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골팔십'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금세라도 쓰러질 듯 허약해 보이는 사람이 의외로 장수하는 경우를 빗댄 표현이다. 어찌 보면 잔병치레를 많이 하며 사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문제점을 더 잘 알고 건강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봉길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 한국축구대표팀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에 출전 중인 김봉길호는 현재 4강 진출에 성공한 상황이다. 대표팀은 23일 오후 8시 30분 우즈베키스탄과 결승 진출을 놓고 격돌을 앞두고 있다.

한국은 조별리그부터 8강까지 3승 1무로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다. 현재까지의 상황만 놓고 봤을 때 이번 대회의 강력한 우승후보다. 하지만 내용을 놓고 봤을 때 국내에서의 평가는 그리 좋지 않다. 이번 대회에서 4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한 번도 시원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며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한승규 결승골' 한국, 말레이 꺾고 AFC U-23 챔피언십 4강 진출 한국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이 말레이시아에 승리, 3회 연속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4강에 진출했다.

대표팀은 20일 중국 쿤산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18 AFC U-23 챔피언십 8강전에서 한승규(울산)의 결승 골로 말레이시아를 2-1로 꺾었다. 사진은 볼다툼하는 한승규.

▲ '한승규 결승골' 한국, 말레이 꺾고 AFC U-23 챔피언십 4강 진출 한국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이 말레이시아에 승리, 3회 연속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4강에 진출했다. 대표팀은 20일 중국 쿤산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18 AFC U-23 챔피언십 8강전에서 한승규(울산)의 결승 골로 말레이시아를 2-1로 꺾었다. 사진은 볼다툼하는 한승규. ⓒ 연합뉴스


조별리그부터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에 선제골을 내주고 고전하다가 간신히 역전승했다. 2차전에서는 시리아에 무승부를 기록하며 위기를 맞이하는가 하면, 호주전에서는 이기기는 했지만 먼저 세 골을 넣고도 후반 두 골을 내주며 막판까지 진땀을 흘려야 했다. 8강전에서도 한 수 아래로 꼽힌 말레이시아에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후반 막판에 터진 결승골로 간신히 기사회생했다. 대체로 팬들은 "이렇게 못하면서도 4강에 올라온 것 자체가 신기하다"는 반응이다.

이러한 김봉길호의 아슬아슬한 행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좀 헤매더라도 어쨌든 결과를 이룬 게 중요하다'는 옹호론도 있고, '재미 없고 지루한 축구인데 운 좋게 여기까지 올라왔을 뿐'이라는 비판론도 존재한다. 둘 다 나름 일리 있는 지적임이 틀림없다.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의 '전초전'인 이번 대회

김봉길호는 태생적으로 다소 애매한 상황에 놓여있다. 일단 이번 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은 '골짜기 세대'라는 평가를 받았다. 바로 한 세대 위 '형님'들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우승-2016 리우올림픽 8강이라는 성과를 올렸고, '동생'들은 한국에서 열린 2017 U-20 월드컵 16강을 경험했다. 그에 비하여 지금의 연령대는 2014 U-19 AFC 챔피언십서 조별리그 탈락으로 월드컵 진출 실패라는 '흑역사'를 남겼던 세대다. 권창훈-손흥민-황희찬-이승우처럼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선수도 별로 없고 세계대회 경험 역시 전무하다. 여기에 대표팀이 출범하여 치르는 첫 대회로서 제대로 손발을 맞추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여기에 김봉길 감독도 지도자로서 그리 명성이 높은 인물은 아니었다. 김 감독은 고교-대학-프로 등 다양한 무대에서 활약한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정작 어디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의 지휘봉을 잡아 잠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 가장 주목받았던 시기지만 역시 2014년을 끝으로 성적부진으로 경질된 바 있다. 우승이나 국제무대 경험과도 거리가 있었다. 김 감독의 아시안게임대표팀 사령탑 선임 소식이 알려졌을 때 많은 팬들이 고개를 갸웃했던 이유다.

아시안게임은 메이저대회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국축구계 입장에서는 우승 가능성-프로 선수들의 병역혜택 같은 민감한 현안과 맞물려 결코 비중이 낮지 않은 대회다. 최근 20년간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 선임의 사례를 봐도 허정무(1998 방콕)와 핌 베어벡(2006 도하)은 A대표팀 사령탑을 겸임하고 있었고, 박항서(2002 부산)는 A대표팀 코치 출신. 홍명보(2010 광저우)-이광종(2014 인천) 올림픽대표팀 감독까지 하나 같이 '거물급'이거나 연속성을 고려한 인사들이었다.

김봉길 감독은 김호곤 전 위원장이 이끌던 전임 축협 수뇌부에서 결정된 인사다. 김 전 위원장이 좋지 않은 구설수에 휘말린 끝에 사임한 탓에 덩달아 '김호곤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김봉길 감독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아시아 챔피언십은 사실 그 자체로 성적에 큰 의미가 있는 대회는 아니지만,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을 앞둔 전초전이라는 점에서 김봉길호에 대한 기대치를 가늠해볼 수 있는 무대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현재까지의 김봉길호는 4강까지 생존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팬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인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이 사상 첫 4강행에 성공하며 극찬을 받고 있는 것과 비교되어 더욱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다.

4강 진출에도 비판받는 김봉길호, 우승으로 명예 회복할까

팬들의 진짜 우려는 사실 이번 대회 성적보다도 과연 다가오는 8월 아시안게임에서 '김봉길 축구'로 경쟁력이 있겠는가 하는 걱정이다. 전임 고 이광종 감독이 이미 2014년 인천 대회에서 28년 만의 우승을 차지했던 만큼 팬들의 눈높이는 매우 높아져 있다.

 14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세르비아의 경기. 한국의 손흥민이 슛하고 있다.

지난 2017년 11월 14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세르비아의 경기. 한국의 손흥민이 슛하고 있다. ⓒ 연합뉴스


더구나 아시안게임에서는 현재 한국축구의 에이스 손흥민(토트넘)도 와일드카드로 합류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토트넘에서 물오른 경기력을 보이고 있는 손흥민으로서는 유럽무대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병역혜택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어야 한다. 이래저래 팬들의 시선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한편으로 김봉길 감독으로서도 억울할 만하다. 어쨌든 출범 이후 첫 대회이고 아직 한번이라도 지거나 우승에 실패한 것도 아닌데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경기를 거듭할수록 비판 여론만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게 정상 근처까지 오기는 했지만 마치 한발을 잘못 딛으면 천길 낭떠러지 추락이 기다리고 있는 곡예같은 상황이다.

우즈벡전은 김봉길호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즈벡은 8강전에서 우승후보로 꼽히던 일본을 4-0으로 완파하는 이변을 일으킨 바 있다. 한국으로서도 결코 방심할수 없는 전력이다. 만에 하나 김봉길호가 우즈벡에 지거나 심지어 일본과 비슷한 수모를 당하기라도 한다면 지금까지의 경기력을 둘러싼 비판과 맞물려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김봉길 감독의 경질을 논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결과와 내용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 당장 불가능하다면 지금으로서는 '결과라도' 확실히 잡아야 한다. 어차피 강한 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승리와 우승이라는 결과가 주는 자신감은 어린 팀에게 큰 자양분이 된다. 그 과정에서 얻는 경험을 통하여 더 좋은 팀이 되어갈 수 있다. 비록 지금은 욕을 먹고 있지만 김봉길호가 골골팔십 뺨치는 '골골우승'이라도 완성해내며 진정한 생존왕에 등극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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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23세이하대표팀 김봉길호 손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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