뜨린 것이다."

적군뿐 아니라 아군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신무기를 내놓으면서 '문제가 생기면 그때 수정한다'는 안일한 생각을 갖는 담당자들이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다. 군인이기에 앞서 국민인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너무 가볍게 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

'1급 기밀'로 감춘 부실들

< 1급기밀> 속의 악의 세력은 자신들의 부실 관리를 '1급 기밀'로 보호한다. 마치 성역인 듯이 감추려 든다. 사실, 부실 관리는 그들의 성격 탓이 아니다. 검은 커넥션 속에서 금전적 이익을 챙겼기 때문에, 대충 대충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긴 부실 관리를 그들은 '1급 기밀'이란 명목으로 덮으려고만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실상은 1급 기밀이 될 수 없다. 군인을 포함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므로, 원칙상은 기밀로 분류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기밀이 많으면 많을수록, 군에서 뜻밖의 사고를 당하는 국민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자기 무기를 직접 장만하던 옛날과 달리 군에서 지급하는 장비로 무장할 수밖에 없는 오늘날에는, 무기 도입 과정에서 비리와 부실이 개입되면 국민과 군인들의 피해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안보 문제에서는 어느 정도의 성역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훨씬 중요한 성역이라는 점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군수 분야 중에서 국민의 생명 및 안전과 직결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1급 기밀'을 축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과 국회와 대통령의 감시 기능을 보다 더 확충하는 쪽으로 우리 사회가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1급기밀 군수비리 방산비리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