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 나타났다. 바로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의 8번째 감독 오멸이 그 주인공이다. 단편 영화 활성화를 취지로 영화와 예능을 컬래버레이션 한 <전체관람가>에는 이미 이명세 감독, 정윤철 감독, 박광현 감독 등 내로라 하는 감독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상업영화로 이름을 날렸던 이들이, 영화 제작비로는 턱없이 모자란 3천만 원으로 단편 영화를 만드는 '예능적 도전'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됐다. 그리고 그동안 비워뒀던 한 자리에, 진짜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어 온 오멸 감독이 등장했다.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

ⓒ 영화사 진진


진짜 독립 영화 감독 오멸의 등장

오멸 감독은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아래 <지슬>)를 통해 이름 석 자를 세상에 드러냈다. 오멸 감독은 <지슬>로 한국인 최초로 제29회 선댄스영화제 그랑프리(대상)를 수상했을뿐만 아니라 각종 영화제를 휩쓸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로컬 영화인 오멸 감독은 <지슬>에서 제주의 아픈 역사 '4.3사건'을 전면에 드러냈다.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2>에서 유시민 작가는 '4.3사건'에 대해 "한 마을에서 벌어진 사상을 배경으로 한,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며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 설명했다. 반면 <지슬>에서 그려지는 제주도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영화에서 주민들은 "제주도 해안선 5km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폭도로 간주한다"는 말을 듣고 피난길에 올랐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도 모른 채 산 속에 몸을 숨겼고, 집에 곧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일상을 살았다. 이들이 바로 우리가 아는 그 4.3사건의 희생자였다.

박광현 감독은 <지슬>에 대해 "순수하고 천진난만하게 슬픔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 역사의 비극을 아름답고도 슬프게 표현한 <지슬>은 우리 역사의 뒷페이지에 숨죽여 웅크리고 있던 민중사의 한 장면을 복원했다.

하지만 오멸 감독은 과거를 복원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데뷔작인 영화 <어이그, 저 귓것(Nostalgia)>에서는 '귀신이 데려가야 할 바보 같은 녀석들'(귓것) 네 사람을 통해, 제주도의 민속 노동요와 포크 음악의 협연을 시도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또한 2015년 영화 <눈꺼풀>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통해 그 누구보다 앞서 시대를 영화에 담아냈다. 또한 오멸 감독은 다루고자 하는 주제뿐만 아니라 비전문 영화인, 배우, 스태프를 구분하기 어려운 '공동체'적 작업을 통해 '독립'의 의미를 과정으로 담보해 낸 영화인이다. 그야말로 <전체관람가>의 취지에 가장 부합한 인물인 그는 여덟 번째 감독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독립 영화의 상징적 인물이란 수식어만으로 그가 <전체관람가>의 한 자리를 맡은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난 촛불 정국 당시 꿋꿋하게 '세월호의 진실'을 파헤쳤던 JTBC에 대한 동지 의식이 작용했다고 한다. '신라리'(윤종신, 김구라, 문소리) 프로덕션의 문소리가 삼고초려를 한 것은 물론이다.

또 '문화계 블랙리스트' 역시 그의 출연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4.3사건'을 새롭게 조명했던 <지슬> 때문에 오멸 감독은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됐다. 독립영화라 해도 투자를 받지 못하면 영화를 만들 수 없는 법이었다. 그에게 지난 시간은 버거웠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 그는 <전체관람가> 출연 요청을 받은 후 단번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사실 그는 '공동체'적 작업에 대한 회의감 때문에 힘들어 했다고. 척박한 독립영화의 현실은 그를 '내가 주변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에 빠지게 했다. 게다가 영화 <눈꺼풀>이 극장에 상영조차 되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한 상황에서, 오멸 감독은 기꺼이 <전체관람가>에서 준 기회를 선택했다. 그는 단편 영화 '파미르'를 통해 몇 년전부터 찍고 싶었던, 영화 <눈꺼풀>에 이어 하고자 했던 '세월호'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독립 영화 <파미르>가 말하는 세월호

 <전체 관람가-파미르>

ⓒ JTBC


3000만 원의 예산으로 3회차 촬영조차 허덕이던 다른 감독들과 달리, 오멸 감독은 <전체관람가> 최초로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떠났다. 장장 36일간의 대장정을 통해, 오멸 감독은 '진짜'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를 잊어가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세월호 인양 전부터 "지겹다"고 아우성을 쳤다. 유가족들도 물러섰다.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세월호는 잊을 수 없는 부채다. 오멸 감독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잊지 못한 사람들의 부채 의식에 대해 다뤘다.

두 친구는 아웅다웅하며 함께 수학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돌아올 땐 혼자였다. 살아남은 이의 삶도 온전히 서지 못했다. 친구가 타던 자전거의 안장이 시간 속에서 너절해진 즈음, 비로소 남겨진 이는 자전거를 찾아온다. 그리고 그는 돌아오지 않는 친구가 가려고 했던, '파미르 고원'에 그의 자전거를 타고 간다.

해발 2000m가 넘는 고원에서 9명의 제작진은 누가 배우고, 스태프인 지 구분도 안 가는 상황이었다. 영화는 친구의 자전거를 타고 고원을 헤매는 한 청년를 따른다. 굴러 떨어져 주저앉은 그에게 파미르 고원의 한 어린아이는 느닷없이 돌을 던진다. 이미 소년은 앞서 여러 사람과의 이별에 상처 입었고 이 때문에 몽니(심술궂게 욕심부리는 것-편집자 주)를 부리고 있었던 것. 청년이 된 주인공은 아이의 돌팔매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포기하려던 순간에 비로소 파미르 고원이 나타났다. 비로소 청년은 그곳에 친구를 두고 "다시 오마" 하고 웃으며 길을 떠난다.

 <전체 관람가-파미르>

ⓒ JTBC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부채 의식, 비극적인 참사 앞에서 현명해질 수 없는 우리의 마음을, 오멸 감독은 친구의 자전거를 타고 파미르 고원을 찾아 떠난 청년을 통해 보듬었다. 그렇게 '파미르'는 우리의 자화상이자 씻김굿이 됐다.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안에 남겨진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이제 닳아버린 세월호에 대한 담론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오멸 감독의 영화는, 영화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 시청자들에게 '독립 영화'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오멸 감독의 말대로 상업 영화를 못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독립영화의 가치를 제대로 설득했다. 오멸 감독의 '파미르'가 진짜인 이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전체 관람가-파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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