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방송된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손정은 아나운서가 KBS 앞에서 멘트를 하고 있다.

19일 방송된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손정은 아나운서가 KBS 앞에서 멘트를 하고 있다. ⓒ MBC


#장면 하나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정현 의원(무소속, 전남순천)이 19일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누구든지 방송 편성에 관하여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는 내용의 방송법 제4조를 어긴 혐의로 이 의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앞서 세월호 특조위는 지난해 6월 '이 의원이 2014년 4월 재직 당시 세월호 참사 관련 KBS 보도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압력을 가했다'며 고발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와 관련,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의원을 방송법 위반으로 기소한 건 검찰이 남긴 좋은 선례"라면서 "앞으로 이 정권 중반기를 넘기면 방송법 뿐만 아니라 강압적인 언론 왜곡을 시도한 유사 사건들이 봇물처럼 폭로될 것이다,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올리며 문재인 정부를 압박했다. 이 의원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한창이던 2016년 하반기,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바 있다. 

#장면 둘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포함한 원내 지도부 의원 12명은 20일 방송통신위원회(아래 방통위)를 항의 방문했다. 복수의 보도에 따르면, 김성태 원내대표는 방통위가 강규형 KBS 이사에 대한 해임 절차에 돌입한 것에 대해 "인민재판식 언론장악"이라고 못박았다.

또 김 대표는 "방통위가 언론을 장악하는 정부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현실에 대해 묵과할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자유한국당이 KBS와 MBC 파업과 관련해 이효성 위원장 체제의 방통위를 항의 방문한 것은 두 번째다. 지난 10월 당시 정우택 원내대표는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보궐 이사 선임 과정에 여당 성향 인사를 의결한 것에 반발하며 국감 보이콧까지 선언한 바 있다.

#장면 셋
KBS가 MBC < PD수첩 > 촬영에 협조한 KBS 새노조 조합원을 인사위원회에 회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9일 MBC < PD수첩 > 제작진은 KBS 정기 이사회 현장과 새노조의 사내 시위 현장을 취재했고, 이 과정에서 새노조 집행부는 < PD수첩 > 제작진의 취재 협조 요청에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KBS 새노조에 따르면, KBS 경영진은 새노조 집행부 2명을 포함한 3명의 조합원을 인사위에 회부했다. 취업규칙, 인사규정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새노조는 성명을 내고 "<PD수첩> 취재 협조는 정당한 쟁의행위"라며 "언론이 공인을, 그것도 KBS 방송 파업 사태에 책임이 있는 장본인들을 상대로 인터뷰하는 것이 뭐가 문제란 말인가"라고 밝혔다.

20일로 파업 108일째를 맞은 KBS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를 둘러싼 세 가지 장면이 이를 입증한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언론 장악의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세월호 참사' 보도를 막으려 당시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압박했던 이정현 전 홍보수석은 재판을 받게 됐다. 최근 KBS 불우이웃 모금 생방송에 출연해 "파업 그만하라"며 돌발 발언을 한 홍준표 대표는 과거 새누리당의 당대표 출신인 이정현 의원을 감싸기에 바빴다.

취임 직후 방통위를 항의 방문한 김성태 원내대표의 행보도 과거 새누리당과 현 자유한국당의 DNA를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는 방증과도 같다. 최승호 신임 사장 취임 이후 급격하게 '정상화 사인'을 내보내고 있는 MBC의 사수(?)는 물 건너갔으니, 이제 망가진 KBS라도 지켜내야겠다는 시위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KBS 경영진의 노조원 징계는 한 편의 블랙코미디에 가까워 보인다. 정상화되고 있는 '새' MBC의 '첫' < PD수첩 >이 지난 12일 'MBC 몰락, 7년의 기록'을 통해 자사의 몰락 과정을 되돌아본데 이어 다음으로 겨냥한 것이 바로 여전히 파업 중인 공영방송 KBS였고, 이들의 취재에 응한 KBS 노조원들을 KBS 경영진이 문제 삼은 것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이럴 때를 위해 존재하는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예고편부터 화제를 모았던 바, 19일 방송된 < PD수첩 > '방송장악 10년, KBS지키러 왔습니다?' 편은 고대영 사장과 현 경영진과 이사진은 물론 전임인 김인규 사장까지 불편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 PD수첩 >은 KBS 몰락의 주범들이자 '악당'들로 그들을 지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과 김인규

 19일 방송된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손정은 아나운서가 KBS 앞에서 멘트를 하고 있다. 전두환 정권 출범 1주년 소식을 알리는 김인규 전 사장의 당시 리포트 모습.

