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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9개. 1970년 당시 서울 아파트 가구들의 장독대 보유 현황이다(LH 전신 대한주택공사 조사). 당시만 해도 간장, 된장 등을 집에서 담가 먹는 것은 당연했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가 쓴 <거주 박물지>에 따르면, 1970년대 아파트는 장독대를 위한 공간을 설계했고, 분양 광고에서 '발코니'를 '장독대'라고 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졌던 김현옥 서울시장은 '장독대 없애기'를 정책으로 내세웠다. "장을 사 먹으니 편하고, 쥐가 목욕한 간장도 그대로 퍼먹어야 하니 위생상 좋지 않다"는 내용 등을 담아 11편의 계몽 영상을 만들었다. 1970년 4월 마포구 와우시민아파트가 붕괴한 주원인이 장독대 무게였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전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정 필수품이었던 장독대는 '희귀템(거의 볼 수 없는 아이템)'이 됐다. 식생활 변화, 편리 추구, 김치냉장고 보급 등 다양한 이유가 작동했다. 장독대 하나에도 가정사와 주거사가 담겨 있던 시절은 지나갔다. 그런데 지난 3월 서울혁신파크에 장독대 50개가 둥지를 틀었다. 서울시가 나트륨 저감화 사업 일환으로 '장하다 내 인생'프로젝트를 진행한 것.

11월 11일 장하다내인생 프로젝트 현장모습 11월 11일 장하다내인생 프로젝트 현장모습
▲ 11월 11일 장하다내인생 프로젝트 현장모습 11월 11일 장하다내인생 프로젝트 현장모습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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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맛은 장맛'이라고 했던가.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막장, 등겨장, 빡빡장 등 한국인에게 장맛은 음식 맛과 직결돼 있다. '잃어버린 장맛을 찾아서'라는 부제를 붙여도 좋을 이 프로젝트는 장류를 직접 만드는 체험과 발효의 맛을 느껴볼 수 있는 장기 프로젝트로 기획됐다.

지난 3월 1일이 시작이었다. 200여 명 시민들이 맛동에 모여 '장 독립'을 선언했다.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대표 주도로 전통 방식 발효 된장과 간장의 우수성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직접 장을 담갔다. 장독대에 겨울 동안 바람을 맞고 햇볕을 쬔 콩 한 말로 만든 메주와 소금 4킬로그램을 넣었다. 장맛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은 아리수 20리터로 넣었다.
그리고 4월 '장 가르기'를 거쳐 11월 마침내 장을 수확(!)했다.

지난 11월 11일, 혁신파크 극장동 뒷마당과 맛동이 북적거렸다. 8개월 이상 묵은 된장과 간장을 수확한다는 기쁨이 넘실거렸다. 추운 날씨에도 시종일관 웃음꽃이 피었다. 장독대 뚜껑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온 장은 널리 향기를 떨쳤다. 혁신파크 11월은 장이 무르익은 계절이었다.

장맛은 관리에서 나온다

조선 궁궐, 왕가가 먹을 장을 담아 보관하던 장소를 장고(醬庫)라고 했다(궁궐 안 장맛을 책임지고 관리하던 궁녀를 장고마마라고 불렀다). 혁신파크의 장고는 극장동 뒷마당이었다. 장맛을 잃은 혹은 대규모 공장에서 생산돼 획일화된 장맛에 길들여진 시대, '장 독립'을 선언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콩을 발효시켜 만든 장은 우리 음식의 제맛을 내는 대표적인 조미료(!)였다. 선조들은 '음식 맛은 장맛'이라고 할 만큼 장을 중히 여겼다. 때문에 장을 담그고 관리하는 데 정성을 기울였다. 한 집안의 음식 솜씨를 장맛으로 판단하거나 장맛이 바뀌면 집안에 어떤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장맛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고은정 대표는 '장맛은 관리에서 나온다'는 짧은 강연을 통해 "장맛의 절반은 관리"라고 강조했다. 장을 담근 뒤 장맛은 햇빛과 바람, 기다림(시간)의 몫이 가장 크다. 시간이 장을 만든다는 말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의 관심과 손길이 필요하다.

