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혁명' 1년을 헤드라인으로 보도한 지난 9일 <MBC 뉴스>.

'촛불 혁명' 1년을 헤드라인으로 보도한 지난 9일 . ⓒ MBC


"안녕하십니까. 토요일 밤 MBC뉴스입니다. 오늘은 촛불 혁명의 한 가운데서 국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 소추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입니다. 거대한 변화로 이어진 그 1년, 하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미묘하게 엇갈렸습니다. 첫 소식 김수진 기자입니다."

'박근혜 탄핵' 1주년을 맞은 지난 9일, < MBC 뉴스>는 '촛불 혁명'이란 표현을 엄주원 아나운서의 앵커 멘트로 내보냈다. 지난 1년간 MBC가 기계적 중립은커녕 '촛불 vs. 태극기' 프레임을 집요하게 확대 재생산해 왔던 진원지였던 것을 상기한다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이어진 리포트는 2012년 파업 이후 뉴스를 보도하지 못했던 김수진 기자의 몫이었다.

"광장을 가득 메운 백만 촛불의 힘은 타성에 젖은 낡은 정치 지형에 균열을 가져왔고 그 결과 10년 만의 여야 정권 교체로 이어졌습니다. 지난 1년 동안 국정 농단의 주역들은 줄줄이 심판대에 섰습니다. 10년간의 권력 남용과 전횡의 실상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탄핵소추로부터 1년, 개혁의 폭과 속도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작년 탄핵 사태로부터 분명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그만큼 그 의미가 무겁게 다가오는 오늘, 탄핵소추 1주년입니다, MBC뉴스 김수진입니다"로 끝을 맺은 이날 < MBC 뉴스>의 헤드라인은 분명 달라진 MBC를 상징하고 있었다. 그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JTBC를 비롯한 여타 방송사들이 주목했던 '촛불 혁명'의 의미를 MBC 역시 고스란히 담아내고 싶었다는 어떤 고백과도 같아 보였다. 그리고 김수진 기자가 말한 '분명한 교훈'은 바로 MBC를 향한 자성이었을 것이다.

달라진 MBC의 목소리는 타사의 투쟁 현장을 담는 것으로도 확인됐다. 이날 < MBC 뉴스>는 연달아 <97일째, KBS 최장기 파업…YTN은 정상화 차질>, <"비리이사 해임"…5일째 24시간 릴레이 발언>을 내보내며 끝나지 않은 KBS 새노조 파업과 사장 선임을 두고 정상화에 차질을 빚고 있는 YTN의 상황을 다뤘다. 그러면서 공영방송 동료들의 목소리를 잊지 않고 들려줬다. 과거 배현진 앵커가 진행하던 <뉴스데스크>에서는 상상도 못할 장면이라 할 만했다.

"한심해 보이고 무임승차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시청자들은 저희가 어떤 말을 하는지 공영방송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귀를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KBS 박대기 기자)

"이제는 더이상 KBS가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진짜 국민의 방송이 되도록... 눈이 많이 내립니다. 시간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디게 가네요." (KBS 이광용 아나운서)

이육사 시인의 시 '절정' 욕보인 한국당 장제원

정론관에서 시 읊은 장제원 자유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정론관에서 현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정론관에서 시 읊은 장제원 자유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정론관에서 현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러한 지상파의 정상화와 개혁의 바람을 두고 보지 못하는 세력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행태가 너무나 촌스럽다. 아니, 사실왜곡을 넘어 '기억상실증'과 '자기합리화'의 병적 증세로 승화되는 중이다. 신임 최승호 사장의 취임을 두고 "MBC가 노동조합이 만드는 '노영(勞營)방송'이 됐다"고 한탄했던 자유한국당이 그들이다. 그 중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군계일학이라 할 만하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11일 여의도 국회정론관에서 기자들 앞에서 장제원 대변인이 친히 읊었다는 시인 이육사의 '절정'이다. 장제원 대변인이 겨냥한 것은 최승호 신임 MBC 사장의 행보였다. 취임과 함께 단행한 인사조치를 두고 장 대변인은 "가히 점령군 답다"거나 "블랙리스트가 작동하고 있나 보다", "취임 하루 만에 보도국을 모조리 숙청했다"는 등 과격한 언사를 쏟아냈다.

