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결국 개막 전까지 시끄러운 모양새로 돌아가고 있다.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대회 참가 의사를 밝힌 후부터 평창 올림픽에 관심이 몰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남북 공동 입장과 한반도기, 단일팀 구성 등 곳곳에서 잡음이 나오면서 반가운 소식보다 비판 여론이 나온다.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남북단일팀' 문제다. 이 문제가 처음으로 불거진 종목은 피겨스케이팅이었다. 지난 2일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북한 페어 선수와 함께 피겨 단체전에 나가는 것을 제시한 데서 비롯됐다. 하지만 한국에 이미 페어 선수들이 있고, 최 지사의 가정이 잘못됐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반대여론이 제기된 바 있다(관련 기사 : 피겨 남북단일팀? 정치적 논리로 선수 '꿈' 뺏을 수도). 이후 불씨는 봅슬레이, 여자 아이스하키 등 여러 종목으로 삽시간에 옮겨갔다.

선수단에 미리 양해 구하지 않아... 종목에 대한 이해 부족 발언도

남북한, 평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추진 남북한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사상 최초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파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사진은 지난 2017년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디비전Ⅱ 그룹 A 대회에서 남북한 선수들이 함께 한 모습.

▲ 남북한, 평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추진 남북한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사상 최초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파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사진은 지난 2017년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디비전Ⅱ 그룹 A 대회에서 남북한 선수들이 함께 한 모습. ⓒ 연합뉴스


현재 정부를 비롯해 한국 체육계와 정치계에서는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만들겠다며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이 진천선수촌 신년 개촌식에서 이 얘기를 공식화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기흥 회장은 "북한 선수 6~8명이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 단일팀의 엔트리를 35명까지 늘려줄 것을 아이오시와 국제아이스하키연맹에 요청했다"고 발언했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비슷한 반응을 내놓으면서 단일팀 추진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단일팀 구성에 입을 열었다. 이 총리는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남북 단일팀이 우리 선수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아이스하키는 선수들이 경기 시간 전체를 계속 뛰는 게 아니라 1∼2분씩 계속 교대를 한다. 북한 선수가 우리 선수의 쿼터를 뺏는 게 아니라 선수단 규모가 커지는 것으로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엔트리를 늘린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대회에 참가하는 엔트리를 늘린다고 해도 실제 경기에 뛸 수 있는 선수는 규정상 22명이기 때문이다. 결국 본 게임에서는 누군가가 북한 선수의 참가로 인해 4년간 준비해온 대회를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되는 부분은 기자간담회에서 이어진 이낙연 총리의 말이다. 이 총리는 "여자 아이스하키가 메달권에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팀은 세계랭킹 22위, 북한은 25위다. 우리 팀은 올림픽에서 한두 번이라도 이기는 것을 당면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총리는 "북한 선수 가운데 기량이 뛰어난 선수 몇 명을 추가해 1∼2분씩 함께 뜀으로써 전력이 강화되는 것을 선수들도 받아들이는 것으로 들었다"고 덧붙였다.

도종환 문화체육부장관도 16일 국무회의에서 남북단일팀에 관해 "우리 선수들에게는 피해가 없다"라며 "우리나라의 세계 랭킹이 22위이고, 북한이 25위로 경기력이 비슷하여 오히려 북한의 우수한 선수를 참가시키면 전력이 보강되는 측면이 있다"는 말을 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 같은 정치권과 체육계 인사들의 발언에 아이스하키 경기에 대한 기본지식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스하키에서는 1분마다 선수 교체가 이뤄지는데 그만큼 평소 조직력을 토대로 어떤 선수가 교체로 투입되더라도 최상의 호흡을 보여야만 한다. 현재 여자 대표팀은 이 같은 조직력을 맞춰왔고 국제대회에 참가하며 실전감각을 키워왔다. 또한 대표팀은 이미 지난해 북한과 맞대결에서 3-0 완승을 거뒀고 확연한 실력 차이를 보였다. 단순 수치만 보여주는 세계랭킹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 정치권과 체육계의 판단이 잘못된 근거에 기인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질문에 답하는 새러 머리 감독 새러 머리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이 16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문제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질문에 답하는 새러 머리 감독 새러 머리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이 지난 16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문제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미 지난 16일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단일팀 구성과 관련해 소식을 접한 직후 당혹감과 실망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새러 머리(캐나다) 대표팀 감독도 귀국 직후 '충격적'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단일팀 구성에 사실상 반대했다. 그는 "우리 선수들이 노력과 실력으로 따낸 자리다. 우리 선수들의 박탈감이 클 것"이라며 "올림픽이 임박한 시점에서 단일팀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도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뒤늦게 여자 아이스하키의 남북 단일팀을 위해 대한아이스하키 협회에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평창만을 위해 4년을 준비해온 선수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새러 머리 감독도 남북단일팀 논의에 관해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할 정도로 이에 관해 들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태도에 불만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러시아 응원단 만들겠다' 발언, 국가 차원의 도핑 밝혀졌는데

여기에 민주당의 발언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지난 1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 측은 올림픽 흥행 성공을 위해 러시아 선수들을 위한 응원단 조직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현재 국가주도의 도핑 스캔들을 일으킨 파문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징계를 받아 평창에 개인자격으로 출전이 가능하다.

