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프로축구 명문 레알 마드리드(아래 레알)는 수많은 축구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선수라면 레알 같은 팀에서 한 번 뛰어보는 것, 지도자에게는 레알의 지휘봉을 잡는 것이 축구인생의 영예로 여겨질 정도다.

하지만 레알에 웃으며 들어오는 것은 가능해도, 웃으며 나가는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도 있을 만큼 난다 긴다 하는 슈퍼스타나 명장들도 이 구단에서 끝이 좋았던 경우는 매우 드물다. 라울 곤잘레스, 이케르 카시야스 등 한때 레알을 대표하던 프랜차이즈 스타들도 끝내 레알에서 은퇴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지못하고 팀을 떠나야 했다. 세계적인 명장들은 레알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거나 아예 1~2년도 버티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경질된 경우가 부지기수다.

레알 선수 출신으로 코치 맡아... 이후 감독 부임한 지네딘 지단

 스페인 리그팀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 지네딘 지단. 레알 마드리드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스페인 리그팀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 지네딘 지단. 레알 마드리드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 레알마드리드 홈페이지


지네딘 지단 감독은 자타공인 레알의 역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 중 한 명이다. 현역 시절 '마에스트로'로 불리우던 당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서 월드클래스급 스타들이 즐비하던 레알의 '갈락티코' 1기에서도 가장 빛나는 존재감을 자랑하던 선수였고, 은퇴 후에도 2군 감독과 수석코치를 거쳐서 사령탑까지 오르며 레알과의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보기 드문 사례다.

지단 감독은 레알 유스 출신 스타들도 어렵다는 '레알에서의 명예로운 현역 은퇴'를 이뤄낸 몇 안 되는 인물이자, 선수-코치-감독으로서 레알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지단 감독은 2016년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의 후임으로 시즌 중 지휘봉을 잡자마자 챔피언스리그 2연패와 프리메라리가 우승, 클럽월드컵 우승 트로피 등을 안기며 '스타 출신 감독'의 성공사례로 떠올랐다.

하지만 천하의 지단도 '레알의 저주'는 피하기 어려운 듯하다. 어느덧 감독 3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지단은 올시즌 레알 사령탑 부임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단의 레알은 현재 라 리가에서 승점 19점 차이로 선두 바르셀로나에 한참 처진 4위에 머물고 있다. 우승은 고사하고 이제 4위까지 주어지는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티켓도 걱정해야하는 처지다. 불과 반 년 전 라 리가와 챔스 '더블'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했던 것을 감안하면 급격한 추락이다. 지난 연말 최대 라이벌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 더비에서는 충격적인 0-3 완패를 당하기도 했다.

시련은 멈추지 않았다. 25일(한국 시간) 열린 레가네스와 2017-18시즌 코파 델 레이(국왕컵) 8강 2차전 홈에서 1-2로 지며 탈락했다. 리그에 이어 또 하나의 우승트로피가 멀어졌다. 그것도 홈에서 한 수 아래로 꼽힌 약팀을 상대로 패배했다는 것도 큰 충격이었다.

현지에서는 슬슬 지단 감독의 경질설이 터져나오고 있다. 그동안 지단 감독이 레알 사령탑으로 연착륙할 수 있었던 비결은 본인이 슈퍼스타 출신답게 레알의 개성 강한 스타들을 아우를 수 있는 선수단 장악력과 준수한 로테이션 능력이었다.

하지만 올시즌에는 호날두를 비롯한 BBC(벤제마-베일-호날두)의 노쇠화, 알바로 모라타-하메스 로드리게스의 이적으로 인한 벤치 약화 등으로 지단 감독의 장점이 반감된 반면,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전술적 다양성과 임기응변의 부재라는 문제가 더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고의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플랜A가 계획대로 돌아가지않을 때 이를 극복할 만한 전술적 역량이나 경험은 부족하다는 것이 현재 지단 감독의 한계다.

올 시즌 무관에 그친다면 경질될 가능성 높아

2000년대 이후 레알 마드리드 사령탑을 지낸 사람만 지단까지 총 14명이다. 이중 레알에서 3년 이상 지휘봉을 잡았던 감독은 비센테 델 보스케(1999.11.~2003.6.)와 주제 무리뉴(2010.5.~2013.6) 단 2명뿐이다. 이들을 제외하면 레알 감독의 평균 임기는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레알의 감독직은 '독이 든 성배'로도 불린다. 항상 최고만을 원하는 레알의 '일등주의'로 인하여 매년 우승트로피를 하나 이상 들어 올려야 하고, 보는 이를 즐겁게 하는 공격축구와 수준 높은 경기 내용까지 동시에 잡아야 한다. 극성스러운 현지 언론과 팬들의 시달림도 감수해야 한다. 우승을 이끈 감독도 다음 시즌 성적이 조금만 좋지 않거나 혹은 구단과의 관계가 틀어지기라도 하면 가차없이 내치는 구단이 바로 레알이다. 서류상의 계약기간은 레알 감독에게는 사실상 '공허한 휴지조각'일 뿐이다.

사실 지단 감독이 아직까지 경질되지 않은 것도 레알 입장에서는 오히려 선처라고 할 만하다. 역대 레알 감독들의 선례를 봐도 리그 우승권에서 멀어진 순간이나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 더비에서 참패했다는 이유로 경질당한 사례가 부지기수다. 그나마 지단 감독이 레알의 레전드이고 지난 시즌까지 챔피언스리그 2연패를 이끈 공로를 감안했기에 버틸 수있었다는 평가다.

 5월 15일(한국시각) 스페인 마드리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2016-2017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37라운드 세비야와 홈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4-1로 승리했다. 이날 호날두는 2골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지난 2017년 5월 15일(한국시각) 스페인 마드리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2016-2017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37라운드 세비야와 홈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4-1로 승리했다. 이날 호날두는 2골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 EPA/ 연합뉴스


하지만 지단 감독이 올시즌 끝내 무관에 그친다면 길어도 시즌 종료 후에는 지휘봉을 내려놓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현지의 분석이다. 이제 레알이 들어 올릴 수 있는 유일한 트로피는 3연패에 도전하는 챔피언스리그 뿐이다. 레알은 16강(1차전 2월 15일 홈, 2차전 3월 7일 원정)에서 파리 생제르망(PSG. 프랑스)과의 한판 승부를 앞두고 있다. 레알의 차기 영입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슈퍼스타 네이마르를 비롯하여 에딘손 카바니, 마르코 베라티, 티아구 시우바 등 호화멤버가 포진해 있는 PSG는 지금의 레알로서는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대다.

지단 감독은 레알 사령탑 부임 이후 2년만에 무려 8개의 우승트로피를 선물했다. 지단과 레알의 계약기간은 2020년까지다. 하지만 레알 감독에게 과거의 영광이나 미래의 계약기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감독 부임 이후 가장 혹독한 '현재'와 마주하게 된 지단도 조만간 레알이 자랑하는 '명장들의 무덤'속으로 들어가는 운명을 피할 수 없을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