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방송사의 메인 뉴스 앵커는 '간판'이자, 방송사의 신뢰도를 상징하는 '얼굴'이다. 메인 뉴스의 앵커가 된다는 건 기자·아나운서에게는 최고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 지금 MBC 보도국은 '국민 신뢰 회복'과 'MBC 뉴스 재건'이라는 중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놓인 MBC는 '뉴스의 새 얼굴'로, 2012년 기자들의 제작 거부를 이끌다 해고당한 박성호 기자와 2012년 파업 이후 업무에서 배제됐던 손정은 아나운서를 택했다.

<뉴스데스크> 앵커 된 해직기자, "해직 기간 배운 것도 많다"

MBC 조합원 집회에서 발언하는 해직언론인들 3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유배지 폐쇄 선언’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사진 왼쪽부터) 박성제, 박성호, 최승호 해직조합원 및 구로, 경인지사, 여의도 등 부당전보 된 조합원들도 업무거부를 선언하며 동참했다.

▲ MBC 조합원 집회에서 발언하는 해직언론인들 3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유배지 폐쇄 선언’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사진 왼쪽부터) 박성제, 박성호, 최승호 해직조합원 및 구로, 경인지사, 여의도 등 부당전보 된 조합원들도 업무거부를 선언하며 동참했다. ⓒ 권우성


 김연국 위원장, '박성호-박성제 선배님 하루 빨리 복귀시키겠습니다' 박성호(왼쪽), 박성제(가운데) MBC 해직기자가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회가 열린 율촌빌딩 앞에서 김장겸 MBC 사장의 해임안 가결 소식이 전해지자 김연국 노조위원장의 그동안 마음고생을 알아주며 손을 잡아주고 있다.

▲ 김연국 위원장, '박성호-박성제 선배님 하루 빨리 복귀시키겠습니다' 박성호(왼쪽), 박성제(가운데) MBC 해직기자가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회가 열린 율촌빌딩 앞에서 김장겸 MBC 사장의 해임안 가결 소식이 전해지자 김연국 노조위원장의 그동안 마음고생을 알아주며 손을 잡아주고 있다. ⓒ 유성호


5년 반 만에 복직하자마자 중책을 맡게 된 박성호 기자는 13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달라진 환경과 업무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데, 이런 부담감이 팍팍 드는 자리에 앉게 돼 압박이 크다"면서, "내 개인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해직기자 출신'이라는 상징성 때문 아니겠나"라고 자평했다. 공정 방송 투쟁을 벌이다 해고됐던 만큼 이에 대한 구성원들의 염원을 대표할 수 있고, 뒤틀린 MBC 뉴스를 다시 바로 세우겠다는 내부의 다짐을 외부에 전달하기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점이 반영됐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물론 이런 점도 주효했겠지만, 박성호 기자는 해직 기간 동안 고려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저널리즘의 원칙과 가치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탄탄한 이론에, 23년 차 기자의 풍부한 현장 경험, 여기에 2012년 파업의 도화선이 된 기자들의 제작 거부를 이끌었을 만큼 후배들의 신망이 두텁다는 점까지. 대내외 인사들이 박성호 기자를 새롭게 태어날 <뉴스데스크>의 적임자로 꼽은 이유다. 

박성호 기자는 지난 파업 집회에서 유독 '시민'에 대한 언급을 자주 했다. 그저 감사하고 죄송한 대상으로서의 시민이 아니라, 주로 시민의 뜻을 담아야 하는 공영 방송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였다. 복직하던 날도 "해직이 안 됐다면, 내가 이런 사랑과 주목을 받을 만한 기자였던가 생각해본다. 해직기자라는 프리미엄으로 과분한 관심을 받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 고백하기도 했다. 해직이라는 개인적인 비극을, '더 나은 언론인이 되기 위해 치른 수업료'로 여기는 것 같았다.

이에 대해 박 기자는 "회사는 해직으로 내게 무엇도 빼앗아 가지 못했다. 오히려 얻은 게 많다"면서 "해직 기간 객관적 시선으로 언론을 바라보며, '시민'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생겼다"고 했다.

"박사 논문 주제가 '공영방송의 불편부당성'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우리는 공정한 보도를 정치적으로 여권에 편향적이지 않아야 한다, 독립적이어야 한다, 대개 이런 해방적 개념으로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여야 균형을 맞추려는 논의는 활발해요. 하지만 공부하다 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공정보도의 범위가 굉장히 협소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여기에 빠진 게 바로 '시민'이었습니다. 

