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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지팡이협동조합 선묘스님이 메주를 뭉그러지지 않게 눕히고 있다.
 쌍지팡이협동조합 선묘스님이 메주를 뭉그러지지 않게 눕히고 있다.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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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를 하고 들일이 끝나면 안살림이 분주해진다. 무엇보다도 추녀 아래 메주를 달아놔야 그제서야 한해가 갈무리된다. 장독대의 장(간장·된장)은 없어서는 안될 식량이니 올 한 해 장이 줄어든 만큼 내년에 채워놔야 매사가 순조롭다. 그게 살림이다.

지난 18일(음력 11월 1일), 충남 예산군 광시면 대리에 있는 마을기업 쌍지팡이협동조합에서 메주를 쑤고 사과 조청을 달이는 날이다.

쌍지팡이협동조합은 쌍지암(주지 선묘스님)을 중심으로 주민 28명이 함께 결성한, 제대로 여문 마을기업이다. 2016년 마을기업 1차사업 지원대상으로 지정된 이후 된장, 고추장, 사과·생강 조청을 만들어 도시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이날부터 며칠동안 쑤는 메주양은 종콩 2톤(2000㎏)이나 된다. 콩은 가덕·시목·대리 등 주변마을에서 주민들이 직접 농사지은 것을 실어왔다.

한평생 장 담가온 어머니들, '기술' 들어간다

어머니들이 능숙한 솜씨로 콩을 일고 있다.
 어머니들이 능숙한 솜씨로 콩을 일고 있다.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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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인 마을 어머니들이 조를 짜서 협동조합 창고가 있는 쌍지암으로 올라온다. 이날은 신순옥, 김인희, 유복순, 윤석순 어머니 차례다. 모두 칠순을 넘겼다는데 마음은 늘 새댁이다.

어머니는 하룻저녁 충분히 불린 종콩을 '훨훨' 일어서 물기를 빼고 가마솥으로 퍼나른다. 한 번에 열말은 삼킬 것 같은 육철솥안으로 몸을 불린 콩이 얌전히 자리를 잡는다.

이제 불을 때야 하는데 다행히 연료는 가스다. 예전엔 콩깍지와 콩대로 콩을 삶았다. 본디 한몸이었던 것들이어서 솥안에 든 콩은 불을 지피는 콩깍지를 원망할 수도 없고, 솥안에 들은 것의 정체를 아는지 모르는지 콩대는 '타닥타닥' 잘도 탔다.

콩은 그냥 삶으면 되는 게 아니다. 여차해 솥바닥에 눌어 붙기라도 하면 탄내가 나서 메주를 쑬 수 없다. 소밥으로 줘야 하니 그야말로 소가 웃을 일이다. 끓는 소리와 김이 나오는 양을 봐가며 적당한 때 젖혀줘야 하고 제시간에 뜸을 들여야 콩이 너무 무르지도 설지도 않고 적당히 삶아진다. 여기서부터 한평생 집장을 담가본 어머니들의 기술이 들어간다.

가마솥 뚜껑을 열자 구수한 콩익는 냄새가 퍼진다.
 가마솥 뚜껑을 열자 구수한 콩익는 냄새가 퍼진다.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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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견하지 않아도 손발이 맞아 일이 척척 진행된다. 젊은이도 들기 어려운 무쇠솥 뚜껑은 힘에 부치지 않을까 했지만 "아이구, 아이구 이제 늙었다" 하면서도 요령껏 들고 옮긴다.

메주를 빚기 위해선 삶은 콩을 나무 절구통에 넣고 빻아야 하는데 이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절구통 대신 방앗간에서 공수해 온 떡빼는 기계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메주는 시어머니, 며느리가 빚어놓은 모양이 다르고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 메주까지 같은 게 없다. 이렇게 집집마다 메주모양부터 다르니 집집마다 장맛도 달라지는 게 아닐까.

쌍지팡이협동조합에서는 똑같은 장맛을 내고 일을 거볍게 하기 위해 나무로 메주틀을 만들어 쓰고 있다.

메주를 다 만들었으면 우선 형태가 뭉그러지지 않게 지푸라기를 깔고 가만히 눕혀 말려야 한다.

제값 받아도 걱정 없다는 사람들

쌍지팡이협동조합 선묘스님이 메주를 들고 활짝 웃고있다.
 쌍지팡이협동조합 선묘스님이 메주를 들고 활짝 웃고있다.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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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묘스님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잘 건조되고 있는 메주를 젖혀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바닥에 까는 지푸라기 하나도 아무거나 쓰지 않아요. 황새농법으로 친환경농사를 지은 윤권식씨네 논에서 가져온 거예요. 이 메주 덩어리들 좀 봐요, 얼마나 이쁜가. 얘들만 쳐다보면 힘든 줄도 몰라요."

메주덩이가 만들어 지는 동안 부엌에서는 달콤한 냄새가 '살랑살랑' 새나온다. 이건 어렸을 적 '회를 동하게 만들'었던 엿고는 냄새렸다. 부엌 한 켠에 윤석순 어머니가 뚜껑을 열어젖힌 솥앞에 국자를 들고 보초를 서고 있다.

쌍지팡이협동조합의 주상품 중 하나인 사과 조청을 달이는 중이다. 어머니는 국자로 조청을 떠서 솥위로 들어올려 '주루룩' 떨어뜨려 보더니 "아직 멀었지유" 한다. 당신이 제일 잘알면서도 자꾸만 묻는다.

"이건 한시라도 자리를 뜨면 안 돼유. 바닥이 타 버리면 공염불이 되니깐."

사과 조청을 달이는데 제대로 되고 있는 지한 국자 퍼서 ‘주루룩’ 떨어뜨려 본다.
 사과 조청을 달이는데 제대로 되고 있는 지한 국자 퍼서 ‘주루룩’ 떨어뜨려 본다.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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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좋은 재료만으로 내는 게 아니다. 거기에 정성이 더해져야 비로소 깊은 맛이 살아난다.

쌍지팡이협동조합은 최고의 재료와 정성을 보태 장은 담고 조청을 달여 소비자에게도 당당히 제값을 요구한다. 그것이 도시소비자들과 쌍지암을 찾는 신도들의 입소문을 타고 퍼져 판매 걱정은 안 한단다.

메주가 잘 마르면 추녀 아래 매달려 넉넉한 풍경이 돼야 한다. 며칠동안 편안히 누워 몸을 굳힌 메주는 순순히 지푸라기 오라를 받는다. 그리고 추녀 밑에 가지런히 매달려 한 달이 넘도록 북풍한설에 몸서리를 친다. 밤이면 별빛에 달뜨다가, 고요한 아침볕을 받으며 어머니의 주름살처럼 깊어져 꽃이 필 자리를 만든다.

할 일은 해를 넘기고도 끝나지 않는다. 깊은 장맛을 내려면 구들방에서 메주를 잘 띄워야 한다. 이건 사람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구들장의 온기로, 부정타지 않은 방안의 공기로, 그리고 어머니들의 조바심으로 메주덩어리들은 하얗고 파란 꽃을 피운다. 그리고 따스한 햇살이 장독대를 기웃대는 춘삼월(음력 2월) 말날, 메주덩이들은 항아리안 소금물에 담겨 몸을 푼다.

그 메주덩이 하나하나에 시골어머니들의 손맛과 스님의 불심까지 담았으니 장맛은 말할 필요도 없다.

쌍지팡이협동조합의 내년 장 가르는 날이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태그:#메주, #조청, #마을기업, #쌍지팡이협동조합,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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