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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합성 사건이 '또' 발생했다. 지난해 9월에는 경북대학교 대나무숲(SNS상의 커뮤니티)에 '지인으로부터 음란물 합성 피해를 입었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같은 해 12월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텀블러 등 해외사이트를 통한 일반인 모욕 사진의 유포를 막아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여기에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인합성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번에는 한양대 남학생이 여성 지인들의 사진을 합성해 소장하다가 덜미가 잡혔다.

피해자는 무려 16명에 이른다. 이들은 페이스북에 '한양대 남학생의 지인사진을 이용한 음란물 제작사건 피해자모임'이라는 페이지(링크)를 만들고 직접 대응에 나섰다. 사건일지를 제작하고, 가해자가 사진 합성을 요구하며 덧붙인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이들이 올린 호소문은 6천 개 이상의 '좋아요'를 받았고 천 번 이상 공유됐다. 음란물 합성 문제에 분노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숫자다. 21일, 서면 인터뷰를 통해 피해자 모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해자는 사진 합성을 의뢰하면서 개인정보를 덧붙였다.
 가해자는 사진 합성을 의뢰하면서 개인정보를 덧붙였다.
ⓒ 피해자모임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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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조사받고도 버젓이 교내 활동... 조사 불참

- 피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나.
"지난해 12월 말, 가해자가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그걸 주운 사람이 휴대폰을 돌려주기 위해 사진첩과 SNS에 들어갔는데 사진첩에 이상한 사진이 너무 많았던 거다. 가해자가 트위터로 합성을 의뢰한 기록이 남아있었는데, 거기에 사진 뿐 아니라 이름, 나이, 집 주소, 전화번호 등의 개인정보가 같이 있었다. 그걸 본 습득자가 카카오톡에서 피해자의 이름을 찾아 연락했다.

처음에는 터무니없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해자에게 연락해보니 'SNS상에서 지인 합성사진을 보고 신고를 위해 저장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 얘기를 듣고 사진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직접 확인해보니 상황은 더 심각했다. 가해자는 트위터나 텀블러를 통해 적극적으로 합성을 의뢰했다. 피해자들의 개인정보도 그대로 노출했고,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적인 발언들을 덧붙였다."

- 이후 피해자들은 어떻게 대응했나.
"피해사실을 알게 된 피해자가 (피해를 입은)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다. 상황을 전달받고는 다들 당황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했다. 밤새 고소장을 작성하고, 증거를 정리했다. 사진만 무려 60장이 나왔다. 다음날 바로 성동경찰서를 방문해 가해자를 고소했다."

- 가해자의 반응은 어땠나.
"휴대폰을 주운 사람과 피해자가 대화하는 걸 본 가해자가 연락을 시도한 적이 있다. 'OO아, 카톡 내용 대충 봤는데 지금 카톡 가능해?' 이후 가해자는 원격으로 휴대폰을 잠금 처리하고, 계정 비밀번호를 바꿨다. 가해자는 경찰 조사에서 '단순히 호기심에 그랬다'고 주장하고 있다."

21일 한겨레의 보도(관련 기사 : '여성 지인 사진 음란물과 합성'…피해자 우는데 가해자는 멀쩡)에 따르면, 가해자는 2015년부터 지속적으로 음란물 합성을 의뢰했다. 피해자들이 '호기심'이나 '실수'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한양대학교 인권센터에서 조사를 위해 가해자에게 연락을 했지만, 가해자는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출석을 거부했다.

경찰 조사 이후에도 교내 단체 모임에 매일같이 참여했던 것과는 상반되는 반응이다. 현재 가해자가 참석을 거부해 교내 징계절차는 진행되고 있지 않다. 한양대학교 측은 22일 통화에서 "가해자에게 일종의 소명 기회를 주는 것이지만, 지속적으로 거부할 경우에는 가해자의 출석 없이도 인권심의위원회나 징계위원회를 소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극적인 언론보도,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가해'

- 페이지를 만드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 언론보도가 나가고 여러 언론사에서 비슷한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이런 기사들은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보도됐고, 심지어 사실 관계가 틀린 내용도 있었다. 어떤 기사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한양대 학생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피해자는 한양대생과 다른 학교 학생 각각 8명이다.

또 피해자와 가해자가 어떤 관계였는지를 눈치챌 수 있는 정보들도 들어가 있었다. 사건 이후 안 그래도 신상이 유포될까 걱정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는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서 직접 페이지를 만들었다.

