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산업을 수직계열화하고 있는 CJ와 롯데.

영화산업을 수직계열화하고 있는 CJ와 롯데. ⓒ CJ/롯데시네마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 대책위원회가(아래 반독과점영대위)가 29일 오후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수직계열화를 통해 영화 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대기업의 독과점 폐해를 바로잡겠다는 영화인들의 의지가 결집된 것이어서 CJ-롯데로 대표되는 대기업과 영화계의 대립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반독과점 영대위는 지난 6월 영화단체연대회의 내에서 한국영화산업의 공정환경 조성을 위한 영화인 대책위원회 설립이 제안되면서 논의가 이뤄졌다. 지난 7월 제안자들이 모여 본격적인 준비 작업이 시작됐고, 8월 영화인대토론회 등을 통해 독과점 문제에 대한 의견 수렴 작업이 진행됐다.

이후 준비모임이 11월 초까지 모임을 가진 후 지난 10일 발기인대회를 거쳐 29일 창립총회를 통해 새로운 조직을 발족시켰다. 반독과점영대위는 설립취지문에서 밝히고 있는대로 할리우드직배반대와 표현의 자유, 한미FTA반대, 부산국제영화제 정상화 등의 사안을 놓고 뜻과 힘을 하나로 모았던 영화인들의 전통을 잇는 의미가 있다. 지난 10년 이상 개선은커녕 악화되어가는 대기업독과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대중조직을 띄웠다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사실 독과점 문제와 관련해서는 영화단체의 뜻이 하나로 모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문제의식을 갖는 영화인들이 많았으나 대기업의 투자나 지원을 받는 이들도 있어, 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았다. 이를 영화인 개개인이 참여하는 형식의 새로운 조직 결성을 통해 극복한 것은, 합리적인 전술 변화로 보인다. 또 영화인들의 문제의식을 응집시켰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반독과점영대위는 설립 취지문에서 '상영 기회 독점'이라는 불합리함을 불러온 근본적 원인은 왜곡된 산업구조에 찾는 것이 당연한데도 특정 작품을 만든 특정 영화인에게 책임을 묻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연출된다'며 지난 여름 영화 <군함도>의 스크린독과점 문제로 감독과 제작자가 비판받은 문제를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주요 사안에 힘 모으는 영화계 전통 이어가

 29일 오후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열린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 대책위원회’ 창립총회

29일 오후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 대책위원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 성하훈


영화인들의 관심도 상당히 적극적이다. 지난 10일 59명의 영화인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반독과점영대위는 총회 직전까지 모두 130명이 회원으로 참여의사를 밝혀 20일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회원이 두 배로 증가했다.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는 영화인들도 늘어나고 있어 목표로 300명 정도의 회원 구성은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이날 창립총회에서는 독과점 반대에 집중하자는 회원들의 의견에 따라 정관에 명시된 사업범위도 7개 항에서 4개로 축소시켜 통과시켰다. 참여한 영화인들이 적극적인 자세로 수정안을 냈고, 토론 끝에 영화산업 독과점 폐해 막는 정책 마련, 중소 제작배급사 지원, 독립예술영화 제작 배급 활성화 등을 주요 정책과제로 설정하기로 했다. 

구체적 실행 방안으로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개정에 집중하기로 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대기업의 상영과 배급을 분리시키는 안철수-도종환 법안과, 스크린독과점 방지를 위한 조승래 의원 발의 법안 통과에 주력하기로 했다.

또 새롭게 구성될 영화진흥위원회와 정책 연대를 강화해 영진위원장 선임이 완료되면 영화인대토론회를 추진하기로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의 면담을 통해 정책적인 요구와 정부차원의 대응 필요성을 강조한다는 방향도 정했다. 이를 통해 한국영화의 지속 발전 기틀과 창작과 유통의 균형 발전, 질적성장 도모를 통해 새로운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반독과점영대위는 개인이 참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영화단체 대표자들과 영화계 주요 인사들이 대거 가세하며 무게감이 커지고 있다. 주요 참여인사로는 제작자인 엄용훈·최용배 대표, 정윤철·민병훈·육상효·한지승 감독, 박철민·문소리·권해효·정진영 배우, 채윤희 여성영화인모임 대표, 이용관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오동진 평론가 등이다.

