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북한에 쿠데타가 발생한다면? 매일 일어나는 북한의 도발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지만, 실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이 문제. 영화 <강철비> 우리 일상에 도사리고 있는, 그러나 우리 모두가 잊고 있었던 잠재적 위협이 현실이 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왜 <강철비>인가


영화 제목인 <강철비>는 정우성이 연기한 '엄철우'의 이름이 '쇠 철' 자와 '비 우' 자를 쓰는 데서 나왔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영화의 영어 제목인 'Steel Rain'이 실제로 존재하는 클러스터 형(形) 로켓 탄두의 별칭이다. 이 무기는 살상 반경이 매우 커서 전세계 140여개 국 이상이 사용 금지협약을 맺은 무기라고 밝힌 바 있다.

다시 말해, <강철비>라는 제목 자체가 한반도가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전쟁 혹은 폭력의 위험을 의미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강철비>는 그 자체로 강력한 살상 무기를 의미하는 중의적 의미를 갖고 있다. 북한에서 발생한 쿠데타가 국제적인 분쟁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영화 속 한반도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이게 된다. 미국과 일본까지 군사행동을 개시하고, 언제 핵에 맞아 한반도가 불바다로 변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위기가 턱밑까지 차오른 이 상황에서 두 '철우'는 우연인 듯 운명처럼 서로를 만난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이 두 인물의 이름을 같게 설정했다. 남한과 북한출신, 하나부터 열까지 전혀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이 두 인물은 영화 속에서 우연한 기회를 통해 서로를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한반도의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서로를활용하기에 이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철우'들은 이 과정 속에서 사실 서로가 전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분단국가에 살고 있지만 둘 모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이며, 국수를 좋아하고, 딸이 좋아한다는 GD의 음악을 들어보려 애쓰는 평범한 40대 남자들이었던 것.

영화는 긴장감이 넘치는 상황 속에서도 두 철우가 나누는 감정의 교류를 꽤나 섬세하게 보여주는데, 이러한 상황들이 총탄이 넘나드는 위기 상황과 맞지 않아 아이러니하면서도 동시에 묘한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진다. 때론 진지하고, 때론 코믹하기까지 한 영화 속 두 '철우'의 관계가 분단 그 자체가 아닌 분단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려 하는 자들이 두 철우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비극으로 바꾸어 놓았는지를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벗어날 수 없게만 느껴졌던 위기 상황에서 한반도를 구하는 것은 결국 정부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닌, 두 '철우'들이다. 무기와 핵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는 '철우'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 스스로의 희생을 통해 한반도를 구한다는설정은 영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서 더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또한 영화 종반 위험으로부터 벗어난 한반도가 앞으로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 남북한을 가리지 않고 모두 핵무장에 동참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영화 제목인<강철비>와 두 주인공 '철우'의 이름이 의미심장하게 와 닿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영화 스토리라인 속에서 마지막 몇 분의 장면들이 설득력과 흡입력 있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핵무장이라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가 탄탄한 복선과 스토리라인을 통해 개연성 있게 전달되지는 않다 보니, 영화를 보는 관객입장에서는 마지막 엔딩이 조금 뜬금없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영화 초반 일부 장면을 통해 남한의'철우'가 핵무장에 대해 적극적이고 호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는 설정이 일부 등장하기는 하지만, 감독이 최종적으로 의도한 메시지가 이 지점에 있다면 보다 설득력 있는 연출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어진다.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영화는 중간 중간 '철우'들의 입을 빌려 '분단국가에서 비극은 분단 그 자체가 아닌, 분단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 하는 자들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 그리고 분단을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 하는 북한의 권력자를 끌어내림으로써 한반도에는 다시 평화가 돌아온다. 때문에 영화 중반까지 등장했던 이 메시지에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분단을, 그리고 핵무기를 이용하는 자들은 언제든 어느 세대에든 또다시 나타날 수 있을 텐데, 영화의 엔딩은 그 가능성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양쪽 다 핵으로 무장하는 것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끝을 맺는다. 누군가에게는 열린 결말로, 누군가에게는 아쉬운 결말로 느껴질 수 있는 엔딩이다.


아쉬운 엔딩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여전히 한반도를 구해내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라는 메시지를 견지한다. 이 점에서 양우석 감독의 이번 영화는 정치적인 입장 차이를 막론하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또한, 영화 <강철비> 속 배우들의 열연은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하다. 일견 어색한 북한 사투리를 구사한다고 느껴졌던 배우 정우성은 극 내내 몸을 아끼지 않는 액션 장면을 펼쳐 보인다. 또한, 정우성과 조우진, 두 배우의 열연이 빛을 발하는 액션 장면들은 보는 이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연출하기까지 한다. 배우로서 정우성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또 극 내내 곽도원과 함께 선보이는 묘한 케미는 보는 이들에게 편안함과 유쾌함을 선사하기까지 한다.


이뿐 아니라 김갑수, 김의성, 이경영, 김명곤, 조우진 등 이름만 들어도 엄청난 배우들이 합류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다.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함에도 한정적인 러닝타임 때문에 그들의 연기를 단편적으로만 봐야 한다는 사실은 아쉬운 부분이나, 영화의 상당 부분이 액션으로 채워지는 장르의 영화임을 감안하고 본다면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종류의 액션 블록버스터들이 늘 그렇듯 이렇다 할 여자 배우 캐릭터를 찾아볼 수 없다. 일부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의 역할도 단편적이고 한정적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달랠 수 없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난 14일 개봉한 <강철비>는 이미 개봉 첫 주 162만 관객을 동원하며 순조롭게 첫 스타트를 끊었다. 올겨울 극장가를 뒤덮을 수많은 영화 중 <강철비>만의 매력을 발할 기회가 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