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빠진 갯벌을 보는 듯했다. 지난 한 달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1300만여 명으로 <범죄도시>가 흥행한 10월과 비교해 800만 명 이상 급감했다. 상영 편수는 올 한 해 최다인 184편에 이르렀지만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는 게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고만고만한 영화들 가운데 100만 이상 관객을 모은 영화는 모두 다섯 편이 나왔다. 한국영화 가운데선 <꾼> <부라더>가, 할리우드 영화 중에서는 <토르: 라그나로크> <저스티스 리그> <해피 데스데이>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이들 영화에 쏟아진 평가는 꽤 싸늘했다. 호평이 혹평에 앞선 작품은 <해피 데스데이> 정도가 유일했다.

기대를 모은 <침묵> <7호실> 등 기대작은 손익분기점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을 거뒀고, 11월 개봉작 가운데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러빙 빈센트>는 충분한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했다. <신비한 동물사전>이 독주한 지난해 말고는 2012년 이후 가장 적은 관객이 영화관을 찾은 11월이었다.

어느덧 2017년도 한 달만을 남겨놓고 있다. 전통적인 영화계 최대 성수기로 꼽히는 12월 개봉작 가운데 과연 어떤 영화가 활짝 웃을지 주목된다. 아래 매듭달 기대작 다섯 편을 소개한다.

[하나] <메리와 마녀의 꽃>

메리와 마녀의 꽃 포스터

▲ 메리와 마녀의 꽃 포스터 ⓒ CGV 아트하우스


픽사·디즈니와 드림웍스가 양분하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대공세에 맞서 만화 왕국의 지위를 지켜내려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반격이 시작된다. 7일 개봉하는 <메리와 마녀의 꽃>은 미야자키 하야오에 이어 일본 애니메이션의 후기지수로 꼽히는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의 작품이다.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는 <마루 밑 아리에티>로 지브리 사상 최연소로 장편 애니메이션을 감독한 젊은 재능이다. 그런 그가 스튜디오 지브리의 프로듀서 출신 니시무라 요시아키와 손잡고 스튜디오 포노크의 첫 장편을 만들었다니 애니메이션 팬들에겐 절로 흥분되는 소식이다.

유사한 그림체에서 짐작할 수 있듯, 스튜디오 포노크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며 출범한 신생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다. 2013년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돌아온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와 비교해 젊은 피가 다수 포진돼 있으며, 이러한 장점을 살려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12살 소녀가 특별한 만남으로 신비의 세계를 경험한다는 기존 동화의 전형을 따르면서도 포노크만의 색을 입혔다는 평이다. 지난 10월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찌감치 전석이 매진되며 뜨거운 기대를 실감하게 했다.

[둘]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바야흐로 히어로의 세상이다. 지구방위대를 넘어 우주로 뻗쳐나가는 마블의 인기 캐릭터들과 마블을 견제하고 나선 전통강호 DC의 히어로 군단이 일 년이 멀다 하고 스크린 위에서 맞붙고 있다. 이를 보고 있자면 <스타트랙> 시리즈와 함께 밤하늘을 꿈과 상상으로 수놓은 왕년의 <스타워즈> 시리즈도 이미 과거의 영광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J. J. 에이브럼스와 가렛 에드워즈가 2015년과 2016년 각각 감독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와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는 기대만큼 큰 아쉬움을 남기고 물러갔다. 다시 일 년의 시차를 두고 개봉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미스터리 장르에 재능을 보여온 라이언 존슨이 감독했다. 라이언 존슨이 숱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스타워즈> 시리즈의 미래를 책임질 선장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14일 개봉.

[셋] <강철비>

ⓒ (주)NEW


2013년 데뷔작 <변호인>으로 천만 감독 반열에 오른 양우석의 두 번째 장편 <강철비>가 14일 개봉한다. 전작에서 호흡을 맞춘 곽도원·정원중에 더해 정우성·김의성·김갑수·조우진 등 검증된 배우도 다수 출연한다.

북한에 쿠데타가 발생해 최고 권력자가 한국으로 넘어온다는 비상사태를 배경으로 하는 <강철비>는 한국영화 가운데 최초로 핵무기 사용을 포함한 전쟁을 다뤘다. 아직 영화연출에 능숙하지 않은 양우석 감독을 보좌하기 위해 촬영·소품·CG 등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합류해 실감 나는 영상을 만들었다는 평이다.

2011년 천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양우석을 스타반열에 올린 웹툰 <스틸레인>을 근간으로 제작됐으며 팬들 사이에선 양우석 감독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하리란 기대가 높다. 시대상에 맞게 웹툰을 상당 부분 각색해 완성도를 끌어올렸다고 전한다.

북한의 군사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경색된 국면에서 개봉을 맞게 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바람을 탄 <변호인>에 이어 다시금 적절한 배급 시기를 잡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변호인>을 통해 4대 배급사의 한 자리를 확고히 한 NEW가 전력을 다해 배급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마지막 천만 영화 후보작이다.

[넷] <스노우맨>

ⓒ 유니버설 픽쳐스


천재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스웨덴 출신의 중견 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손의 야심작이다. <렛 미 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로 스웨덴을 넘어 유럽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한 토마스 알프레드손은 보는 이의 감정을 쥐고 흔드는 듯한 연출로 극찬을 받아왔다. 옛것과 새것을 절묘하게 오가며 오늘의 관객을 사로잡는 그의 연출은 이미 나름의 경지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이후 6년 만의 복귀작인 <스노우맨>은 연쇄살인범과 그를 추적하는 수사관들의 이야기를 다룬 정통 스릴러다. 노르웨이의 유명작가 요 뇌스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소설 원작이 워낙 흡인력 있는 작품인 데다 감독 역시 이 분야에선 일가를 이룬 작가다 보니 실패할 확률은 높지 않아 보인다.

토마스 알프레드손과 함께하기를 선택한 명배우도 여럿 출연한다. 오스카에 가장 가까이 선 배우 가운데 하나인 마이클 패스벤더와 J. K. 시몬스, 발 킬머, 샤를로트 갱스부르, 토비 존스, 제임스 다시가 그들이다. 14일 개봉한다.

[다섯] <두 개의 사랑>

ⓒ (주)팝엔터테인먼트


확고한 팬층을 보유한 명감독 프랑수아 오종의 신작 <두개의 사랑>이 2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자, 내놓는 작품마다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그는 할리우드에 잠식되고 있는 프랑스 영화계의 몇 남지 않은 자존심이다.

그의 영화가 대개 그렇듯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의 실력파 배우를 다수 기용해 유럽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겐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이다. 창의적인 시나리오와 세련된 연출을 장기 삼는 프랑수아 오종의 기량이 여전하다면, <두 개의 사랑>을 찾는 관객들은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극장 문을 나올 수 있을 테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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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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