이번 사건과 같은 온라인 성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고, 다른 피해자를 막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런 사건을 겪어보니 온라인 성범죄에 대한 처벌 방법과 관련법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론화를 통해서 지인 합성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제기하고, 우리뿐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다."

-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지인능욕'이라는 단어와 자극적 삽화를 사용하지 말라고 요청했는데 이유를 듣고 싶다.
"우선 '능욕'이라는 표현은 '여자를 강간하여 욕보임'이라는 뜻으로, 주로 이런 합성사진을 제작하는 가해자들이 사용하는 표현이다. 많은 기사에서 '지인 능욕, 지인 합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지인능욕'이라는 단어가 사건의 본질을 흐리면서 자극적인 면을 강조한다고 느꼈다.

현재 피해자 모임에서는 '능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지인 사진을 이용한 음란물 제작'이라고 이 사건을 부르고 있다. 또한 사건 자체가 자극적인 음란물 사진과 관련된 만큼, 보도에서 자극적 삽화를 사용하는 것은 피해자들에게 2차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피해자들은 현재 어떤 상태인가.
"사건 이후 피해자들은 혹시라도 가해자가 보복으로 사진을 유포하지는 않을까, 신상정보가 유출되진 않을까 불안에 떨고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댓글과 게시물들을 매일매일 확인한다.

피해자들은 각자 바쁜 일정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 경찰과 학교, 언론과 계속 사건에 대해 논의하고 있고, 페이스북을 통한 공론화도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피해 사실과 사람들의 반응을 접하게 되고, 또다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피해자들 중 몇 명은 상담센터를 다니거나 병원에 다닐 정도로 일상 속에서 피해를 겪고 있다."

 피해자들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고 직접 대응에 나섰다.
 피해자들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고 직접 대응에 나섰다.
ⓒ 피해자모임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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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능욕'도 '음화제조' 아닌 '성폭력'

현재 가해자는 성폭력이 아니라 '음화제조'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음란한 물건을 제조하고 소지했다'는 죄목이다. 가해자가 합성 사진을 소지했을 뿐 유포하지 않았고, 피해자들의 신상도 합성 사진 제작자 개인에게 제공해 공연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상 유포죄의 적용도 어렵다. 이 사건의 본질적 문제를 법적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 아직 사이버 성폭력에 대한 법과 제도가 미흡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피해자들은 이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나.
"이 사건은 명백한 성범죄다. 성범죄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해자는 지인 음란물 합성을 지속적으로 의뢰했다. 자신의 성욕 해소를 목적으로 지인들의 사진을 무단으로 도용하여 음란한 사진에 합성을 의뢰하고, 심지어는 스스로 합성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피해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성적 모욕과 폭력을 가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의 본질은 성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이 새로 등장하는 사이버 범죄인만큼 적용할 수 있는 법 자체가 부족하여 안타깝다. 법의 한계를 실감하고 있다."

- 피해자들이 가해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해자가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SNS에 공개 사과문을 올리고, 경찰 수사, 교내 징계 절차에 참여하길 바라고 있다. 또한 더 넓게는 가해자가 혹시나 내 지인은 아닐까 주변 사람들을 한 번씩 의심할 수밖에 없었을 모든 분들, 가해자로 의심받은 모든 분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 보도가 나가고 사건이 화제를 모았지만, 가해자의 대응은 뻔뻔하다. 사과문을 작성에도 응하지 않았고, 교내 인권센터의 호출도 무시하고 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해자들의 고통은 커지고 있다.

학교에는 퇴학을 요구하고 있다. 가해자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피해자들은 우연히 가해자를 학교에서 마주칠까 두려워하고 있다. 학교는 가해자로부터 여학생들을 분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무기정학 등의 징계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가해자는 현재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정학 처분을 받아도 사실상 군 복무로 정학 기간을 보내면 된다는 얘기다.

피해자 중에는 이제 겨우 1학년을 마친 이들도 있다. 무기정학이 내려질 경우, 몇 년 후 정학이 끝나고 복학을 하게 되면 또다시 가해자와 마주칠지도 모른다. 보복이나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 피해자에게 퇴학 처분이 내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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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과 언론을 공부하는 여성 청년. 페미니즘, 노동, 철거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읽고 쓰는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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