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1000만 관객은 국내 영화 시장에서 작품이 성공적으로 흥행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하나의 지표로 이용되어 왔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이후로는 매년 1000만이라는 숫자에 근접한 작품들이 있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호황이었던 2014년과 2015년에는 각각 <명량>(약 1700만 명), <겨울왕국>(약 1020만 명), <인터스텔라>(약 1010만 명)와 <베테랑>(약 1340만 명), <암살>(1270만 명), <어벤저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1050만 명)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2016년 처음으로 전체 관람객 수가 하향세로 돌아서면서 우려의 시선이 있었지만, 올해도 여전히 <택시 운전사>라는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으며 그 기대를 충족시켰다. 높은 곳이 있다면 낮은 곳도 있는 법. 충분히 좋은 작품이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관객들과의 접점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거나, 예상보다 빨리 스크린을 떠나야만 했던 작품들도 있다. 지면상의 이유로 모두 다루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그중에서도 10편을 엄선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01. <컨택트(Arrival)>

2017년 2월 2일 개봉 / 116분 / 미국 / 12세 관람가
감독 : 드니 빌뇌브 / 출연 : 에이미 아담스, 제레미 레너
관객 수 : 약 63만4000명

 영화 <컨택트> 스틸컷

영화 <컨택트> 스틸컷 ⓒ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


국내에서는 <컨택트>라는 타이틀로 개봉했지만, 정식 명칭은 < Arrival >이다. <그을린 사랑>,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 등의 작품으로 뛰어난 연출력을 인정받고 있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작품.

영화는 테드 창의 원작 소설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외계 생명체와 그들이 보내는 신호인 햅타포드어를 해독해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본적으로 SF 장르를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누군가의 언어를 이해하고자 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한다면 드라마적 요소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겁고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영화.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02. <로건(Logan)>

2017년 3월 1일 / 137분 / 미국 / 청소년 관람 불가
감독 : 제임스 맨골드 / 출연 : 휴 잭맨, 다프네 킨, 패트릭 스튜어트
관객 수 : 약 216만 명

 영화 <로건> 스틸컷

영화 <로건>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관객 수로만 따지자면 이 기사에 선정되는 것이 다소 의문스러울 수도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휴 잭맨이 마지막으로 연기했던 울버린이었던 작품으로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인간적이었던 이 작품을 돌아보면, 마지막으로 그가 선물하고자 했던 것은 한 소녀의 생명이 아닌 감정이라는 이름의 인간성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함께한 시리즈의 시간을 생각하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결말이지만, 다음 세대가 이어나가게 될 미래를 향한 희망을 놓지 않는 모습마저 짙은 감동을 남긴다.

반복되는 히어로물이 자가침식 하는 듯한 아쉬움을 느끼던 순간 만난 새로운 모습의 히어로 영화. 전작들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더욱 즐거울 수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작품.

03.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2017년 3월 23일 개봉 / 127분 / 미국 / 12세 관람가
감독 : 데오도르 멜피 / 출연 : 옥타비아 스펜서, 타라지 P. 헨슨, 자넬 모네, 케빈 코스트너
관객 수 : 약 44만9000명

 영화 <히든 피겨스> 스틸컷

영화 <히든 피겨스> 스틸컷 ⓒ 20세기폭스코리아


실존 인물인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의 경험을 바탕으로 NASA에서 근무했던 흑인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과 편견, 그리고 멸시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단순히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별적 문제들을 아우르고 있다. 이 작품으로 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된 옥타비아 스펜서의 주도적이고 꿋꿋한 모습은 큰 감동을 남긴다.

퍼렐 윌리엄스와 한스 짐머가 함께한 OST도 이 영화에 풍성함을 더한다. 겨우내 앙상하던 가지에서 수많은 색망울들이 터져 나와 피어나는 순간을 지켜볼 수 있는 작품이다.