우리는 시민의 관심사는 늘 뒷전에 두고, 권력자들이 무엇을 말하는가에만 초점을 맞춘 뉴스를 만들어왔습니다. 실제 방송에 나오는 목소리의 대부분도 이런 엘리트들이고, 일반 시민의 목소리는 행인 인터뷰에나 등장할 뿐,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늘 '시민 없는 민주주의'를 걱정했는데, '시민 없는 뉴스'가 더 문제더라고요. 시민의 뜻이 철저히 배제된 공론의 장이 공영방송 뉴스로 온당할까요? 여야 균형이나 권력 감시만 하면 최선을 다하는 걸까요? 권력 비판은 너무나 기본적인 겁니다. 공영방송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폭넓고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해야 합니다." 

박성호 기자는 "MBC 뉴스에서 <뉴스데스크> 앵커가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뉴스는 기자들과 보도국이 함께 만드는 프로그램인 만큼, 그 결과물들이 시민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조력자, 전달자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MBC가 메인 뉴스 앵커로 박 기자를 낙점한 데는, 박 기자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공영방송 철학과 뉴스에 대한 신념을 MBC 뉴스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시민 뜻 배제한 뉴스? 공영방송 뉴스라면..." 

 과거 MBC <뉴스투데이>를 진행하던 박성호 기자

과거 MBC <뉴스투데이>를 진행하던 박성호 기자 ⓒ MBC


12일 방송된 MBC < PD수첩> 스페셜 편에는 분노한 시민들에게 쫓겨난 후배 기자들의 모습을 목격한 박성호 기자의 증언이 담겨 있었다. 시민의 뜻을 외면한 공영 방송이 시민들에게 어떻게 외면당하는지, 까마득한 후배들의 도둑 중계를 목격한 해직자의 심경은 어땠을까? 

"마이크 택을 떼고 방송한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현장에서 보니 그 수준이 아니더라고요. 세종문화회관 앞에 놓인 MBC 중계차에는 장비만 놓여있었는데, 사설 경호업체 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있더라고요. 정작 기자들은 안 보여서 이리저리 뒤지고 보니, 경복궁역 근처 골목 조그만 빌딩 창문으로, 창문을 열고 복도에 서서 중계하는 후배들의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그 아래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있었고요.

MBC 기자들은 숨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인 거예요. 바닥까지 쳤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 땅속 지하로 들어가고 있더라고요.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죠. 저도 서글펐지만, 저 방송하고 있는 기자는 심정이 어떨까 싶기도 하고..." 

 박성호 기자는 광화문 촛불집회 당시, 시민들의 항의를 피해 도둑중계를 하던 MBC 기자의 모습을 목격했다. 사진은 당시 박성호 기자가 찍은 사진.

박성호 기자는 광화문 촛불집회 당시, 시민들의 항의를 피해 도둑중계를 하던 MBC 기자의 모습을 목격했다. 사진은 당시 박성호 기자가 찍은 사진. ⓒ 박성호


시민들이 촛불로 박근혜 정권을 내몰고 새 정부를 세웠지만, 그 후로도 한참 동안 MBC의 암흑기는 계속됐다. MBC 구성원들의 파업 투쟁 끝에 김재철-안광한-김장겸까지 이어진 권력의 MBC 장악 역사는 끝이 났고, 해직, 부당전보 등으로 고통받던 언론인들의 화려한 복귀가 이어지고 있다. 박성호 기자는 "아직 어수선하긴 하지만, 다들 표정도 밝고 의욕이 넘치고 있다"며 달라진 보도국 분위기를 전했다.

"이제 돌아온 지 3일 정도 됐습니다. 새 인사가 계속 발표되고 있는데 절차상 시간이 좀 걸리다 보니까 내부적으로는 아직 많이 어수선합니다. <뉴스데스크>도 임시 체제로 방송되고 있고요. 하지만 다들 의욕에 불타고 있습니다. 편집회의 들어오는 부장들 표정만 봐도 달라요.