이는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12월 러시아를 방문했을 당시 알렉산드로 주코프 러시아 올림픽위원장 겸 연방의회 하원 제1부의장을 만난 것에 이은 조치로 보인다. 당시 추미애 대표는 "한국응원단이 러시아 민속 의상을 입고 응원하도록 해 러시아 국기가 걸리지 않아도 분위기를 만들어 보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경기장 앞 러시아 국기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조직적 도핑 스캔들을 일으킨 러시아 국가 선수단의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을 금지한 소식이 알려진 7일 오전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 주경기장 앞에 설치된 참가국 국기봉에서 러시아 국기(왼쪽)가 펄럭이고 있다.

▲ 주경기장 앞 러시아 국기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조직적 도핑 스캔들을 일으킨 러시아 국가 선수단의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을 금지한 소식이 알려진 지난 2017년 12월 7일 오전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 주경기장 앞에 설치된 참가국 국기봉에서 러시아 국기(왼쪽)가 펄럭이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한국의 러시아 응원단 조직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러시아는 최근 국가 차원에서 도핑을 주도한 것이 폭로됐고, 이로 인해 대표팀 자격으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도록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가장 신성하다고 여겨지는 스포츠에서 공정성을 훼손한 행동인 만큼 큰 범죄를 일으킨 것이다. 아직까지도 세계반도핑기구(WADA)를 비롯한 주요 국제 단체에서는 러시아의 전면 출전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더군다나 한국은 직전 동계올림픽이었던 소치 대회에서 피해를 입은 일도 있다. 당시 피겨스케이팅 여자싱글에서 김연아가 석연찮은 판정으로 결국 올림픽 2연패를 놓치고 말았다. 당시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 부인, 과거 올림픽에서 징계 처분을 받은 사람 등이 심판으로 참여한 것 자체부터가 문제였던 인물들이 대거 여자싱글에 배정돼 갖가지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결국 소치 올림픽에서 김연아는 완벽한 연기를 펼치고도 마지막 무대에서 가장 높은 시상대에 오르지 못한 채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만 했다.

이런 일이 발생한 지 4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오히려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자국 선수가 피해를 본 것을 제쳐두고라도 집단 도핑 문제에 대한 적절성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제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정정당당하게 임해야 할 대회에서 여러 국가와 선수들에게 피해를 준 셈인데, 이런 국가를 위해 개최국 차원에서 응원단을 꾸리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온다.

평창에서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종목에 처음으로 출전하는 자메이카나 동계종목 약소국, 또는 한국 선수를 위한 응원단 등을 꾸린다고 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도핑 스캔들을 일으킨 국가를 위해 응원단을 구성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지원도 없다가... '정치 이벤트' 욕심 내는 정치계

한국에서 동계스포츠는 비인기 종목인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지원이나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평창 대회를 유치하고 난 이후 일부에서는 선수들의 훈련 환경이 조금이라도 개선되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피겨여왕' 김연아(28)가 과거 선수시절 국내에서 여러 링크장을 돌며 '메뚜기 훈련'을 해온 사실은 너무나 유명해진 일화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둔 지금까지도 국내 어디에도 피겨 전용링크가 단 한 곳도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선수들은 밤늦게나 새벽 대관 시간을 이용해 훈련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컬링은 최근 연맹의 부실행정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강릉 컬링센터가 부실공사 여파로 선수들이 제때 훈련을 하지 못한 데 이어,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 대회를 개최해 실전 감각을 익혀야만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연맹 행정이 마비되면서 아무런 준비조차 하지 못한 채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이해야만 하게 됐다. 최근 스켈레톤 윤성빈(24·강원도청)이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썰매계는 평창 경기장이 생기기 전까지는 도로 아스팔트 위에서 주행훈련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는 지난 6년여 간 동계스포츠와 관련한 현장만을 취재해오며 여러 현장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다. 링크 사정이 좋지 못해 한 곳에서 여러 명의 선수가 훈련하다 보니 선수는 물론 코치와도 부딪혀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인데,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스포츠 축제가 코 앞으로 다가오니 싸늘하고 차갑기만 했던 은반과 설원 위에 정치계의 손길이 뻗치고 있다. 하지만 그 손길은 선수단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북단일팀과 같은 이벤트 성사시키기 위한 것에 가까운 것 같다.

과연 어느 선수와 지도자가 이 같은 손길을 반가워 할 수 있을까. 게다가 한국 선수단을 위한 지원은 부족한 상황에서 대회 흥행을 위해 러시아 선수를 위한 응원단을 만들겠다고 하는 정치계의 행동까지 더해진다면 더욱 달갑지 않을 것이다. 이는 최소한의 협의도 없이 이뤄진 남북단일팀이 얼마나 환영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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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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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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