04. <행복 목욕탕(Her love boils bathwater)>

2017년 3월 23일 개봉 / 125분 / 일본 / 12세 관람가
감독 : 나카노 료타 / 출연 : 미야자와 리에, 스기사키 하나, 오다기리 죠
관객 수 : 약 2만2000명

 영화 <행복 목욕탕> 스틸컷

영화 <행복 목욕탕>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상대적으로 개봉 편수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특유의 따뜻함을 갖고 있는 일본 영화. 올해도 많은 작품들이 개봉했지만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을 아우르는 영화. 어느 작은 요소 하나도 쉬이 흘려보내지 않는 감독의 섬세한 연출은 영화 속 엄마의 모습과도 닮아서 마음 한 곳을 내어줄 수밖에 없게 된다.

조건 없이 사랑을 준다는 것이 무엇인지, 구별 없이 품을 내어줄 줄 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보여주는 주인공. 그녀의 모든 것이 담긴 목욕탕이기에 그곳에 '행복 목욕탕'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에는 조금도 어색함이 없다.

05.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The Merciless)>

2017년 5월 17일 개봉 / 120분 / 한국 / 청소년 관람 불가
감독 : 변성현 / 출연 : 설경구, 임시완, 김희원, 전혜진
관객 수 : 93만7000명

 영화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컷

영화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영화의 첫 장면부터 과감하게 치고 들어오는 간결한 연출이 인상적인 작품.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두 가지 이상의 이야기를 교차시켜 진행해나가지만 상당히 매끄럽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고, 그 이야기가 고르게 잘 표현되고 있다는 것 역시 장점이다. 범죄조직, 교도소, 복수, 배신 등이 주된 소재이지만 기존에 존재하는 동일한 장르의 흐름을 과감하게 탈피했다. 또한 인물들이 갖고 있는 심리를 짜임새 있게 설명함으로써 소재가 같더라도 이야기는 충분히 다양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배우 설경구 앞에서도 전혀 어설프지 않았던 임시완이라는 배우의 앞날이 기대되는 영화. 제70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작.

06. <델타 보이즈(Delta Boys)>

2017년 6월 8일 개봉 / 120분 / 한국 / 15세 관람가
감독 : 고봉수 / 출연 : 백승환, 신민재, 김충길, 이웅빈, 윤지혜
관객 수 : 약 4200명

 영화 <델타 보이즈> 스틸컷

영화 <델타 보이즈> 스틸컷 ⓒ 인디스토리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 알려진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250만 원의 예산. 9회차 촬영. 주연 배우들의 전체 출연료 0원. 사전 대본 없음. 제아무리 다양성 영화라고는 하지만 2시간짜리 장편 영화 한 편을 채울 수 있을 거라고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고봉수 감독은 이 작품으로 2016년 전주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공동대상을 수상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철없는 어른들이 세상의 잣대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꿈을 완성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그려낸 작품.

이 영화 <델타 보이즈>는 마지막 장면에서 결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차오르는 무언가를 선사한다. 전국에서 28개의 스크린밖에 확보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잊히기엔 아쉬움이 있는 작품이다. 'You Know 제리코?'

07. <내 사랑(Maudie)>

2017년 7월 12일 개봉 / 115분 / 아일랜드, 캐나다 / 12세 관람가
감독 : 에이슬링 월쉬 / 출연 : 에단 호크, 샐리 호킨스
관객 수 : 약 33만5000명

 영화 <내 사랑> 스틸컷

영화 <내 사랑> 스틸컷 ⓒ 오드


나이브 장르의 화가로 명성을 얻은 실존 인물 모드 루이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에이슬링 월쉬 감독이 10년이라는 시간을 쏟아 완성한 작품에 연기로는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두 배우, 에단 호크와 샐리 호킨스가 함께한 영화.

감동적인 이야기는 물론 두 배우의 매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자신이 그린 작품이 대도시에서 얼마에 팔리는지는 알지도 못하면서 5달러 받기로 한 작품을 6달러로 올려 받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서로를 바라보며 티 없는 행복을 나누는 두 사람. 그들의 모습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관객의 마음을 떨리게 만든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라고 말하기에는 어떤 처연함과 같은 감정까지도 스며드는 노을과도 같은 영화.