"항아리도 항상 관리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반려동물 키우듯 할 필요는 없다. (웃음) 화초를 키우는 정도의 관심 정도면 된다. 일주일, 보름에 한 번씩 봐주면서 곰팡이가 생기면 걸러주면 된다. 곰팡이가 생겼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황금색 장이 나온다."

선조들도 그랬다. 바람이 잘 통하고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장독대를 만들고 장 상태를 자주 살폈다. 장독대 위에 금줄이나 종이 버선을 거꾸로 붙이기도 했다. 장맛을 망치는 잡신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서울혁신파크에서 짧은 강연 중인 고은정 대표
 서울혁신파크에서 짧은 강연 중인 고은정 대표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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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대표는 된장 관리를 위해 필요한 사항들을 먼저 말했다. 우선 햇빛. 햇빛을 통해 수분이 날아가고 공기와 맞닿으면서 장이 익는다. 다만 햇빛이 없다고 해서 장맛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실내에서도 장을 익힐 수 있다. 너무 많은 햇빛이 들면 말라버릴 수 있다. 하루에 한 번 정도 햇빛과 만나는 것이 좋다는 게 고 대표의 조언이다.

햇빛과 관련해 중요한 게 수분 조절이다. 너무 마르지 않고 수분이 적당히 있어야 한다. 진죽 정도로 두면 장이 숙성하면서 숟가락으로 펐을 때 뚝뚝 떨어지는 된장이 완성된다.

"수분이 많으면 물을 덜 넣으면 된다. 다만 수분이 너무 날아가서 갈라지고 단단해진 된장이라면 물을 넣어주면 된다. 여름보다는 지금 무렵이 좋다. 세균이 걱정되면 물을 끓여 넣어도 된다. 콩을 삶아 메주 만들 때 콩물이 남는데, 콩물을 식혀서 물을 부으면 장이 촉촉해진다. 콩물을 넣었기 때문에 장맛도 한 단계 높아진다."
 
햇빛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기(바람)이다. 된장이 숨을 쉬게 해주는 것이 좋다.

"항아리가 아닌 플라스틱 혹은 유리병에 장을 담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뚜껑을 열고 섞어주면 된다. 그래서 장맛은 한 항아리 안에서도 달라진다."

청결도 중요하다. 장독대를 잘 닦아줘야 한다. 파리 등 벌레들이 장을 좋아해서 장독대 주변에 알을 낳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 장은 공기가 있어야 발효가 잘된다. 이를 호기성 발효(산소가 있는 상태에서 산화효소에 의해 일어나는 발효반응)라고 한다. 장을 유리병에 넣었을 때 아파트에 난방이 강하면 하얀 곰팡이가 생길 수 있다. 집이 덥다면 수저나 손으로 장 표면을 다독여주면 곰팡이 등이 생기지 않는다.

수분이 날아가면서 맨 위에 소금이 생길 때가 있는데 이 소금만 거둬서 활용해도 된다. 된장 맛 소금이다. 싱겁게 담지 않았다면 상할 일이 없다. 싱겁게 담으면 시어진다. 시큼한 맛이 나는 건 염도를 줄인 탓에 그렇다."

 서울혁신파크 부지 내 줄서있는 장하다내인생프로젝트의 장독대들
 서울혁신파크 부지 내 줄서있는 장하다내인생프로젝트의 장독대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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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관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햇빛이 필요하다. 하얗게 뜨는 경우 흔들어주면 된다. 바람도 통해야 한다. 햇빛을 보지 않으면 맑거나 연한 색을 띤다. 장이 익어가면서 6~7월의 간장은 연한 커피 색깔이 난다. 어두운 곳이나 냉장고에 넣으면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

된장과 마찬가지로 청결과 수분 조절 역시 필요하다. 수분을 관리해주지 않으면 장독대 밑바닥까지 다 날아가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8월 15일이나 추석이 지나서 그냥 뚜껑을 덮기보다 천을 덮고 이중으로 뚜껑을 덮어주면 좋다.