19일 방송된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손정은 아나운서가 KBS 앞에서 멘트를 하고 있다. 전두환 정권 출범 1주년 소식을 알리는 김인규 전 사장의 당시 리포트 모습. ⓒ MBC


 19일 방송된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KBS 4대강 홍보 방송에 출연했던 MB.

19일 방송된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KBS 4대강 홍보 방송에 출연했던 MB. ⓒ MBC


"(기자) 1년 차 때 겪었던 일들이 9년 차가 된 지금까지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공영방송이 지난 9년 동안 제자리에 있었다, 여전히 불신의 대상이라는 것을…(보여주는 상황이죠)."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봉하마을에서 한 시민에게 뺨을 맞기도 했다는 KBS 정연욱 기자. 그는 9년이 지난 뒤 촛불 집회에서 쫓겨나고 비난받은 KBS의 현재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그리고 KBS 몰락의 시작도 역시 MB였다. < PD수첩 >은 KBS의 몰락을 MB의 대통령 후보 시절 언론특보이자 그 유명한 '국밥 광고'를 기획한, KBS 공채 1기 출신이자 그 유명한 '전두환 땡전뉴스'의 충실한 전달자였던 김인규 전 사장의 취임 이후라고 적시했다.

지상파의, 방송의 힘이 거기에 있다. 이미 관심 있는 시청자들은 사실 관계를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는 사안일지라도 다시 한 번 짜임새 있게 정리하고 영상을 덧붙이면 그 파급력은 극대화된다.

이날 'KBS편'은 MBC의 몰락과 자성을 담은 < PD수첩 >판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공범자들'편을 내보냈던 지난주의 논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고민하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한탄과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이날 < PD수첩 >이 '용산참사'를 첫머리에 올린 것은 달라진 MBC의 진정성을 짐작하게 해줬다.  

"저희가 제일 안 보는 방송, 유일하게 안 보는 방송은 KBS거든요. 그때(2009년) 그 이후로. 지금 KBS가 그러잖아요, '국민의 방송, 공정한 방송'. 뭐가 공정합니까(중략). KBS 보도를 볼 때, (보도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이런 고통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몰라요."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 당시 남편 고 양회성씨를 잃은 부인 김영덕씨는 KBS의 왜곡보도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KBS는 용산참사의 진실은커녕 단순보도도 완벽히 외면한 채 당시 일어난 '강호순 사건'에 '올인'했다. < PD수첩 >은 이러한 보도참사 뒤에 역시 이명박 정부 청와대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적시했다.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경찰청에 내려 보낸 용산참사와 촛불시위 관련 '프레임 전환' 내용을 담은 메일이 드러났고, KBS는 이러한 청와대의 지시에 아주 충실하게 화답했던 것이다. 이렇게 용산참사를 시작으로 KBS는 급격히, 완벽히 몰락했다. 특히나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다음날, 관련 보도는 외면한 채 녹차 관련 다큐멘터리 < KBS 스페셜 >을 내보낸 것이 대표적이었다.  

고대영과 강규형

 19일 방송된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왼편이 고대영 사장.

19일 방송된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왼편이 고대영 사장. ⓒ MBC


 19일 방송된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강규형 이시가 인터뷰 중이다.

19일 방송된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강규형 이시가 인터뷰 중이다. ⓒ MBC


"4대강 비판에는 재갈을 물린 KBS가 4대강 홍보에는 열을 올렸다."


<추적 60분>을 비롯해 4대강 보도를 그렇게나 막았던 KBS. < PD수첩 >은 이에 대해 손정은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통해 MB 정부 시절 KBS를 위와 같은 한 마디로 정리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정부 시절 G20 관련 프로그램이 총 60편, 3000여 분에 달했다고 전했다. 2011년 한선교 의원이 민주당의 비공개 회의 내용을 폭로하면서 촉발된 '민주당 도청 논란' 당시에도 'KBS 기자가 회의 내용을 도청해 한 의원에게 넘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KBS 기자를 무혐의 처리했지만, 이는 KBS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건 중 하나가 됐다.

김인규 사장의 KBS는 그렇게 이명박 정권의 홍보 도구로 전락했다. 지난 6월, 경기대 총장으로 취임한 김인규 전 사장. 그는 < PD수첩 >의 카메라 앞에서 "지금 학교 일이 하도 복잡해서 (KBS는) 쳐다보지도 못한다"며 "지금 말하고 싶지 않다"고 인터뷰를 거절했다. 언제나 그렇듯, 처벌받지 않은 '성공한 권력'은 말을 아끼는 법이다.

