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린딜드

싱어송라이터 폴린딜드는 지난 19일 첫 번째 정규앨범 <폴린딜드>를 발표했다. ⓒ 애프터눈 레코드


폴린딜드(Fallin' DILD)는 19일 첫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한 남성 싱어송라이터다. 2009년 12월 가요계에 처음 자신의 노래를 공개한 후 만 8년이 지나서야 11곡이 수록된 자신의 CD를 갖게 된 것. 2003년, 실력있는 음악인들의 등용문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입상하며 기대를 받았지만 이후 가요계에 입성하기 쉽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며 음원을 발매했고 본격적 음악활동이 하고 싶어 녹음 스튜디오를 차렸지만 그는 뮤지션이 아닌 비즈니스맨이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음악인의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웹 드라마 <애나야 밥먹자>의 주요 OST 곡을 만들고, 뮤지컬 음악가로 활동하며 자신의 창작곡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펼쳐 왔고 그 결과물을 마침내 공개하게 된 것이다.

폴린딜드는 녹음스튜디오 겸 라이브 무대를 가질 수 있는 공연장이 된 스테이 지(Stay G.) 홀의 대표이며 이제 앨범을 발표한 아티스트로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음악인으로서 살고 있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고 그 꿈 속에서 헤어나오고 싶지 않다는 폴린딜드를 20일 오후 1시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스테이 지 홀에서 만났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음악을 향한 나의 꿈과 사랑, 들려주고 싶어 

 폴린딜드

ⓒ 애프터눈 레코드


- 9년의 시간이 걸린 정규앨범이라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막상 CD를 받고서는 담담했다. 돌이켜 보면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 미처 생각은 안했지만 수록곡 모두 공들이고 신경을 썼던 것 결과다. 그리고 그날 앨범에 수록된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너무 행복하고 뿌듯했다. 저녁에는 친한 친구 부부와 식사를 하며 CD를 들으며 축하인사까지 받아 흐뭇했다(웃음)."     

- 가장 기뻐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어머니께 가장 먼저 말씀을 드렸다. 정말 기뻐해 주셨다. 발매 당일에는 경황이 없어 음악을 전해드리지 못했는데 아마 아버지와 함께 매일 들으시지 않을까 싶다. 도움을 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있는데 특히 소속사 대표이자 재주소년 멤버 박경환님에게 고맙다고 꼭 말하고 싶다. 2015년에 발표했던 '지난 이야기'를 듣고 인연이 되어 만 2년여 만에 이렇게 앨범을 낼 수 있게 됐다."

- 이번 앨범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면?
"내 자신의 응어리져 있는 것을 음악으로 매듭짓고 해결하고 싶었다. 사랑과 꿈에 관한 것이다. 내 인생에 있어 이루어지지 못했던 사랑, 음악이란 꿈을 좇았던 나의 갈망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바라는 마음을 가사로 전하고 싶었다.

더 나아가 그 사랑이 특정한 누군가를 향한 것이 아닌 폭넓은 의미로 다가가길 소원했고, 폴린딜드란 한 뮤지션의 음악을 향한 사랑과 꿈이 듣는 이들에게 진실 되게 전달되었으면 한다."

음악인이 되기 위한 노력, 대학과 직장에서도 멈출 수 없었다

 폴린딜드

ⓒ 애프터눈 레코드


- 앨범 발매에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가 있나?
"굳이 이유를 들자면 대학졸업 후 직장인으로서 삶의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다. 대학전공과는 전혀 달리 2008년 초 음악관련 출판사에 입사해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뮤지션으로서 창작을 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은 어려웠다. 다행스럽게도 대표님이 정말 많은 이해와 배려를 해주셔서 드라마 음악작업 및 2009년에 3곡의 창작음원도 발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롯이 음악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는 상황을 이어갈 수 없었고 2011년 초 녹음 스튜디오를 만들며 독립을 했다. 그런데 막상 홀로서기를 했지만 경제생활은 내 앞에 닥친 일이었고, 음악이 연관된 비즈니스를 해야만 했다."

