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동정범>의 한 장면.

영화 <공동정범>의 한 장면. ⓒ 시네마달


용산 참사가 9주기였던 지난 20일, 경찰청은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담당할 임기제 공무원 10명을 선발했다고 밝혔다. 지난 8월 발족한 진상조사위에 대해 이철성 경찰청장은 "조사 대상에는 성역이 없다"며 "필요시 위원회 위원을 포함한 경찰 지휘부도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부응하듯, 진상조사위는 경찰이 최우선으로 조사해야 할 사건으로 용산참사를 필두로 ▲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 밀양 송전탑·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관련 충돌 ▲ 평택 쌍용자동차 파업 등을 선정한 바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출범 이후 자유한국당의 반대에 부딪힌 진상조사위는 '조사기관'에서 '자문기관'으로 성격이 격하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진상조사위의 활동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자명하다. 진상조사위가 꼽은 위 대표적인 사건에서 보듯,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에서 경찰이 자행했던 대다수의 '인권침해' 사건들은 시민의 생명을 앗아가는 '참사'와 '비극'으로 이어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 피해 당사자들은 지금도 신음하고 있고, 책임자들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떵떵거리며 안온하게 살고 있다. 그렇다. 용산참사가 대표적이다.

"주모자는 아직도 벌을 받지 않았다. 그 주모자는 바로 이명박이다. 그는 이제 반드시 감옥에 가야 한다."

20일 오후 열린 용산참사 9주기 추모식과 다큐멘터리 영화 <공동정범> 추모 상영회에 참석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발언이다. 위 발언이야말로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대상에 "성역은 없다"던 이철성 경찰청장이 새겨들어야 할 '진실'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진실'에 다가서는 영화 <공동정범>이 오는 25일 개봉을 앞둔 가운데, 2018년의 포문을 여는 사회파 다큐멘터리로서 언론과 사회 각층, 영화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용산참사 9주기, 그리고 <공동정범>에 쏠린 관심

 용산참사 9주기 추모식과 다큐멘터리 영화 <공동정범> 추모 상영회에 참석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용산참사 9주기 추모식과 다큐멘터리 영화 <공동정범> 추모 상영회에 참석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 시네마달



"국가 폭력의 진상 규명, 그리고 그 상처의 치유 가능성을 용산 참사는 우리사회에 묻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MBC <뉴스데스크>는 <'9년의 고통' 용산 참사 증언, 다큐 영화로 나온다>라는 리포트를 통해 용산참사 9주기를 맞아 서울 강남구 이명박 전 대통령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천주석·김창수·김주환·이충연씨 등 용산참사 생존 철거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용산 학살의 진짜 주범 이명박과 '공동정범' 김석기 등 진짜 책임자들을 진실의 법정에 세워야 한다."


SBS 역시 이날 '8 뉴스'에서 이 소식을 다뤘다. 철거민들은 "생지옥 같던 망루 불구덩이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공동정범'이 되어 절망의 9년을 보내고 있다"며 "국민 6명을 하루아침에 죽인 이 전 대통령뿐 아니라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이던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 등 용산참사의 진짜 책임자들을 진실의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SBS는 이들 철거민들이 용산참사 다큐멘터리 영화 <공동정범> 시사회 초청장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앞서 MBC는 영화 속 '살아남은' 철거민들의 절규를 고스란히 전달하며 "다큐 영화 <공동정범>은 국가 폭력으로 파괴된 사람들의 삶과 내면을 기록했습니다"라고 소개했다.

용산참사 9주기에 맞춰 <공동정범>이 추모시사회와 퍼포먼스, VIP 시사회를 개최한 덕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동정범>은 이미 완성과 함께 독립영화계에서 주목받은 바 있다. 최근 공개된 영화주간지 <씨네21>의 전문가 평점에서도 <공동정범>은 '7.83'이란 높은 점수와 함께 호평을 받았다. 이와 더불어 '적폐청산'의 중심에 있는 MB에게 쏠린 전 국민적 이목과 함께 영화 또한 한층 주목을 받게 됐다. 

  <공동정범> VIP 시사회에 참석한 국가인권위원회 이성호 신임 위원장.

