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차세대 믿보배 선두주자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의 배우 박정민이 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박정민은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소년 진태로 분했다. ⓒ 이정민


영화 <동주> 이후 박정민은 말 그대로 달렸다. 동주의 벗이자 소신의 청년이었던 몽규 역을 맡고 그는 "제가 그 분의 삶을 제대로 표현한 건지 잘 모르겠다"며 시사회 장에서 눈물을 보였다. 한 영화의 캐릭터를 연기한 게 아닌 실재했던 한 사람의 삶을 이 배우는 오롯이 껴안으려 했다.

그렇게 작품과 인물을 대하던 그가 근 2년 간 영화만 다섯 작품을 더했다. 올해 선보일 예정인 작품도 세 작품이나 된다. 오는 17일 개봉을 예고한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이 그 시작이다. 해당 작품에서 박정민은 자폐 증상의 일종인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피아노 천재 진태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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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가 캐릭터인지라 대사는 극히 적었다. 상대방의 질문에 진태는 무조건 "네!"라고 답하거나 가끔 간단한 단어 정도를 내뱉는 수준. 대사의 양이 적다고 절대 쉽진 않았을 터. 박정민은 "진태와 같은 분들이 말하는 '예쓰'는 긍정만의 예쓰가 아니라 상대의 말이 듣기 싫거나 상황을 회피할 때를 뜻하기도 한다"며 "몸과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했고, 그 '네'라는 말의 톤과 호흡이 다 달라야 했다"고 말했다.

낯선 자극에 민감해 하는 장애지만 그는 갑자기 함께 살게 된 배다른 형제 조하(이병헌)에게 마음을 서서히 여는 인물. 가까이에는 류승룡, 멀게는 신현준 등 내로라하는 선배 배우들이 비슷한 캐릭터를 맡았다지만 박정민은 "선배들의 좋은 연기를 일부러 신경쓰려 했다면 더 어색했을 것"이라며 "그저 진태에 집중하려 했다"고 밝혔다. 이와 별개로 박정민은 촬영 직전까지 한 복지시설을 찾아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학생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자처했다. 일주일에 하루, 4개월 간 그는 해당 시설에서 봉사했다.

"(선배들 연기는) 물론 무의식적으로라도 떠올렸겠지만 오히려 참고하지 않으려 했다. <말아톤> 등 제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인데 이걸 다시 본다면 제가 오히려 애써 피해가려 할 것 같아서였다. 어차피 고민의 결과물은 비슷할 것인데 '이건 류승룡 선배가 했고, 이건 더스틴 호프만(영화 <레인맨>에서 자폐 연기를 함-기자 주)이 했으니 피해야지' 이러면 더 수렁에 빠질 것 같았다. 그냥 장애인 분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 특징을 표현하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봉사활동 이야기는 원래 공개 안 하려 했다. 기본적으로 낯선 사람에게 거부감이 있는 분들인데 제 욕심으로 그 분들을 불편하게 하는 게 안 좋은 것 같아서 처음엔 안 하는 게 맞지 않나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 분들을 관찰하려고 가는 게 아니기에 조심스럽게 문의 드렸다. 전 이런 사람이고 이런 마음으로 봉사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근데 너무도 흔쾌히 그리고 좋아하시더라. 일손이 매우 부족한 상태였는데 저보다도 선생님들이 더 열심히 시나리오를 읽어주시고 그랬다. 학생분들 역시 제게 마음을 열어주셔서 친구가 된 것 같았는데 이걸 하나의 홍보수단으로 쓰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선생님들께 물었더니 오히려 '말씀해주시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이렇게 얘기하게 됐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관련 사진.

전직 복싱 챔피언 조하(이병헌)와 진태의 호흡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 CJ엔터테인먼트



숨은 노력들

장애 연기와 함께 그에게 큰 과제였던 것이 피아노 연주다. 극중 쇼팽 등의 클래식 곡을 훌륭히 소화하는 진태이기에 박정민은 선택해야 했다. 연출을 맡은 최성현 감독이 이왕이면 모든 곡의 손동작을 직접 해줬으면 했고, 그 역시 동의했다. 생전 피아노를 쳐 본 일이 없던 그를 두고 배우 이병헌과 제작사 쪽에선 "박정민을 위해서라도 일부 CG나 대역을 쓰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을 정도로 이 부분은 피땀 어린 연습이 필요했다.