국장이 혼자 리드하는 게 아니라, 모두들 활기차게 토론도 많이 합니다. 전에는 남의 부서에서 발제한 아이템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가는 게 예의인양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아무런 구분 없이, 어떤 이슈에도 상호 토론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후배들도 부담감을 느끼고 있지만 다들 밝아요. 저요? 아직 모든 게 어렵지만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달라진 MBC 보도국 "아직 어수선하지만 의욕 넘친다" 

 박성호 기자는 2012년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1심, 2심에서 해고무효판결을 받은 박 기자는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박성호 기자는 2012년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1심, 2심에서 해고무효판결을 받은 박 기자는 지난 11일, 5년 6개월 만에 MBC로 돌아갔다. ⓒ MBC노동조합


MBC <뉴스데스크>는 앵커들의 촌철살인 클로징 멘트로도 큰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신경민 앵커가 정권을 비판하는 클로징 멘트로 미움을 사 앵커 자리에서 쫓겨나고, 최일구 앵커마저 파업 참가를 이유로 징계를 받자 어느 순간부터 <뉴스데스크>에서는 클로징 멘트가 자취를 감췄다. 돌아올 <뉴스데스크>에서는 시민들의 가슴을 속 시원하게 해줄 클로징 멘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고민 중입니다. 원칙적으로, 제게는 클로징 멘트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없어요. 모든 멘트가 중요하지, 끝날 때 하는 멘트에만 과도하게 무게를 실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있거든요. 제 안의 1번은 개별 뉴스를 소개하고 전달할 때 밀도 있게 멘트를 전달하는 겁니다. 다만 시민들의 기대가 있다면, 기능적으로 효과적인 클로징 멘트를 위해 연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어떤 방식이 좋은지 궁리 중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저널리즘의 원칙에 대해 강조해온 만큼, 그 말빚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박성호 기자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이제 시청자로서 그가 강단에서 이야기한 것들을 현실에서 얼마나 잘 이행하는지 감시하고 지켜볼 모니터 요원들이 됐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좋다는 글귀나 말들을 이야기하며 '언론은 이래야 한다'는 걸 가르쳤는데, 이젠 그 뒷감당을 해야죠. 완벽하게 이행하지 못하더라도 제가 가르친 말들이 제게 족쇄가 되고 압력이 되어 좋은 긴장감을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많이 모니터해주겠다고 하니까, 귀 열고 모니터 보고를 잘 받아야죠(웃음)."

황당 오보 주인공 된 박성호 기자 "안타깝다" 

11일, 박성호 기자가 <뉴스데스크>의 신임 앵커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 박 기자는 황당한 오보에 휩싸였다.

박성호 기자가 자신의 SNS에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이 물러난다는 기사 링크와 "기왕이면 사표도 쓰시지"는 글을 게재했다는 내용이었는데, 이는 동명이인인 일반인 박성호씨의 SNS 계정을 박성호 기자의 계정으로 착각해 벌어진 오보였다(관련기사 : MBC 복직 박성호 기자가 신동호 저격? 황당 오보 확산).

<동아닷컴>이 이 기사를 처음 내보낸 뒤, 일반인 박성호씨는 "내 글이 박성호 기자가 쓴 글로 오보가 났다"며 자신은 MBC 박성호 기자와 다른 사람이라고 알렸다. 하지만 <아시아경제> <스포츠서울> <데일리안> <매일경제> 등 여러 매체가 첫 보도를 그대로 받아쓰면서 오보를 확대, 재생산했다.

이날 오전에는 MBC 해직기자들이 5년 반 만에 출근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이어 박성호 기자가 신임 <뉴스데스크> 앵커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때문에 각종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박성호 기자의 이름이 올랐고, 실시간 검색어를 키워드로 뉴스를 생산하는 온라인 매체들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기사를 생산하다 벌어진 황당 에피소드였다. 지금 이 기사들은 모두 삭제된 상태다. 

그저 MBC 해직기자들과 <뉴스데스크>에 대한 시민과 언론의 관심이 높다는 방증으로 보아야 할까? 황당한 오보의 주인공이 된 박성호 기자는 "우선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엉뚱한 오해를 받으신 박성호씨께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한 뒤, 오보를 낸 기자들에 대해서는 "안타깝다"고 했다.

"제게 전화 한 통만 하셨어도 실수 안 할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안타깝죠. 기사 쓴 매체들을 보니 대부분 온라인 매체의 인턴기자들이더라고요. 한 군데서 쓰고 다른 매체들이 베껴 쓴 것 같은데, 얼마 전까지 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던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큽니다.

확인도 없이 남의 기사를 베껴 쓰는 건 표절입니다. 취재 원칙도 어긴 거고요. 물론 실수겠죠. 하지만 학교에서는 절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아요.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가르쳐왔고, 그분들도 그렇게 배우지 않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속보 경쟁에 매몰되다 보니 배운 대로 일할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해요. 이번 기회에 비싼 수업료를 냈다 생각하시고, 스스로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셨으면 합니다." 


박성호 뉴스데스크 해직기자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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