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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을 주장하는 천주교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을 주장하는 천주교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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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태신앙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성당에 다녔고, 태어나자마자 '라파엘라'라는 세례명을 받았습니다. 저의 첫 기억은 성당에서 시작될 만큼 성당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성당은 저에게 일상이었고, 유년기를 거쳐 청소년기까지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글 읽는 방법을 주보로 배웠고, 책 읽는 습관을 성경으로 배웠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성당에서 익혔습니다. 저의 사회화 전 과정은 학교가 아닌 성당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은 남녀가 평등하다고 하셨습니다. 유교가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남녀가 유별하다 하였으나 우리 성당은 모든 성이 평등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평등사상에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상했습니다. 성탄절 때 밥을 먹으면 밥을 차리고 설거지 하는 것은 엄마들의 몫이었습니다. 물론 우리 '아빠'들도 일을 하셨습니다. 성당 전체에 꼬마전구를 달고, 캠프파이어를 위한 나무를 설치하고, 불을 때고, 미사에 쓰는 아기예수님 구유를 만들며, 신자들을 집까지 데려다 주는 차량봉사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밥을 차리는 일은 엄마들이 쉬는 순간까지 마음이 편할 수 없었습니다. 일을 끝내고 준비한 사람들끼리 밥을 먹을 때도 엄마들은 부족한 음식이 없는지, 안 온 사람은 없는지 챙겼습니나. 먼저 다 먹은 사람은 일찍부터 설거지 준비를 했습니다. 모든 '아빠'들이 밥을 다 먹고 집에 갈 때, 그들의 배우자인 '엄마'들은 밥 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성별이 평등한 성당에서, 왜 엄마들이 하는일과 아빠들이 하는 일이 나눠져 있었고 엄마들은 아빠들을 '챙겨야' 했을까요? 왜 육체노동과 더불어 돌봄노동을 감내해야 했을까요?

이상한 것은 또 있었습니다. 수녀님은 음식도 준비하셨고, 미사도 준비하셨고, 신부님 제의(미사할 때 신부가 입는 옷)도 준비하셨습니다. 성당 청소할 때 신자들과 함께 청소하셨습니다. 수녀님은 수도자셨는데, 모두가 수녀님이 그런 '허드렛 일'을 하는 것에 의문을 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자들인 신부님은 신자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셨습니다. 성탄절, 부활절 등 대축일 미사가 끝나고 밥을 먹으면 수녀님은 함께 밥을 준비하시거나 성당을 정리하셨지만, 신부님은 사제관에 들어가 쉬셨습니다.

정신적 노동을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일이 아니더라도 신부님은 항상 누군가에게 '명령'하는 입장이었고, 수녀님은 명령을 받거나 일상을 수행하는 존재였습니다. 왜 신부님과 수녀님 둘 다 수도자인데 신부님은 신부님대로, 수녀님은 수녀님대로 왜 수행하는 '역할'이 다른가 의문이었습니다.

수녀님은 심지어 미사를 집전하지도, 신자들의 고해성사를 들을 수도 없습니다. 제가 여지껏 성당에서 봤던 수녀님의 역할은 신자들 사이를 조율하고 성당의 많은 부분을 관리하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인 미사 집전은 남성이자 사제인 신부에게 자리를 넘기는 '성모 마리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낙태죄 폐지는요?'
낙태죄 폐지 운동 검은시위 손피켓 문구와 낙태죄 폐지를 외치는 연설자
 '그래서 낙태죄 폐지는요?' 낙태죄 폐지 운동 검은시위 손피켓 문구와 낙태죄 폐지를 외치는 연설자
ⓒ 정겨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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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천주교인이고, 낙태죄 폐지를 찬성합니다

저는 어릴 적 수녀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제가 봐왔던 가장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사실은 신부님이 되고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회에서 말하는 '여성'이었고 신부님은 '남자'만 될 수 있었습니다. 엄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엄마, 나도 신부님이 되고싶어요."

엄마는 제게 성공회에는 여성도 신부가 될 수 있다고 했으나, 성공회는 크리스트교의 이단자라면서 그건 교회가 부패한 것이라고, 예수님이 모은 열 두 제자가 모두 남성이었기에 그를 잇기 위해 모든 신부는 남성이 되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꼭 미사를 집전하고 싶었지만, 엄마의 반대로 신부의 꿈을 포기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도, 마귀에 씌인 사람도, 자신을 배반한 제자들마저 모두 평등하게 대하고 사랑하라 하셨는데 여성만은 자신의 제단에 들이지 말라고 하셨나봅니다.

12월 3일 천주교에서 대대적으로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을 시작합니다. 여성의 성을 오로지 재생산을 위한 것으로 보고, 임신중절을 여성의 선택으로 두지 못하는 것에 충격이 큽니다. 남성의 성은 책임 없는 것으로 두고, 여성의 성에 책임을 지우는 것이 여성 억압이라는 것을 진정 모르는 것일까요?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요?

저는 페미니스트이고, 천주교인이며, 여성의 삶을 위해 낙태죄 폐지를 찬성하는 사람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여성을 엄마가 아닌 존재로 두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수녀님에게마저 '동정녀 마리아'의 역할을 씌우고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든 아니든 자신들의 '신념'을 강제하여 엄마가 되게 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은 창녀와 어머니밖에 없고, 창녀는 비난받아 마땅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성당은 오래 전부터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교회의 피해를 무릅쓰면서도 일제 시대, 민주화 운동 등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시민들에게 평등을 주기 위해 행동한 역사가 있는 천주교에서 대대적으로 나서는 일이 낙태죄 폐지 반대라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습니다. 국민의 주권은 중요시 하면서, 여성의 주권은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무시하며 생명권까지 침해하는 것이 낙태죄이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은 낙태죄 때문에 옷걸이로 자신의 자궁을 긁어내고, 계단에서 구르고, 찬물에 샤워하고, 배를 때리고, 심지어는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어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일이 생깁니다. 임신중절이 불법이기 때문에 위험한 수술에 노출되어서 후유증에 시달리는 여성들, 건강상의 문제로 임신중절수술을 받아야하지만 병원을 찾을 수 없는 여성들 등 태아의 생명과 여성의 생명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생명을 위한 길은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의사로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하는 것이지, 임신을 중단한 여성을 감옥에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주교님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현재 임신중절한 여성 신자들을 기꺼이 감옥으로 보내실 겁니까? 성당에 임신중절한 여성 신자들이 단 한 명도 없다고 장담하실 수 있습니까? 60년부터 96년까지, 정부는 산아 제한 정책을 펼치면서 임신중절을 권장했습니다. 임신중절을 권장하고 다닌 공무원들은 교회의 신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까?

아주 오래 전부터 평등을 말해오면서도 여성을 엄마로만 보고 그 역할을 강요한 성당의 여성혐오적 문화를 비판하며 단호하게 말합니다. 낙태죄는 여성의 선택을 처벌하는 인권차별이고, 임신중절이 '필요한' 여성들을 배제하는 정책이며, 이미 임신중절한 여성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는 악독한 법입니다.

생명에 대한 책임은 낙태죄로 길러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잘 양육할 수 있는 환경에서 길러집니다. 부디 천주교에서는 낙태법 폐지 반대 서명과 그 움직임들을 중단하고, 진정한 생명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를 다시 재고해 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겨운씨는 불꽃페미액션 소속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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