"정말 이번 작품에 영혼을 쏟아 부었다(웃음). 이병헌 선배가 현장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몰래 노트에 받아 적기도 했다. 피아노 연주는, 첫 미팅 때 감독님께서 이왕이면 다 연주할 것을 원하셨고, 저도 감독님이 그리 말씀할 정도면 연습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하겠다고 한 것이다. 미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바로 학원에 등록했는데 한 달 정도 연습하다 보니 정말 힘들더라!

제작자께서 CG 얘길 해주셔서 감사했다(웃음). 그런데 마침 <라라랜드>가 나왔을 때고, 라이언 고슬링이 그걸 또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욕심도 생겼다. 감독님이 혹시 몰라 대역을 준비하신다고 했는데 촬영을 시작하고 처음 친 곡이 너무 연습이 잘 돼서 제대로 나왔더라. 한지민 누나랑 함께 헝가리 무곡을 치는 장면이었는데 너무 잘 나와서 쭉 대역 없이 하게 됐다."

하루에 6시간 씩 총 6개월을 연습한 보람이 있었던 걸까. 언론 시사회에서 공개된 그의 피아노 연주는 <라라랜드> 못지 않았다. "저도 영화를 보고 나서 잘한 선택이었다고 느꼈다"고 그가 덧붙였다.



이유 있는 불안감

영화 <파수꾼>으로 데뷔한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박정민은 자신에게 엄격하다. "자기 학대가 좀 심한 편"이라 말할 정도로 그는 잘한 부분 보단 못한 부분에 집중해 스스로를 질책하며 연기하곤 했다. 어쩌면 이 태도가 그의 동력이지 않을까. 작품 출연을 위해 오디션을 전전할 때도, 제법 작품 제안이 들어오는 최근에도 그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제가 봐도 나태해지면 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타입"이라며 그가 말을 이었다.

"지금 이렇게 작품을 할 수 있는 게 <동주>가 제게 준 선물 같은데 이게 거품일까 봐 불안했다. 원랜 2018년엔 좀 쉬려고도 생각했다. 근데 한편으론 쉬면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지금 영화 <사바하> 촬영 중인데 현장에서 즐겁게 일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쉬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준익 감독님이 현장을 즐길 수 있게 도움을 주셨다. 연기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하기 보단 말 그대로 즐겁게 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긴 것 같다. 절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사람들의 칭찬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항상 '안심하지 마. 언젠간 들켜!'라고 말한다. 이건 제 삶의 방식이다. 안심하면 안주해 버리거든. 그냥 놔 버리는 경향이 있다. 공부할 때도 그랬다. 시험을 보면 점수가 잘나오는 편이었는데도 그중 제일 못한 과목을 떠올리면서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다시 <동주>로 돌아갔다. 그 눈물의 정체를 두고 박정민은 "죄송한 마음이 들어 울었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가상의 인물이긴 하지만 진태는 또한 어땠을까.

"편집돼서 없어진 장면인데 진태가 집에 홀로 덩그러니 남아 방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신이 있었다. 전 그냥 진태로서 연주하면 되는 거였는데 어느 순간 제가 진태를 바라보고 있더라. 감정이 너무 복받쳐서 많이 울었다. 마치 유체이탈 한 것처럼 몇 번을 그렇게 진태를 바라보다가 감정을 눌러야 했다."

이게 박정민이 캐릭터를 껴안는 방식이다. 왜 자신이 연기하고 있는지,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넘치는지 두드려 가며 어느새 그 인물이 돼 있는 경험. 그리고 그것을 바라볼 줄 아는 배우. 앞으로 공개될 <염력> <변산> 그리고 <사바하>에서의 그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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