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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시골 마을에서는 시간이 맞는 사람들이 함께 김장을 한다. 나는 먹기 위해 김장할 필요는 없다. 혼자 사는 서른 살 남자가 김치를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는가. 김치를 먹더라도 필요한 만큼 그때그때 사서 먹으면 된다. 오히려 김장 김치를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주민들과 3년째 김장을 하고 있다. 평소 마을의 행사나 모임에 참석을 잘 하지 않는 편이라, '젊은 사람이 마을 일을 열심히 해주면 좋으련만' 하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나는 그러한 소리에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불만의 소리들을 일 년 동안 꾹꾹 모아두었다가 김장하는 날, 단번에 침묵시켜버린다. 김장할 때 서른 살 남자의 노동력은 그러고도 남는다. 내게 김장은 겨우내 먹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겨우내 마을 행사에 참여하지 않기 위한 행위이다. 즉, 정치 행위인 것이다.

3주 전, 같은 마을에 사는 60대 중후반 아주머니 네 명과 김장을 했다. 화요일은 밭에서 배추를 뽑았고, 수요일 저녁은 배추를 자르고 절였다. 본격적인 김장은 목요일이었다. 목요일 오전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손에 잡히는 대로 껴입고 세 집 건너 있는 김 아주머니 집 마당에 도착했다. 지진 때문에 수능은 미뤄졌으나 수능 한파는 미뤄지지 않았다.

올해에는 김장하려고 장화도 샀다. 작년에 김장하면서 발이 젖어 고생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김장할 장소는 이 집 마당의 오른쪽 구석에 있는 수돗가였다. 우리는 그날 배추 200포기, 총각김치와 동치미를 담그기로 했다. 김장이 끝나면 나는 배추김치 16포기와 동치미를 조금 가져간다.

2014 서울김장문화제(자료사진)
 2014 서울김장문화제(자료사진)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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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김장은 정치이므로 선거유세하러 나온 후보처럼 열심히 일했다. 먼저 절인 배추를 씻어 물기를 뺐다. 물이 튀는 걸 신경 쓰지 않고 첨벙첨벙하며 배추를 씻다 보니 장화를 신었지만, 작년처럼 발이 벌써 젖어버렸다.

여분의 양말을 챙겨오지 못해서 젖은 채로 일하는 도중에 어디선가 '우웅' 하는 소리를 들었다. 조금 떨어져 있는 보일러실에서 보일러가 작동하는 소리였다. 집 안에는 김 아주머니의 남편이 있었다.

보일러는 새벽부터 작동했었을 텐데 나는 내 발이 젖고 나서야 보일러 소리를 들었다. 소리는 온기가 되기도 한다. 나는 발이 시려서 아릴수록 보일러 소리를 크게, 자주 들었고 나중에는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는 순간에도 '우웅' 하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의 남편은 그날 얇은 실내복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두어 번 정도 우리가 김장하는 마당을 다녀갔다.

김장하면서 이런저런 얘기가 오갔다. 김 아주머니는 본인이 새댁일 때 시어머니, 시누이와 셋이서 3일 동안 배추 500포기를 김장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새댁이어서 일을 가장 많이 하는 바람에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고, 김장이 끝난 후 며칠 동안 화장실에서 정말 피똥을 쌌다고 했다.

그녀는 같은 이야기를 몇 번 반복하고 나서야 목에서 힘을 뺐다. 그녀는 잊었겠지만 나는 기억한다. 그녀는 나와 김장했던 재작년과 작년에도 내게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아마 김장할 때마다 새댁의 기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그녀와 같이 김장을 해야 들을 수 있는 이야기고, 어쩌면 누군가는 평생 그녀의 김치를 먹으면서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김 아주머니 집은 산 바로 아래에 있다. 해가 떠서 하늘은 밝아도 김 아주머니 집은 산그늘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늘과 찬바람 속에서 우리의 김장은 오후 다섯 시가 넘어 끝이 났다. 그녀들은 김치를 땅에 묻기도 했고, 멀리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준다고 잔뜩 포장하기도 했다.

우리 앞에 차려진 두 개의 수육상

김장한 날에는 수육을 먹어야 한다며 저녁 식사를 김 아주머니 집에서 하기로 했다. 나는 그녀들에게 집에 가서 몸에 붙은 김치 양념을 떼고, 씻고 오겠다고 했다. 나는 20대에 갖은 육체노동을 했다. 노동이 고된 날은 쌓인 피로를 견디지 못해 소주병을 비웠었다. 김장의 피로는 노동의 피로와 다르다. 김장의 피로는 소주 정도로 풀릴 것 같지 않다. 평소 대중목욕탕을 즐기지 않지만 김장한 날만큼은 사우나와 뜨거운 목욕탕이 간절하다.

나는 아쉬운 대로 집에서 몸을 씻고 김 아주머니 집으로 갔다. 뜨거운 물에 몸을 맡긴 시간이 길었나 보다. 그녀들은 서서 돌아다니며 상을 차리고, 수육을 준비하고 있었다. 거실에는 그녀들의 남편들이 와서 상에 둘러앉아 있었다.

거실에는 상이 두 개가 놓여있었다. 그녀들과 그들의 수는 같은데 상의 크기는 달랐다. 그들이 둘러 앉아있는 상이 다른 상보다 두 배는 더 컸다. 나는 인사를 하고 상을 차리려는데 그녀들이 나를 말리며 큰 상 쪽에 앉으라고 했다.

나는 온몸이 쑤셔서 수육이 아닌 진수성찬이라도 먹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쉬고 싶었다. 김장의 고생을 나눈 동료들과 함께 마무리하고 싶어서 온 것인데 나는 갑자기 손님이 된 것 같았고, '남자'가 된 것 같았다. 나는 큰 상에 앉아 그들이 따라주는 막걸리를 받았다.

곧 수육이 나왔다. 수육은 우리의 상으로 먼저 향했다. 우리의 상 위에 있는 수육은 양이 많았으며 반듯하게 놓여있었다. 우리는 먼저 먹기 시작했다. 이후에 그녀들은 작은 상 위에 수육을 놓고 앉았는데 그 수육은 모양이 없어 주걱으로 밥을 푼 것 같았다.

그녀들은 드디어 편하게 앉았다. 다만, 그녀들 중 둘 셋은 그들과 다르게 두 무릎이 모두 바닥을 향하지 않았다. 한쪽 무릎은 천장을 향해 있었다. 그 자세가 밥을 먹다가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자세처럼 보였다. 무릎만 짚으면 쉽게 일어나 뭔가를 가져올 수 있는 자세 말이다.

모두 수육을 먹으며 대화했다. 나는 그녀들이 무슨 대화를 하며 먹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상과 그녀들의 상의 거리가 있기도 했지만 그들의 취기 오른 목소리가 온 거실을 메웠기 때문이다. 그들 중 누군가는 김치를 먹으며 고추씨가 덜 들어갔다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김장은 날씨가 몹시 추울 때 해야 맛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주로 정치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그들이 약간은 정치하는 사람들과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김장은 내게 정치였으나, 그날 나는 정치하는 사람이 아닌, 여자나 남자도 아닌 무엇이 되고 싶었다. 두 개의 상을 이으면 더 큰 새로운 상이 되듯이.


태그:#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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