- 그래도 직장생활 때보다 나아지지 않았나?
"그렇지 않았다(웃음). 스튜디오 월세와 매달 직원들 월급 등을 줘야 하니 출판사 시절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1주일에 하루는 무조건 두 명의 후배와 함께 스튜디오에서 음악을 만들어 냈다.

처음 시작했던 관련 비즈니스는 몇 년 후 완전히 접고 뮤지컬, 케이블 및 웹-드라마 음악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고, 3인조 밴드로 활동하려 했던 곡 작업을 2013년과 14년 여러 기획사에 데모를 보냈지만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지금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후배들과도 헤어진 후 2015년 10월 말에 '지난 이야기'란 디지털 싱글을 발표하게 됐다. 스튜디오도 음악인들이 작게나마 공연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 더 돌아가 대학시절 이야기도 듣고 싶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는데 천성적으로 타고난 음악적 자질을 묻힐 수 없었던 것 같다. 형도 뮤지션으로 먼저 활동하고 지금 함께 여러 음악작업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스무 살 때 본격적으로 음악을 접하게 됐고 2003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 입상까지 하게 됐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과 기본적 소양 말고는 부족한 면이 너무 많았다. 경연대회에서도 피아노를 정말 많이 틀렸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책을 구입해서 음악을 글로 배웠고 학교를 휴학해 1년간 재즈아카데미를 다니기도 했다. 복학 후에는 음대 교수님들을 찾아가 전공과목 수강신청을 요청해 3학년과 4학년 때 작곡과와 피아노과에서 38학점을 이수했다. 그 때 음대학생들에게 '그 사람'으로 불려 졌다.(웃음)"

- 나름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다.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음악은 한다고 주위에 말은 하는데 막상 보여줄 게 없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이후 공백도 컸고 뮤지션으로서 보다 음악이 연관된 일만을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렇게 첫 정규 음반을 발매하고 가능한 많은 활동을 할 계획도 있으니 기대해 주시길 바란다."

음악인 폴린딜드의 꿈, 끊임없이 계속 된다

 폴린딜드

ⓒ 애프터눈 레코드


- 음악인으로서 꿈은 제대로 이뤄나가고 있나?
"스무 살 이전에는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게 꿈이었고, 스무 살 이후에는 내 곡을 만드는 꿈을 '스물두 살 가을'이란 노래로 완성했다. 스물두 살 이후에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 나가는 꿈을 꿔 그 것 역시 이뤄냈다. 그리고 지금까지 헤어날 수 없는 음악인으로서의 꿈을 계속 꿈꾸고 있는 중이다."  

- 폴린딜드란 이름은 언제 어떻게 갖게 됐는지?
"2009년 처음 노래를 발표했을 때 다인(Dyne)이란 예명을 썼다. 힘의 단위를 나타내는 단어로 대학 때 전공과 무관하지 않다(웃음). 6년 후 두 번째로 디지털 싱글을 선보이면서 폴린딜드(Fallin' DILD)로 바꿨는데 '딜드'는 자각몽(自覺夢) 중 꿈 속에서 자각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음악을 꿈꾸는 것과 오버랩을 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인데 아무리 깨어나려고 발버둥 쳐도 깨어날 수 없는 것이 자각몽인 것처럼 음악은 나에게 헤어날 수 없는 자각몽과 같았다. 그래서 폴린딜드란 이름으로 활동하게 됐다."

- 영향을 준 음악인이 있다면?
"먼저 유재하 선배님이다. 스무 살 때 카세트테이프를 늘어지게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함께 자취하던 친구가 질려했을 정도였다(웃음). 이후 꿈에 그리던 음악경연대회에 입상도 하고 같은 대학 후배로 작곡과 수업을 들으며 유재하란 천재 뮤지션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알고 싶었다. 특히 가사를 써 나가는 법, 현악기 편곡 등 여러 부문에서 커다란 영향을 여전히 받고 있다.