그러면서 장 대변인은 "강철같은 겨울을 이겨내고 영광의 봄이 오기까지 부디 뜻 있는 MBC 내 언론인 여러분들께서 중지를 모아 잘 이겨내 주시기 바란다"며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고 격려의 말을 전했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득세하고 '극우'라 비판받는 자유한국당의 대변인이 일제 강점기 하에서 신음했던 민초들을 달랬던 민족시인의 시를 작금의 MBC의 상황에 빗댄 것 자체가 코미디다.

아무리 정당의 '마이크'를 자처하는 대변인의 구두논평이라고 하지만, 이쯤 되면 무덤에 계신 이육사 시인이 분노하며 벌떡 일어날 만한 상황이라 할 것이다. 왜냐고? 장제원 대변인이 '절정'에 빗댄 세력은 쉽게 풀이하자면 김재철-안광한-김장겸 전 MBC 사장과 그 휘하에서 MBC를 망가뜨린 경영진과 부역자들이기 때문이다.

'진영논리'를 넘어 지난 9년간 각종 위법과 불법에 관여된 혐의를 받고 있는 MBC 전 사장과 경영진은 물론 공영방송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무너뜨리는데 일조한 이들을 일제강점기에서 고통 받고 신음 받았던 우리 민족과 민초들에게 빗댄 장제원 대변인. 제 아무리 자유한국당을 위시한 극우의 마이크 역할을 충실히 해왔던 MBC가 정상화 궤도에 올랐다손 치더라도, '절정'이란 시까지 욕보이면서까지 '김재철-안광한-김장겸 체제'와 그 구성원들을 응원하고 격려해야 했을까.

자유한국당과 '극우' 보수가 '촛불 혁명' 이후 변화하는 민심을 읽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MBC를 향한 국민들과 시청자들의 응원을 듣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 보면 어렵지 않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상화를 위한 MBC의 변화와 최승호 사장의 의지는 11일에도 거침이 없어 보였다. 우선 <뉴스데스크>에서 하차한 배현진 앵커 후임 인사에 이목이 쏠렸다.

달라진 MBC 뉴스와 복직한 해직 언론인, 이들이 '점령군'인가

축하 꽃다발 선물 받는 MBC 복직자  지난 2012년 MBC 파업을 이끌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복직한 최승호 신임 사장과 강지웅 PD, 박성제 기자, 박성호 기자, 이용마 기자 , 정영하 기술 감독이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사옥에 첫 출근하자, 구성원들이 이들을 환영하며 축하꽃다발을 선물하고 있다.

▲ 축하 꽃다발 선물 받는 MBC 복직자 지난 2012년 MBC 파업을 이끌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복직한 최승호 신임 사장과 강지웅 PD, 박성제 기자, 박성호 기자, 이용마 기자 , 정영하 기술 감독이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사옥에 첫 출근하자, 구성원들이 이들을 환영하며 축하꽃다발을 선물하고 있다. ⓒ 유성호


복수의 매체에 따르면, 지난 8일 전격적으로 단행된 MBC 보도국 국·부장단 인사개편에 이어 18일 개편 방송 예정인 <뉴스데스크>의 앵커에 박성호 기자와 손정은 아나운서가 내정됐다는 소식이다. 주말 <뉴스데스크>는 앞서 소개한 '촛불 혁명 1년' 리포트를 맡았던 김수진 기자가 진행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반면 11일 대표적인 '부역' 인사로 유명한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의 하차설이 불거져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11일 최승호 MBC 신임 사장 이하 MBC 해직언론인 6인이 수백여 명의 동료들의 환영을 받으며 5년~6년여 만에 상암 MBC 본사로 출근해 관심을 끌었다. 특히나 암 투병 중인 이용마 기자는 휠체어 탄 채로 사원증을 목에 걸어 감동을 자아냈다. 최승호 사장의 취임과 <뉴스데스크>의 변화와 함께 MBC 정상화를 상징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관련기사 : 휠체어 타고 복직한 이용마 "이날 올 걸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점령군" 운운한 장제원 대변인에게 언론은 무엇인지. 언론과 방송이 과거 정권의 나팔수이자 극우정당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일삼는 앵무새인지 말이다. 그 장제원 대변인에게 11일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돌려드리는 바다. 부디, 제 논에 물 대는 논평을 하더라도 '절정'까지 끌어다 쓰는 '몰염치'는 이제 거두시기를.

"출세 하기 위해 이명박근혜 정권에 부역한 자들을 독립투사 취급하는 장제원 의원, 그럼 박근혜 탄핵에는 왜 찬성하셨나요? 그냥 같이 장렬히 싸우다 가시지..."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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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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