<공동정범> VIP 시사회에 참석한 국가인권위원회 이성호 신임 위원장. ⓒ 시네마달


신임 국가인권위원회 이성호 위원장과 배우 조민수는 개봉 전 <공동정범>에 관심을 기울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인권위원회와 현병철 위원장이 '용산참사'를 외면했다고 비판을 받았던 만큼, 지난 17일 열린 VIP 시사회에 참석한 국가인권위원회 이성호 신임 위원장의 소감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용산참사는 그야말로 '개발시대가 낳은 비극'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와 같은 비극을 겪은 분들의 과장되지 않고 진솔힌 그 이야기를 통해 사람의 가치, 인권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좋은영화라고 생각한다. 인권위원회로서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한다. 인권위원회 직원들과 단체관람도 추진하고 있다."

배우 조민수는 지난 19일 '조민수와 함께 독립영화 보기'라는 제목의 상영회를 마련, <공동정범>을 응원했다. 조민수는 상영회 작품으로 <공동정범>을 직접 선정, 사비를 들여 초대한 210여 명의 관객과 영화를 직접 관람했다. 상영회 전 <공동정범>를 선택한 이유로 '사회적 의미'와 '영화적 가치'를 꼽았던 조민수는 아래와 같은 소감을 남겼다.

"오늘 이 시간 어떤 영화를 관객들과 함께 보면 좋을까. 상영작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내가 <공동정범>으로 이 아픔들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한 명이 많이 아픈 대신 우리 모두가 재채기하는 정도로 그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모두 건강해져서 앞으로 아픈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 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공동정범>, 올해의 <공범자들> 될까?

 <공동정범> VIP 시사회에 참석한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일란 감독, 김주환, 김창수, 이혁상 감독.

<공동정범> VIP 시사회에 참석한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일란 감독, 김주환, 김창수, 이혁상 감독. ⓒ 시네마달


작년 여름 개봉한 다큐멘터리 <공범자들>은 26만을 동원하며 '공영방송 MBC의 정상화'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금은 MBC 사장이 된 최승호 PD가 연출한 <공범자들>이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례적인 흥행과 화제몰이에 성공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총파업에 나섰던 MBC의 현재와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에서 철저하게 망가졌던 MBC와 KBS의 과거상을 생생하고 현실적으로 전달했다는 평을 받았다.

"운동으로써의 영화가 아니라, 세상과 인간의 진실을 바닥까지 천착한, 힘있고 울림 있으며, 그리하여 진정한 운동성을 획득한, 진정한 다큐영화이다. <두개의 문>보다 백배의 완성도를 갖는, 역사적 작품이다. 아 세상은, 그리고 인간은, 그래 아무도 모르게 이러한 것이구나. 아픈 자들은 다시 아파야, 더 아파야, 온전히 이렇게 세상의 불의와 진실을 드러내는구나. 이 영화. 보는 인간을 정화시킬 것이다. 세상을 껴안고자 하는 100만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최승호 체제의 첫 MBC 시사교양본부장인 이근행 PD는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위와 같은 바람을 적었다. MBC 정상화의 여론 환기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공범자들>마냥 <두 개의 문>의 스핀오프인 <공동정범> 역시 흥행에 성공, 용산 참사의 진실이 환기되고 주모자와 책임자 처벌로 귀결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으로 무겁기만 하다거나 진지하기만 할 거란 선입견이란 평가도 적지 않다. 김일란 감독이 연출한 '용산참사' 첫 번째 이야기 <두 개의 문>은 한국 다큐에서 흔히 볼 수 없던 미스터리한 구조와 촘촘한 짜임새로 호평을 받았던 수작이다. 실제로 <두 개의 문>은 지난 2012년 개봉, 7만 3천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러한 염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VIP 시사에 참석한 <부산행>, <염력>의 연상호 감독은 "영화 자체로 재미있고 예술성을 갖춘 훌륭한 영화"라며 "예술이 사회에 무언가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즐기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두 개의 문>에 이어 살아남았기 때문에 오히려 사는 게 지옥 같았던 진짜 고통을 경험했던, 망루 안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공동정범>은 그를 통해 9주기를 맞은 용산참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개인의 삶에 파고든 국가폭력을 정면으로, 영화적으로 고발하는 <공동정범>이 <공범자들>과 같은 반향을 일으킬지, 그리하여 '용산참사 책임자 처벌'이란 여론에 기름을 붓는 작품이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공동정범 용산참사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