08. <더 테이블(The Table)>

2017년 8월 24일 개봉 / 70분 / 한국 / 12세 관람가
감독 : 김종관 / 출연 : 정유미, 한예리, 정은채, 임수정, 연우진, 정준원, 전성우, 김혜옥
관객 수 : 10만3000명

 영화 <더 테이블> 스틸컷

영화 <더 테이블> 스틸컷 ⓒ 엣나인필름


2016년 <최악의 하루>로 두각을 드러냈던 김종관 감독의 작품. 하나의 카페, 하나의 테이블에 하루 동안 머물다 간 네 인연의 이야기를 비추는 콘셉트의 영화다.

각각의 이야기가 모두 다르면서도 어떤 지점에서는 묘한 연결성을 가지며 다른 듯 다르지 않은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상영시간이 70분이라 최근 개봉한 작품들의 러닝 타임에 비하면 다소 짧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안에 가득 채워진 섬세한 표현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 모두를 놓치고 싶지 않게 되는 영화.

09. <몬스터 콜(A Monster Calls)>

2017년 9월 14일 개봉 / 108분 / 미국 외 / 12세 관람가
감독 :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 출연 : 루이스 맥더겔, 시고니 위버, 펠리시티 존스, 리암 니슨(목소리)
관객 수 : 약 8만8000명

 영화 <몬스터콜> 스틸컷

영화 <몬스터콜>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길예르모 델 토로,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뒤를 이어 멕시코를 대표할 차기 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는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 <몬스터 콜>은 바요나 감독이 만든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다.

나무를 닮은 몬스터를 만난 12살 소년 주인공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힘을 성장시켜 나가는 내용의 영화다. 일반적인 성장영화의 구조와는 조금 다르다. 현실이라는 것이 꿈을 꾸는 것처럼 드라마틱하지는 않더라도, 삶 속에서 또 다른 사랑이 피어날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가르쳐주는 작품이다.

'소년이라기에는 너무 늙었고 어른이라기에는 너무 어린'이라는 주인공을 설명하는 문장처럼, 그 경계에 있는 어른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선사할 영화.

10. <아이 앰 히스 레저(I am Heath Ledger)>

2017년 10월 19일 개봉 / 91분 / 캐나다 / 12세 관람가
감독 : 아드리안 부이텐후이스, 데릭 머레이 / 출연 : 히스 레저, 나오미 왓츠, 이안
관객 수 : 약 1만8000명

 영화 <아이 앰 히스레저> 스틸컷

영화 <아이 앰 히스레저> 스틸컷 ⓒ 오드


히스 레저라는 배우는 언제나 극 속의 인물로 살았다. 그는 한때 <브로크백 마운틴>의 '델마'였고, 또 <다크나이트>의 '조커'였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연기했던 캐릭터로 기억되고 회자되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의 유명세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 후에도 그랬다.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는 의미가 있다.

<아이 엠 히스레저>는 그가 어떤 배우였는지가 아니라,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정 인물의 사후에 제작되는 다큐멘터리들이 그의 생애 업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이 작품이 다른 지점이다.

히스 레저가 생전에 깊은 교감을 나눴다는 음악가 벤 하퍼는 이렇게 말한다. "애초에 이런 일은 없었어야 해요." 그의 말이 옳다. 그가 세상과 이별한 28살이라는 나이는 가혹할 정도로 어리기 때문이다. 이제는 영상으로밖에 만나볼 수 없는 배우, 아니 사람이기에 마음이 더욱 먹먹해진다.

그 외에도 소개하지 못했지만 2017년 개봉작 중 반짝이는 작품들은 더 많다. 제목으로만 언급해도 <문라이트> <녹터널 애니멀즈> <랜드 오브 마인> <인비저블 게스트> <뉴니스> <어메리칸 허니 : 방황하는 별들> <마더!> <싱글라이더> <박열>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꿈의 제인> <맨체스터 바이 더 씨> <파도가 지나간 자리> 등이 있다.

매해 이맘때가 되면 충분한 매력을 갖고 있음에도 선택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잊히는 작품들에 아쉬운 마음이 가득해진다. 내년에는 조금 더 다양한 영화들이 평등하게, 골고루 사랑받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의 모든 수치 자료는 영화 진흥 위원회 공식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영화 무비 2017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