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 폐관하는 부산 대연동 국도예술관

1월 31일 폐관하는 부산 대연동 국도예술관 ⓒ 국도예술관


독립예술영화관 하나가 또 문을 닫는다. 이번엔 부산이다. 블랙리스트를 통해 독립예술영화관을 옥죄던 박근혜 정권의 여파가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길게 후유증으로 남는 모습이다.

부산 지역의 의미 있는 독립예술극장으로 사랑받았던 국도예술관이 오는 1월 31일 문을 닫는다. 국도예술관 정진아 프로그래머는 15일 늦은 시각 올린 공지를 통해 '2017년 12월 31일 건물주로부터 더 이상의 연장계약을 하지 않'으며, '1월 31일까지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2018년 1월 31일 국도예술관은 마지막 상영을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정 프로그래머는 "당장 내일이 될지 아니면 10년 100년이 될지 모르는 그 끝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마지막 순간에도 관객들의 기억 속엔 늘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웃으며 안녕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제가 일하는 이유이자 의미가 되었다"며 "거짓말처럼 그 끝이 왔다"고 소회를 밝혔다.

정 프로그래머는 또한 극장을 사랑해줬던 관객들을 향해 "이 깊은 미안함과 죄송함을 어떤 방법으로도 표현 할 수 없음이 또 미안하다"며 "예술영화전용관의 존재의 이유를 공공재가 아닌 개인의 상업적 이윤에 기준하여 평가하려던 영진위 정책과 싸울 때도 믿는 건 관객뿐이었고, 건물주와의 마음고생에도 10년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우리 관객이 있어서였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부산 국도예술관은 2005년에 재개관해 2006년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선정됐다. 2008년 지금의 대연동으로 이전 재개관해 부산지역 독립예술영화의 중심 역할을 맡고 있었다. 부산독립영화제 상영관으로 활용되기도 했고 ,남포동에 국도극장의 이름으로 위치해 있을 때는 부산영화제 초기 상영관이기도 했다.

"박근혜 블랙리스트 여파 커"

 지난 2014년 세월호 다큐 <다이빙벨> 상영 후 국도예술관 정진아 프로그래머와 안혜룡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다큐 <다이빙벨> 상영 후 국도예술관 정진아 프로그래머와 안혜룡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 국도예술관


정진아 프로그래머는 16일 전화통화에서 "폐관을 결정하는 표면적 이유는 건물주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지만,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블랙리스트로 인해 2015년부터 2년 간 지원을 끊었던 여파가 상당히 컸다"고 말했다.

당시 영진위는 박근혜 정권에 뜻에 따라 독립예술영화관의 지원 사업을 무력화시켰다. 때문에 많은 독립영화관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국도예술관도 2016년 10월 지원이 재개되기까지 고난의 시기였다. 프로그램 수급 등에 어려움이 생겼고 이 과정에서 관객 수도 계속 줄었다는 것이다. 

정 프로그래머는 또 "영진위가 영화의 전당 등에 전용관을 개설한 것도 관객 감소에 영향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10년 이상 영화관을 꾸려왔기에 많은 아쉬움이 있지만 다시 극장을 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어려워 보인다"며 "부산시 등 자치단체의 관심이나 안정적인 공간 확보 등이 전제돼야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부산국도예술관은 독립영화의 부산 거점 극장으로 사랑받았던 곳이다. 관객들의 열기가 뜨거워 독립영화 감독과 배우들이 개봉 후 관객들과의 만남을 위해 필수적으로 찾던 공간이다. '국도예술관의 힘은 관객'이라는 표현은 극장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소성리>로 다큐멘터리 대상을 받은 박배일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참 많은 일을 겪으며 전에 없던 망설임과 두려움이 많아지고 아주 조금씩 우울이 더해지고 있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만큼은 시간이 쌓일수록 커지는 것 같다"면서 "국도는 그 마음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지난 10년 동안 해왔다"고 평가했다.

극장을 찾던 관객들도 "근래에 접한 소식 중에 가장 슬픈 소식"이라거나 "힘이 되어주던 공간인데. 국도의 그 좋았던 관객과의 대화는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여러모로 착잡하다"면서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조광수 감독은 "내가 영화 감독이 될 수 있었던 건 국도의 응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마음을 전했다. 

영진위가 신뢰 줘야

 박근혜 정권 당시 문체부에서 작성한 <다이빙벨> 상영 영화관  지원 배제 등을 적시한 문건

박근혜 정권 당시 문체부에서 작성한 <다이빙벨> 상영 영화관 지원 배제 등을 적시한 문건 ⓒ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국도예술관의 폐관은 취약한 토대 위에서 지탱하고 있는 독립영화관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나름 버텨나가고 있었는데, 내적 요인에 더해 최근 잇따라 드러나고 있는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 후폭풍이 작용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영화진흥이 아닌 독립영화 제약과 제한에 역할을 했던 지난 정권 영진위의 잘못도 적지 않다.

2015년 11월 씨네코드 선재가 문을 닫은 이후 2016년에는 광화문 스펀지하우스가 폐관했다.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도 2016년 장기휴관으로 폐관 수순에 들어가는 듯했으나 지역 독립영화인들의 꾸준한 노력과 강릉시 등의 지원으로 지난해 3월 다시 문을 열며 기사회생했다. 대구 동성아트홀과 대전아트시네마 등도 한동안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고, 여전히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는 곳도 있다.

최근 영진위가 개편되고 정상화되면서 더 이상 독립영화관들이 문을 닫는 일이 없도록 정책적인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 독립영화 진영에서는 '예술영화관 확대가 아닌 회생이나 유지는 방법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자체 지원이 있는 경우에만 독립예술영화관 설립을 지원하는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독립영화 정책 전문가인 인디스페이스 원승환 부관장은 "영진위가 지금까지는 블랙리스트를 실행하면서 어렵게 독립영화관을 꾸려온 사람들을 방치하거나 외면할 뿐 아무런 기대감도 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진위가 새롭게 구성된 만큼 앞으로는 독립예술영화관을 원하는 관객들이나 원하는 지역에서 영진위가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신뢰감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영진위 측은 "최근 한국영화미래설계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 여러 논의를 하고 있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정책적 방향을 결정해 독립예술영화관들에 도움될 수 있는 방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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