이날 총회에서는 공동대표로 김병인 작가,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과 안병호 한국영화산업노조 위원장, 최정화 프로듀서, 김혜준 무한상상플러스 대표 등 5인을 선출했다. 송길한 작가, 이장호 감독, 정지영 감독 3인은 고문으로 위촉했다. 또한 김상윤 시네룩스 대표, 양기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이사장, 낭희섭 독립영화협의회 대표 등을 운영위원으로 선임했다.

영화계 '신 국공합작'

 ‘29일 오후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열린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 대책위원회’ 창립총회에서 김혜준 공동대표가 총회를 주재하는 가운데, 배장수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상임이사가 설립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29일 오후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열린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 대책위원회' 창립총회에서 김혜준 공동대표가 총회를 주재했다. 배장수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상임이사가 설립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성하훈


반독과점영대위에는 보수 성향의 인사들도 관심을 나타내고 있어 영화계의 '신국공합작' 성립여부도 주목된다. 영화계의 '신국공합작'은 2006년 당시 강한섭 교수가 영화 <괴물>의 스크린 장악에 대해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과 함께 스크린독과점 법안을 추진히면서 나온 말이다. 당시 오동진 평론가는 "시장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손을 잡았다"고 평가했다.

진보와 보수가 같은 대기업독과점 문제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의미인데, 그간 열렸던 다양한 독과점 관련 토론회에서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대기업독과점 규제에는 대부분 같은 관점을 갖고 있음이 확인됐다.

2013년 7월 열린 한 토론회에서 이명박 정권에서 영진위원장을 역임한 강한섭 교수는 김혜준 대표와 함께 토론자로 나와 독과점 문제에 대한 공통분모를 강조했다. 강 교수는 "영화계가 이념과 정치적 당파로 분열하기 시작하는 90년대 말부터 김혜준 대표와 나는 다른 동네에서 놀기 시작하다가 아예 서로 각을 세우는 관계가 됐으나, 스크린독과점 이슈에서는 강경 법적규제파인 나와 그의 생각이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혜준 대표 역시 "다른 것은 다른 대로, 같은 것은 같은 대로. 종교도 아니고 정당도 아닌데, 다르면서도 같은 게 당연하다"며 화답했다. 다른 참석자도 "국면 전략이 같을 때는 기본 입장이 달라도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내 편 네 편으로 나눠 저 놈은 싫어 이놈은 좋아 하는 건 속 좁은 사람들의 짓"이라고 연대를 강조했다.

반독과점영대위가 단체가 아닌 취지에 동감하는 개인 참여 형식으로 조직을 구성하면서 문을 넓힌 것도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 총회에는 영진위 부위원장을 지낸 보수성향의 정초신 감독이 참여했다. 반독과점영대위 관계자는 "원로보수영화계의 중심축인 영화인총연합회도 공감을 나타내는 인사들이 많아 힘을 합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독과점 규제에 찬성하는 보수진영의 한 영화인은 "영화계가 상생해야 한다는 데는 보수와 진보가 없다"며 "어느 나라를 봐도 독과점은 안 좋은 결과로 나타나고 있어 대기업에 대한 법적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네마서비스 배급이사를 역임한 이하영 피디는 "지금 상태를 그대로 두면 결국 다 죽게 될 수밖에 없다"면서 "대기업독과점을 규제해야 영화산업이 살 수 있다"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최근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를 통해 10년 만에 단편 영화를 선보인 이명세 감독은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투자배급사 문제는 문체부에서도 알겠지만 결국 독과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본이 되든 어떤 누가 되든 독과점은 안 된다는 생각이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다양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대기업의 수직계열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관련기사: 시청자 울린 60세 감독의 메시지 "난 영화 떠난 적 없는데")

대기업 독과점 영화산업 반독과점영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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