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

영화 <강철비>에서 배우 정우성이 연기한 북한 정예요원은 태생이 현존했던 북한 요원의 모습과는 다소 다르다. ⓒ NEW


첫 장면부터 초췌한 모습이었다. 초점 잃은 눈으로 마약을 거래하던 인민군 정예요원 출신 엄철우(정우성 분)는 고위간부에게 일생일대의 임무를 부여받는다. 쿠데타 세력에 맞서 수령 동지를 지키라는 것. 

이처럼 영화 <강철비>는 남북 긴장 관계라는 실제 우리나라 현실을 배경으로 북한이 체제적 위기에 처했다는 가정을 동력 삼아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정우성은 일종의 끈 떨어진 생계형 인민 중 한 사람이었다.

유리성 같은 믿음

북한 정예 요원과 남한 외교 안보 수석 곽철우(곽도원 분)가 핵폭탄을 두고 벌어지는 전쟁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는 줄거리다. 남북 관계, 인민군과 남한 인사의 이야기는 이미 여러 영화로 나왔기에 배우 입장에선 신선함이 중요했을 것. 정우성 역시 "여태껏 우리가 봐왔던 북한남성과 차별성이 있는 캐릭터였다"며 출연 이유 중 하나를 전했다.

"그간 남북관계를 다룬 영화들이 너무 액션 장르에 고착화된다는 안타까움은 있었다. 그 와중에 엄철우가 다르게 보인 거지. 그는 이미 각성이 준비돼 있는 인물이었다. 유리성 같은 북한 체제를 이미 알고 언제든 그 밖으로 뛰쳐나갈 사람이었지. (정예 요원이었음에도) 말도 안 되는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고, 국민을 굶기는 국가에 대한 충성이 얼마나 모래성 같았을까. 엄철우는 체제에 대한 충성심이 아닌 가족의 생계에 더 치열하게 매달려 있는 사람이었다."

 영화 <강철비>의 한 장면

영화 <강철비>의 한 장면 ⓒ NEW


생계라는 단어에서 예상할 수 있듯 엄철우와 곽철우가 움직이는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엄에겐 불안에 떠는 아내와 딸이, 곽에겐 이혼은 했지만 전처(김지호 분)와 두 자녀가 있다. <강철비>는 두 남성의 우정 내지는 의리를 내세우며 흘러간 여타 남북관계 물과는 다른 결이 있다는 게 정우성의 해석이었다. 

"제가 평소 북한이나 동아시아 정세에 대해 공부했다기보단 양우석 감독님이 엄청 준비하셨다.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시나리오에 다 나와 있으니 배우로서 잘 풀면 되는 거였지. 이 영화를 위해 특별히 자료나 뉴스를 더 보진 않았다. 근대사를 보면 뻔하잖나. 각국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를 대하는 게 다르다는 걸. 자국 이득을 따지지, 한반도를 마치 자기네 국가처럼 생각하는 나라는 없다. 

<강철비>가 어떤 사회적 메시지가 있어 택한 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이 컸고, 나이가 들어 기성세대가 된 입장에서 어떤 영화로 소통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는 중에 이 시나리오가 자연스럽게 제 앞에 온 것이다. 어떤 변화가 제 안에 있었다고 하기보다는 기성세대로서 사회와 호흡할 수 있는 메시지가 중요했다.

분단 상황에 대해 지금은 익숙해지다 못해 무뎌진 면이 있잖나. 실제로 우리가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자각도 못 하고 있고, 북한 뉴스나 북한 사회는 희화화하곤 한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북한 지도자 역시 좀 캐릭터화 돼 있는 것 같다. 저 역시 이 정도 생각을 갖고 참여했다. 그 이상 깊이 들어간 건 아니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영화 <강철비>의 한 장면

영화 <강철비>의 한 장면 ⓒ NEW


올바른 권력

영화 <더 킹>부터 이어진 행보에 관해서는 어떨까. 부당한 권력, 사회 부조리에 대한 강한 비판이 담긴 영화를 택하는 것에 정우성은 "특별히 그걸 노리진 않는다"며 말을 이었다.