또 한 뮤지션은 루시드 폴(Lucid Fall) 선배님이다. 많은 분들이 내 음악을 들으며 떠올리는 아티스트다. 그분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을 숨길 생각은 없다. 훌륭한 음악인의 훌륭한 음악은 내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아티스트의 길, 책임 있는 음악을 전하고 있는 루시드 폴 선배님은 소중한 롤 모델이다."

음악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행복

 폴린딜드

ⓒ 애프터눈 레코드


- 차트에 역주행 곡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지금의 역주행은 정주행'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음반 위주 음악시장에서는 앨범 수록곡들을 대중들이 알음알음 듣고 즐기면서 천천히 인기를 얻는 경우가 많았다고 본다. 산업계 자체가 왜곡된 상황에서 역주행 현상이 일어나고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 같다. 워낙 좋은 노래들이 세상에 많이 발표되기 때문에 계기가 중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컨텐츠의 힘'이 있다면 대중은 분명 선택할거다."   

- 만약 폴린딜드가 역주행에 성공한다면 어떤 노래가 인기를 얻을 것 같나?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어려운 질문인 것 같다(웃음). 앨범이 나오기 전 모니터링을 많이 했는데 마지막 수록곡 '바람'에 대한 반응이 남달랐다. 1절은 내 자신에 대한 성찰을 담았고, 2절에서는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내용이 진정성 있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또 다른 역주행 곡으로 '나를 원망하나요'가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답답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 앞에 놓인 우리 2030 세대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 싶은 노래다. 많은 분들에게 위안이 된다면 서서히 사랑받지 않을까 싶다." 

- 다음 앨범 계획을 미리 공개할 수 있나?
"1집 앨범에서는 '나란 사람에 관한 노래'를 중점적으로 담고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확장한 부분도 있다. 두 번째 앨범의 컨셉도 대략 정했고 구체적 방향성은 회사와 더 논의해야 한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우리 주위에 타인에 관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전하고 싶다.

그 다음 음반은 세상에서 가장 소외된 노숙자 분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승화하고 싶다. 그 분들을 대상화할 생각은 결코 없다. 정말 진솔한 대화를 할 시간이 내게 주어진다면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공감해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 2월에 단독 콘서트를 갖는다고 들었다.
"다음달 24일 예정인데 이미 공연 준비에 돌입했다. 우선적으로 노래를 잘하고 싶다. 성대를 심하게 다쳐 가창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히 남아 있다.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기도 하다. 3인조로 무대를 구성할 예정이다. 일렉트릭 기타리스트와 첼리스트가 같이 하고 나는 건반과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할 거다.

단출할 수도 있겠지만 세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완벽한 편곡으로 내 첫 콘서트를 보러 올 관객들에게 감동과 위안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평상시 사람들과 대화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2월 첫 앨범 기념 공연에서는 정제된 멘트로 감동어린 음악을 전하고 싶다."

- 올해 뮤지션으로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음악으로 대화하는 콘서트를 하고 싶다. 여성 아티스트와 함께 하는 콜라보 공연을 생각하고 있는데, 남성과 여성이 각자의 시각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곡으로 주고받는 형식을 그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이예린씨와 서로 공감하고 함께 하자고 의기투합했고 각자 소속사끼리 협의가 잘 돼서 관객과 만났으면 좋겠다."  

- 음악인으로서 가장 큰 행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음악인이 돼서 살고 있다는 자체가 내겐 큰 행복이다. 운영하고 있는 공연장에서 무대를 펼친 뮤지션들과 관객이 모두 빠져 나간 뒤 혼자 정리를 하면서 다양한 음악을 듣는다. 그런 일상이 나에게 있다는 것이 소소한 감동으로 다가선다. 다양한 음악 관련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이자 행복이다(웃음)."

폴린딜드 유재하 오늘하루 루시드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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