김인규 전 사장의 DNA를 철저히 계승한 것이 바로 현 고대영 사장이었다. 그는 용산참사와 고 노무현 서거 정국에서 보도국장을 지냈고, KBS 도청사건 당시 보도본부장을 지냈다. 정연주 전 사장을 몰아내려는 내부 움직임을 주도했던 '수요회'를 이끌었던 고대영 사장.

이명박 정권과 함께 무사히 임기를 마친 김인규 전 사장에 이어 고대영 사장이 취임하면서 정권의 나팔수였던 KBS는 신뢰성과 공정성 면에서 바닥까지 추락했고, MBC와 다를 바 없는 길을 걸었다. 이 KBS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KBS 이사진의 면면이다.

"아니, 뭐 나 죽이려고 아주 바쁘셔. 내가 한마디만 해. 너희들 나 못 넘어뜨려. 너희들이 날 어떻게 넘어뜨려? 근데 여기서 끝나면 내가 봐주고 여기서 하나만 더 나가면 그때는 너 죽고 나 죽고야."

KBS 강규형 이사가 업무추진비를 사적으로 유용한 사실을 제보한 사람과 통화하면서 남긴 말이다. KBS 법인카드로 회식비를 내고, 애완견과 관련해 돈을 쓰는 등 강규형 이사는 이러한 비위사실로 인해 사퇴 요구를 받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KBS 이사진은 최근 감사원의 감사 결과 KBS 이사진은 업무추진비로 8500여만 원을 사적으로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도, 역사관 논란으로 끊임없이 파장을 일으켜온 이인호 이사 등 KBS 이사진은 KBS 안팎에서 "감시받지 않는 권력"이라 비판 받아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코드를 맞춘 김인규-고대영 체제가 정권의 입맛에 맞는 '국영방송'으로 전락시킨 KBS의 현주소가 이렇게 참담하다.

이밖에도 다큐 <뿌리 깊은 미래>나 <훈장>과 관련된 징계와 방송 파행 논란, 블랙리스트와 노조 탄압을 비롯한 언론자유 침해 등 < PD수첩 >이 짚은 KBS 10년의 몰락사는 MBC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를 두고 KBS 새노조 위원장인 성재호 기자는 이렇게 진단했다.

"KBS는 그 태생부터 지금까지 사실 권력에 매우 취약한 그런 어떤 전통, DAN 같은 게 있어요. 여전히 그 DNA는 바뀌지 않았다고 봐요. KBS의 DAN를 바꾸는 그 시작, 그 싸움의 시작은 저는 지금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KBS 구성원들의 다짐



 19일 방송된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19일 방송된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 MBC


"많은 분들이 저희가 파업한다고 했을 때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이명박근혜 세월 9년 동안 뭐하다가 이제 와서 촛불시민들의 승리, 그것에 무임승차하려고 하느냐. 네 부끄럽습니다."

MBC < PD수첩 >은 릴레이 시위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은 박대기 기자를 비롯해 KBS 구성원들의 자성의 목소리를 담았다. 그에 앞서 전현직 KBS 기자와 PD들의 증언과 반성을 내보냈다. 역시나 지난주 'MBC 편'과 동일한 구성이다.

그 KBS 구성원들이 MBC의 정상화를 부러워한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그 MBC는 < PD수첩 >과 < MBC 스페셜 >을 통해 자성의 목소리를 냈고, 오는 26일 달라진 <뉴스데스크>를 통해 '새출발'을 예고하고 있다. 배현진 앵커가 하차한 < MBC 뉴스 >의 시청률은 올랐고, 신동호 국장이 진행하던 <100분 토론>은 물론 <시사매거진 2580> 등 예전 MBC의 간판 시사프로그램도 새단장을 시작 중이란 소식이다.

MBC든, KBS든, 구성원들에 대한 질타가 이어질 순 있다. 그에 앞서 김인규-고대영 사장과 이사진을 비롯해 경영진들의 위법과 불법 사안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부끄럽다"고 참회하고 "국민의 방송이 되겠다"던 노조원들의, KBS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우리는 지난 9년간 망가진 공영방송이 얼마나 한국사회를 좀먹는지, 사회 전체를 망가뜨리는데 일조하는지 고통스럽게 경험하지 않았던가. 더욱이 자유한국당을 위시해 '고대영의 KBS'를 사수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수구·극우 세력들의 저항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2주간 양대 공영방송의 몰락사를 다룬 '새' MBC의 '첫' < PD수첩 >을 좀 더 많은 이들이 시청해야 할 이유도 거기에 있다.

 19일 방송된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19일 방송된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 MBC



PD수첩 M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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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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