"<더 킹> 역시 무모하리만치 부담감 없이 선택한 것이지. 이런 작품을 썼던 작가나 연출한 감독님들도 (어떤 압력에 대한) 부담감을 갖거나 영화로 인한 불이익을 두려워하며 시나리오를 쓰진 않았을 거잖나. 영화하는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숨죽어 있는 갈망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걸 영화화하고 싶은 게 바로 영화인들 특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하는 사람들이 좌익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 거 같다. 

사회에 필요한 외침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썼고, 기획이 됐고, 그래서 배우에게 왔다. 그걸 선택하는 저 역시 사회 전반적인 정치 이슈라서가 아니라 우리 국민이 느끼고 있는 불안감을 영화화 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딱 그 정도 관심이다. 올바른 권력? 올바른 국민이라면 끊임없이 국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심을 수용할 줄 아는 게 올바른 권력이고.

이러면 또 '정우성 정치적 발언한다!' 이러겠네(웃음). 정치적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국민 다수가 알고 있는 삐뚤어진 정치세력이 있잖나. 한 국민으로서 소리를 낸 거지. 국민으로서 소리를 내는 게 정치적 발언이라고 한다면 국민 모두 정치적 발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무관심은 곧 잘못된 정치를 용납하는 것이다."

<강철비>에는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라는 화두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짙다. 정우성이 언급한 지금의 권력자들, 이들이 올바른 권력자가 되기 위해선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는 게 좋을까. 참고로 영화의 결말에서 곽철우가 엄철우에게 제시하는 '북한의 핵을 남북이 나눠 갖자' 방안을 두고 관객들 반응이 다양했기에 정우성에게 물었다.

"그렇게 여러 해석이 나오는 게 재밌지 않나. 언제부턴가 영화의 결말은 답을 줘야 하는 걸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다. 그냥 이야기 안에서 그 캐릭터의 선택일 뿐인데 말이다. 그 캐릭터들의 선택에 동의 안 한다면 어떤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게 영화로 인한 담론이잖나. 문화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우린 있을 법한 일을 극대화해서 제시한 것이고 그건 관객 분들에게 영화가 끝난 뒤 더 즐기시라는 의미다.

핵을 나누자는 결말은 현실에 빗댄 문제라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강철비>가 담고 있는 고민 중에서는 자주 국방에 대한 것도 있고, 북한을 한민족으로 바라봐야 할 태도의 문제도 있다. 진정한 평화? 당연히 전 세계의 비핵화지. 그걸 위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핵은 다 없앴다. 근데 주변 열강은 핵을 갖고 있잖나. 진정한 평화가 아닌 것이지. 그 연장선에서 고민한 게 지금의 결말이다. 주변국이 다 비핵화 해야 하는데 영화 결말에서 한국의 외교안보수석이 '진짜 평화요? 비핵화입니다! 우리부터 솔선수범합시다!' 이렇게 끝냈다면? 더 어색하지 않을까." 

 배우 정우성.

ⓒ NEW


자기 진단

데뷔 후 쉼 없이 달렸고, 끊임없이 변화를 통해 도전했다. 이제 막 차기작 <인랑> 촬영을 끝낸 그는 <강철비> 홍보와 함께 잠시 숨을 돌릴 예정이다. 연말, 자신을 돌아보기 좋은 시기다. "이제야 좀 물러진 느낌"이라고 정우성이 운을 뗐다.

"어릴 땐 좀 딱딱했거든. 심리도 그랬고 작업을 대하는 태도도 고지식했다. 남들 출근할 때 현장에 나가서 끝날 때까지 버티고, 현장의 모든 걸 다 내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 열심히 했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자세가 너무 굳고 딱딱했던 거 같다. 그래서 연기에 힘이 들어갔을 수 있지. 모든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려고 했고.

이젠 좀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어릴 때의 시간이 내게 준 장점이 있다. 현장에서 누가 아프거나 문제가 생기면 다 보인다. 이젠 내가 좀 물러지기 시작했고, 더 유연해질 수 있다는 걸 느낀다. 감정의 크기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닌데 그것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았다. 모든 표현에 힘을 줄 필요가 없는 것이지."

요즘에도 정우성은 종종 잠에서 깰 때면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읊조린다. "감사하면 행복할 수 있죠"라며 그가 명료하게 설명했다. 분명 그는 보다 부드러워졌다.

정우성 강철비 곽도원 북한 핵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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