"소금을 만들면서 수분이 날아간 간장은 정말 맛있다. '간장에 피는 꽃, 감수로 잠재우고 간장에 생긴 보석, 염도를 내린다'는 말이 있다. 간장 맛이 밴 소금으로 음식 맛을 더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간장은 시중 판매 간장보다 단백질, 아미노산이 많다."

우리집 장독대, 일상 혹은 현실로

장 관리에 대한 강연을 마치고 시민들은 장독대로 향했다. 장독대에서 각자 가져갈 장을 담았다. 그리고 된장과 간장을 담은 용기에 '장하다 내 인생'이라는 스티커를 붙였다. 세 계절을 거치는 동안 함께 익어간 장과 자신의 삶을 토닥토닥 보듬는 의식 같은 것이다.

이어서 직접 담근 장을 시중에서 판매하는 간장, 된장과 비교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말하자면 관능 평가. 간장과 된장을 오감으로 느껴보는 시간. 고 대표가 '장한 시민'들에게 물었다.

"직접 담근 장은 왜 맛있을까요?"

아빠와 함께 온 아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직접 만들어서요. 정성이 들어가서요." 더할 나위 없는 답변이다. 직접 장을 만들어보니 어떤지 묻는 질문에 함박웃음을 머금은 장한 시민들이 한마디씩 던진다. "경이로워요" "행복해요" "좋아요" '내(우리)가 먹을 것을 내가 만들었다'는 기쁨과 자부심이 묻어난다. 잃어버린 장맛을 찾았다. '심봤다' 대신 '장봤다'로 외쳐도 좋겠다.

 서울혁신파크 부지 내 묻어뒀던 장을 꺼내는 참가자들
 서울혁신파크 부지 내 묻어뒀던 장을 꺼내는 참가자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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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대표가 마무리 말을 이었다.

"콩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변하면서 구수한 맛, 감칠 맛 등이 발현된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장은 직접 담근 장과 어떻게 다른지 느꼈을 것이다. 앞으로 장 선택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장독대는 현실이다. 내 집에서 나만의 장을 가지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그렇게 일상에 장독대가 스며들면 좋겠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있다. 장을 담그기만 한다고 장이 지켜질까? 먹어야 지킬 수 있다. 장이 떨어지면 또 담그면 된다. 장을 음식에 사용하고 없애야 한다. 우리 밥상과 우리 장을 지키는 방법이다."

어떤 장을 쓸 것인지는 어떤 삶을 살 것인지와 통한다. 우리는 '산다'라고 표현해도 될 것을 '먹고 산다'라고 흔히 쓴다. 먹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고 삶과 직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장을 빗댄 속담들도 장이 얼마나 삶과 밀접했는지 보여준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는 속담은 집안이 화목하지 못하면 살림이 잘 안 된다는 말이었고, '뚝배기보다 장맛'은 겉모양은 보잘것없어도 내용은 훌륭하다는 말이었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획일화된 된장과 간장 맛을 거부하고 3월부터 장과 함께 익은 시민들의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일상의 혁신이자, 장에서 길어 올린 혁신이었다. 내가 만든 장처럼 내 삶도 잘 발효되고 익어가기를.

한편, '장하다 내 인생' 프로그램을 통해 남은 장 일부는 '2017 장하다 내 인생 프로젝트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다음 달 6일부터 2018년 2월 28일까지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참가비는 무료다. 그곳에 혁신파크의 햇빛과 바람과 별이 만든 장(醬)이 있다. 물론 장한 인생들의 정성과 마음도 스며있다.

 장하다내인생 프로젝트로 담근 장들
 장하다내인생 프로젝트로 담근 장들
ⓒ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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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서울혁신파크 공식 블로그 s_innopark.blog.me 에 게재된 글입니다.
글·사진 | 서울혁신파크 공식 서포터즈 파크캐스터 2기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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